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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교회의 단체: 한국 CLC(Christian Life Commun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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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단체 · 8] 한국 CLC
탄생 배경과 창립 : 교회사적 맥락에서의 의미
CLC(Christian Life Community)는 1563년 예수회 장 루니(Jean Leunis) 신부가 로마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시작한 ‘성모회(Congregatio Mariana)’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냐시오 영성을 살아가는 평신도 공동체의 시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많은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이냐시오 영성을 사는 성모회의 정체성은 점차 희석되어 다른 신심 단체와 비슷해졌다. 1948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회가 이냐시오 영성을 사는 공동체로 쇄신되길 촉구하였고, 예수회로 하여금 이를 돕도록 하였다. 성모회가 쇄신되는 여정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열렸고, 공의회 영향을 받은 많은 평신도 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였는데 성모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모회는 1967년 세계 총회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평신도 이냐시안 공동체로 분명히 하면서 이름을 CLC로 개칭하였다. Christian Life Community라는 이름에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삶을 나누며 공동체로 살아가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CLC는 1990년 제11차 세계 총회를 통해 자신들의 통칙(通則, General Principles)과 정관(General Norms)을 교황에게 승인받으면서 자율적으로 식별하고 사도적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로 정체성을 명확히 하였다.1) CLC의 자율성은 담당 사제의 명칭인 EA(Ecclesiastical Assistant)에서도 드러난다. EA는 ‘교회가 파견한 협력자’로서 CLC가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동반한다. 또 교회의 권위를 대표하여 교회 안에서 일치하고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한다. 세계 CLC의 EA는 통상적으로 예수회 총장 신부가 교황에 의해 임명되며, 각 국가나 교구 공동체에도 적절한 교회의 절차에 따라 EA가 임명된다.
이 두 활동은 한국 CLC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초창기에는 서강대학교 학생과 개인적인 소개를 통해 CLC 수련에 참여했지만, 이때부터 회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욱 폭넓게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목요 신학 강좌’와 무악동 빈민사목센터에서 만나는 평신도들에게 CLC 정신을 나누었고 관심이 있는 평신도들이 수련에 참여하였다.
현재 활동 : 현재 세상과 교회의 상황에 대한 응답
초창기에 공동 식별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과 평신도의 영적 쇄신을 위한 활동은 한국 CLC가 지속적으로 선택하고 애써온 사도직이다. CLC의 평신도 양성을 위한 활동은 신학 강좌·영성 강좌·기도 훈련·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평신도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배운 체험을 바탕으로 점차 보강한 결과이다.
‘목요 신학 강좌’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는 한국 CLC의 대표적인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이다.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으나, 하느님 · 예수님 · 교회 ·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큰 테마로 해서 강좌를 구성해 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기반하여 ‘교회로 살아가는’ 새로운 전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강사를 섭외하기 위해 애써왔다. 강사진으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 정일우 신부와 제정구 선생, 신학자로 명망 높은 서공석 신부와 심상태 몬시뇰, 학계에서는 조광 교수와 노길명 교수 등이 있었고, 새롭게 공부한 젊은 사제와 평신도 신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는 신학 강좌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영성적 도움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체험을 바탕으로 1992년부터 ‘영성 훈련의 기초’라는 영성 강좌를 시작하였다. 이 과정은 이냐시오 영성 수련의 내용을 신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이냐시오식 묵상과 관상, 성찰, 식별 등을 주제로 해서 시기와 지역에 따라 5주부터 14주 과정까지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강의 후에는 조 나눔을 통해 실제 기도한 내용이나 강의에서 배운 점 등을 나누도록 하였고, 회원들이 모임의 활성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이 강의는 평신도에게 이냐시오 영성 수련을 적용한 프로그램임을 강조하기 위해 2001년부터 ‘세상 속의 영성 수련’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으며, 여러 지역에서 열렸다.4)
영성 강좌는 신학 강좌보다 더 많은 신자의 호응이 있었다. 그러나 강의만으로 신자들이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실제로 영성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였다. 가장 먼저 실행했던 ‘영성 수련의 실제’는 묵상 · 관상 · 성찰 · 식별 등 이냐시오 영성 생활의 원리를 적용하여 이냐시오 영성 수련 1주간을 체험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이보다 좀 더 성경 묵상을 돕는 것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 ‘평신도를 위한 기도 훈련’이다. 이 과정은 기도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염경기도 중심으로 기도했던 신자들에게 이냐시오 영성에 기반한 기도를 하도록 훈련함으로써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갖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는 기도 방식을 깨닫도록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한국 CLC는 초창기부터 본당 신자, 사목 위원, 청년, 수도회, 사도직 단체 등을 대상으로 피정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2009년 이후에는 2박 3일 ‘침묵 피정’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하였고, 2018년부터는 바쁜 현대 신앙인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하루 혹은 1박 2일 피정도 병행하고 있다.
