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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개발인가? 보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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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865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개발인가? 보존인가?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생장에 관한 연구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과학탐구대회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반 친구들 몇 명과 함께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생장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입상을 위하여 몇 달간 친구들과 고생을 했다.

 

우선 환경오염이 생물의 생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크게 두 영역에서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연구 대상은 오염된 물과 개구리 생장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었고, 두 번째 연구 대상은 공장폐수로 환경오염이 된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의 생장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연구를 위해 개구리 알을 학교근처 웅덩이에서 채집해 왔다. 당시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주변은 아직도 개발이 진행 중이었기에 개구리 알을 채집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뜰채와 양동이를 준비하여 개구리 알을 채집해 왔고, 교실 뒤편에 나무와 비닐로 여러 개의 수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수조 안에 각각 세탁용 세제의 농도를 달리하여 탄 물을 넣고 개구리 알이 부화되는 것을 관찰했다.

 

첫 번째 수조는 정기적으로 깨끗한 물로 바꾸어주었고 다른 2개의 수조에는 농도를 달리한 세제를 탄 물로 갈아주었다. 날씨가 따뜻해지자 서서히 개구리 알이 부화되기 시작했는데,  오염된 물이 들어있는 물에서는 개구리 알이 부화되기는커녕 서서히 썩어 들어갔다.

 

깨끗한 물에서 부화된 개구리 알은 올챙이가 되어 수조 속을 헤엄치고 있었고 시간이 점점 지나자 뒷다리가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앞다리가 자라나고, 얼마 뒤 다 자란 개구리가 되었다. 반면에 오염된 물속에 있던 개구리 알은 부화도 하지 못하고 썩어버려 악취가 심해졌다. 냄새 때문에 교실에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결국엔 썩은 개구리 알을 내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깨끗한 물을 갈아준 수조에서는 개구리가 정상적으로 부화하고 생장하였지만 나머지 오염된 수조에 있던 개구리 알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부화하지 못하고 그대로 썩어버렸던 것이다. 최초 실험의 의도는 오염 농도가 낮은 물에서도 부화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다.

 

주말을 지내고 와보니 교실 뒤편에 둔 수조에 그 많던 개구리들이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가 수조 뚜껑을 열어두어 다 자란 개구리가 교실 밖으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날마다 자라나는 개구리를 관찰했던 우리는 대단한 결과를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개구리들의 탈출(?) 사건으로 그 결말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오염된 땅에서는 그 무엇도 자라지 않았다

 

두 번째 실험은 오염된 토양과 식물의 생장에 관련된 것이었다. 꺾꽂이용 나무를 준비하여 학교 주변 화단과 옛 동양화학 공장 주변에 심었다. 토양이 깨끗한 초등학교 주변의 화단과 폐수 처리장 주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오염이 심했던 폐수처리장 내 오염된 땅에 나무를 심어두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꺾꽂이를 한 나무가 싹을 틔우고 자라는 정도를 관찰했다.

 

예상했던 대로 학교 주변의 깨끗한 토양에서는 곧 싹을 틔우고 잎이 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 폐수로 오염된 토양에서는 전혀 싹을 틔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매주 자라는 나무를 관찰하면서 새로 싹을 틔우는 숫자와 자라는 길이를 측정하여 그 차이를 측정했다. 물론 오염된 토양에서는 전혀 싹을 틔우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매주 한 번씩 나무를 심은 곳까지 찾아가 꺾꽂이한 나무의 변화를 관찰했다.

 

여러 번 발걸음을 하였고 물도 줘보았지만 결국 폐수로 오염된 땅에서는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실험을 하기 전에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화학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사람들의 삶을 이롭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실험을 통해 생활을 편리하게 하려고 무엇인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일이 결국엔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인위적인 화학제품이 단기간 내에는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편리함의 추구가 오히려 인간의 삶에 진정한 발전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된 것이다.

 

세 달 간의 실험이 끝나고 결과물을 만들어 발표했지만 주변사람들이나 교육부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나름대로는 설득력 있는 발표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환경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 것 같다.