이후 한국 CLC는 용인지역에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센터’라는 새로운 사도직 현장을 마련하였고,8) 2007년에는 서울 금천구에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하면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현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2013년에는 ‘빈곤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구조를 끊는 것’을 목표로 ‘CLC 희망학교’를 설립하였다.9) CLC 희망학교의 한 축은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교육 격차 해소를 통한 실제적인 진학과 취업까지 이어지는 모델의 창출이었으며, 다른 한 축은 사회적인 연민과 나눔을 기반으로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운동을 사회적으로 확산해 가는 NGO로 드러나는 것이었다.
회원이 되는 과정은 CLC가 실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CLC로 사는 것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지원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시작된다. 일정 기간 모임을 통해 CLC를 알게 된 후 계속 함께하기를 원하면 본격적인 수련기로 들어간다. 수련기는 기본적으로 이냐시오 영성 수련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와 비전을 알아가고 공동체의 분위기를 익히는 시간이다. 수련이 끝날 무렵 CLC를 자신의 성소로 식별하면 유기 서약을 하고, 매해 자신의 서약에 대해 갱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렇게 살다가 최종적으로 CLC로 사는 것이 자신의 성소라고 식별하면 종신 서약을 한다.10)
회원들은 6~10명 사이의 단위 공동체를 통해 신앙과 삶을 나눈다. 매주 모여 복음 묵상과 각자의 삶과 사도직에서 겪은 일을 성찰하고, 세상에 대한 식별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국가 공동체 전체는 1년에 세 번 모여 함께 공동체 미사를 봉헌하면서 공동체로서 일치를 이룬다. 또 2년마다 국가 총회를 통해 국가 공동체의 우선순위 방향을 함께 식별하는 시간을 갖는다. 함께 식별한 사도직에 대해 함께 책임을 나누기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참여하는 방식으로 공동 사도직을 수행한다.
한국 CLC는 자신들의 체험을 교회 안에서 나누기 위해 몇 차례 대외적 행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1998년 11월에는 “세상 속의 교회-세속 신자의 교회를 모색한다”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통해 세상 속의 교회의 의미와 평신도 신원의 중요성에 대해 이슈를 제기하였고,11) 2014년 6월에는 『이냐시오 성인이 평신도에게』 출판 기념회 겸 좌담회를 열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평신도 양성을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12) 2018년에는 한국 교회가 평신도 희년을 기념하는 것에 동참하고 세계 CLC 개칭 50주년을 기념하고자 4차례의 특별 강좌와 토크 콘서트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진행했다. 평신도의 정체성과 삶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자유롭고 활발하게 나눔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얻고자 하였다.13)
앞으로의 전망 : 하느님의 뜻을 따라 나아갈 방향
한국 CLC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을 모색하고 CLC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던 젊은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동체이다. 이 같은 자발성이 모든 회원이 함께 식별하고 함께 책임지고 함께 성찰하는 한국 CLC의 특징으로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하던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이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들으려 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사도직을 새롭게 식별하고 선택한다.
한국 CLC는 지금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받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청 중 하나가 생태적 회심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14)이며, 이런 삶을 통해 청년들과 동반하는 활동이라고 식별하였다. 서울 금천, 용인 포곡, 부산 반송 지역의 청년 · 주민들과 만나가며 소비 지향적이고 물질 만능적 삶이 아닌, 생태적으로 살아가며 서로 환대하는 복음적 ‘삶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따로 삶 따로 사는 신자가 아닌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동반하는 다양한 양성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님의 우선적 선택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하여,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다함 없는 약속”을 신뢰하며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앞당겨 실현하도록 하는 데에 창조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협력”15)하면서 사는 것을 자신들의 소명으로 여기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오늘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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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LC에 대한 역사적 정보 및 공식문서는 세계 공동체의 홈페이지에 잘 나와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s://cvxclc.net/en/’이다. 2) 『가톨릭신문』 1802호(1992년 4월 26일), 9면 참조. 3) 이후 많은 수강생의 호응을 바탕으로 3년 과정으로 확대 개편하였다(『가톨릭신문』 1746호[1991년 3월 17일, 2면 참조]). 4) 『가톨릭신문』 2594호(2008년 4월 13일) ; 2789호(2012년 4월 1일), 3면 참조. 5) 『가톨릭신문』 3010호(2016년 9월 4일), 1면 참조. 6) 『가톨릭신문』 2248호(2001년 5월 6일), 4면 참조. 7) 『가톨릭신문』 2217호(2000년 9월 10일), 2면 참조. 8) 『가톨릭신문』 2306호(2002년 7월 7일), 17면 참조. 9) 『가톨릭신문』 2836호(2013년 3월 17일), 7면 참조 10) 한국 CLC 홈페이지 ‘CLC회원은?’ 코너(https://kclc.or.kr/bbs/content.php?co_id=010401) 참조. 11) 『가톨릭신문』 2127호(1998년 11월 15일), 2면 참조. 12) 『가톨릭신문』 2901호(2014년 6월 29일), 21면 ; 2917호(2014년 11월 2일), 4면 참조. 13) 『가톨릭신문』 3099호(2018년 6월 17일), 2면 ; 3103호(2018년 7월 15일), 4면 참조. 14) 『가톨릭신문』 3314호(2022년 10월 16일), 4면 참조. 15) CLC 통칙 1번, 6번 참조.
[교회와 역사, 2023년 12월호, 현재우 에드몬드(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0 2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