 

1970년대 말, 국가의 목표가 경제성장이었던 시절에 환경오염과 환경보존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도 앞서가는 주장이었던 같다. 비록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어린 시절의 그 연구 활동이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개발과 보존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 한반도에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깨끗한 에너지라고 정부로부터 호평을 받던 원자력 에너지가 이제는 더 이상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은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다

 

얼마 전 있었던 지진과 해일의 피해로 일본 후쿠시마 현에서는 원전 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말미암아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원전 사고로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정부나 원자력에 관련된 사람들은 원자력 발전이 환경 부문에서도 가장 깨끗한 자원이며 안전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한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원자력 발전 역시 필요한 에너지를 얻은 결과에 따라 핵폐기물이 생기고 이러한 핵폐기물은 그야말로 심각한 오염을 초래한다.

 

또한 이번 사고처럼 방사능 물질이 유출된 지역에서는 주변 자연 환경까지 오염시켜 그야말로 사람들뿐 아니라 동식물들 역시 건강하게 살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한다.

 

얼마 전 일본을 방문했을 때에 일본 전역은 전력난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동북부 지방에서 원전 사건이 터졌고 전력을 담당하는 회사 역시 남부 지역과는 다른 곳이었지만 일본 열도 전체가 절전 운동을 통해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그야말로 한 나라 전체를 고통 속에 빠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자구책에도 일부에서는 세슘이 함유된 사료를 먹인 소들이 도축되어 일본의 여러 지방 단체에 판매되었고, 심지어는 어린이들에게 공급되는 학교 급식에도 사용되어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제는 단순히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지 않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사능에 노출된 식품을 먹는 것 역시 인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역학관계 때문에 축산업에 종사하던 후쿠시마의 한 목장 주인은 텔레비전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기도 하였다. 경제적인 발전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지나친 과학만능주의와 기술중심주의가 오히려 인간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고속철 시대에 걷기운동이 의미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서는 인간의 이러한 발전과 보존의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진정한 발전이 기술 발전이나 공리주의적인 차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연은 인간의 손안에 있는 도구이며, 인간이 특히 기술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조종하여야 하는 실재인 것처럼 보인다. 무한한 양의 에너지와 자연을 이용할 수 있고, 그것들을 신속히 재생할 수 있으며, 자연 질서의 착취에서 오는 부정적인 결과는 쉽게 완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환원주의적 개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환원주의의 개념은 자연계를 기계론적인 관점에서 보고, 개발을 소비주의적인 면에서 보며, 존재보다는 행위와 소유에 우위를 둠으로써 심각한 인간소외 양상을 빚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62항).

 

진정한 인간 발전을 이루려면 어느 인간도 소외되지 않는 전인적인 차원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재적인 차원에서는 자연을 이용하고 과학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가난을 퇴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교회는 지적하고 있다.

 

선진 국가에서 더 이상 유치하지 않는 환경오염 기업들이 더 가난한 나라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고, 그 안에서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대도시 근교의 오염지역이나 임시 주거지 또는 허물어져 가는 위태로운 집들이 모여있는 대단위 밀집지역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후진 국가들의 빈민굴, 변두리 판자촌, 난민촌 등에서는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기본 생존권과 거주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소외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발전과 보존의 문제가 결국 환경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분별한 성공지상주의적 관점에서 발생하게 되는 환경의 위기와 빈곤의 문제는 복잡하고 비극적인 일련의 원인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원인들은 도덕적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방향을 제공해 주는 ‘재화의 보편적인 목적’이란 원칙에 대한 인식과 실천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

 

지상의 재화는 모든 이가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지상의 재화가 어떻게 사용되어야만 하는지를 알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81-482항 참조).

 

단순히 몇몇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국한된 부의 창출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는 부의 분배는 인간을 전인적인 발전으로 이끈다. 이러한 발전이야말로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 공동체를 온전하게 보존하며 이루어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편리와 이익이 크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무분별한 발전은 오히려 인간의 기본적인 삶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 시대에 조금은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사람들과 자연을 보듬어 안으며 나갈 수 있는 걷기운동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인간들이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 황창희 알베르토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1997년에 사제품을 받고, 로마 알폰소신학원에서 석사,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에서 사회교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 인천가톨릭대학교 교학처장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황창희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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