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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통일은 선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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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0-30 ㅣ No.594

[통일 대비, 어떻게?] 통일은 선교이다

 

 

지금부터 11년 전인 2000년 1월에 평양을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북한의 유일한 성당인 장충성당에서 100여 명의 북한 신자들과 미사를 드렸다.

 

전력 사정이 어려워 희미한 전등과 온기 하나 없는 성당에서 손을 호호거리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드렸다. 북한 신자들과 손을 붙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눈물 흘렸다. 신부로서 많은 미사를 봉헌하지만 그날의 미사는 감격스러웠다.

 

 

장충성당 신자는 진짜?

 

장충성당에서 만나는 북한 신자들은 대부분 연세가 드신 분들이다. 한국전쟁 전부터 신앙을 가졌던 분들이다. 간혹 40-50대 신자들도 보인다. 물어보면 부모님이 천주교 신자였다고 대답한다.

 

신부도 없는데 세례를 받았다니 적어도 한국적인 안목으로 보면 불편하다. 신부가 없어 성사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 신자라고 한다. 그래도 그들이 세례 받은 신자라고 하니 아니라고도 못하고 애매하다.

 

수녀님을 모시고 평양을 방문한 적이있다. 장충성당을 방문했을 때 북한 신자들이 수녀님께 달려가 반가워하는 것을 봤다. 일부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동안 신부는 몇 번 만났지만 전쟁 이후 수녀님을 처음 만난 것이었다. 수녀님의 손을 잡고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하던 북한 신자들의 눈에서 그들이 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평양을 방문할 때마다 가능한 한 장충성당에서 북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한다. 적어도 남한처럼 완벽한 조건은 아닐지라도 북한 당국에서 허락한 시간과 공간에서 복음을 읽고 선포한다는 것은 안 하는 것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북한 신자들 앞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강론을 통하여 때론 남한의 소식도 전하면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주님이 누구이시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성당에 나온 사람들이 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복음을 선포하고 강론을 한다. 신부는 신자가 없을 때 혼자 촛불과도 미사를 봉헌하지 않는가.

 

 

북한 붕괴 가능성?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안다고 하지만 사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북한이 베일에 싸여있고 북한의 일부만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남한에 있지만 그래도 북한에 대해 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북한에 대한 언론 보도는 추측성과 가십성 기사가 대부분이다.

 

정치적으로 오염된 정보 가운데 한 가지가 ‘북한 붕괴론’이다. 19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었다. 2008년 8월, 김정일 건강 이상설이 언론으로 전해지자 또다시 북한 붕괴론이 대두하였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식량 문제,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 후계자 문제, 대외적인 고립과 북핵 문제 등 국가적인 과제에도 북한 붕괴론이 무색할 정도로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통일은 도둑처럼 올 수 있다.’며 통일세를 비롯한 통일 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치적인 희망처럼 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만에 하나 이들의 희망처럼 김정일의 유고 등으로 북한이 갑자기 붕괴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남한에 흡수될 것이라는 보장도 불투명하다.

 

우리 사회의 일부가 희망하듯이 ‘악의 축’인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보이는 ‘3대 세습’은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남한의 대북 대결 정책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을 심화시키고 있다. 인도적 대북 지원마저도 정치적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 없이 인도주의의 실종이라는 결과만 낳고 있다. 미국의 군사 · 외교적 대북 압박 정책은 북한의 정권을 더 강화시키고 있고, 북한은 그 틈새에서 오히려 중국, 러시아와 경제 교류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북한 선교의 기본이다.

 

 

북한의 식량 사정과 ‘5 · 24 조치’

 

지난 3월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유엔 아동기금(UNICEF)은 북한의 9개 도, 40개 군을 방문하여 식량 실태를 조사한 뒤 발표한 보고서에서 43만 톤의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

 

유엔 기구들은 이 보고서에서 겨울 한파로 북한의 밀과 보리, 감자의 동절기 작황이 극히 부족하고, 국제 곡물가 상승으로 곡물 수입량이 줄어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북한 취약 계층 610만 명에 대한 외부 지원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하였다.

 

4월 평양을 방문하였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디 엘더스(The Elders : 국제 원로 정치인 분쟁 해결 모임)’는 “북한의 식량 문제는 만성적인 것도 있고 북한 정부가 제대로 못해서 생긴 문제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굉장히 심각한 상태이며, 여성, 아동을 포함한 인도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와 별개로 다뤄져야 하는 기본적 권리이다.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는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라며 한국과 국제 사회가 긴급히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8월 방한해서 한국 정부에게 조건 없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거듭 촉구하였다. 반 사무총장은 인도적 지원에 관한 한 정치적인 고려 없이 인도적 지원을 함으로써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과 다른 인식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겨울의 한파로 곡물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든, 일부의 주장대로 군량미 비축 때문이든, 아니면 내년 김일성 100주년 생일을 준비하기 위한 식량 조달 목적이든 북한 주민이 굶주리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객관적인 사실에도 우리 정부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 제재 조치인 ‘5 · 24 조치’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정부가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북 화해 정책 대신 대결 정책을 고수해 온 정부로서는 입장 선회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가로막으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대규모 대북 지원을 안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나라의 지원까지 막으려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도 맞지 않고 인도주의를 모독하는 비인도주의 처신이다.

 

정부는 ‘5 · 24 조치’를 내세워 지방 정부와 민간단체의 인도적 대북 지원도 제재하고 있다. 인도적 대북 지원 단체들은 그 동안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도와주려고 쌈짓돈을 모아 지원 성금을 마련해 왔다.

 

내가 활동하는 ‘사단법인 평화3000’은 장충성당 내에 콩우유공장을 설립하여 북한 어린이들에게 콩우유를 공급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5 · 24 조치’를 내걸고 콩우유 원료 지원을 불허하여 1년 이상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수단으로 인도적 지원을 악용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인도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며,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부당한 조치이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 평화와 상생, 화해 협력과 나눔의 영역이 되어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은 화해의 성사인 교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불편한 진실이다.

 

 

북한 선교, 가능한가?

 

북한에서 사회주의는 과학이고, 종교는 미신이다. 종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푸는 직접 선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주민들에게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인도적 지원이고, 인도적 대북 지원을 통한 간접 선교는 가능하고 효과가 있다.

 

남한 천주교에서 지원한 물자를 받은 북한 사람이 “천주교도 좋은 일을 하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북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는 인도적 지원이다.

 

이보다 더 확실한 선교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있었다. 미국에서 보내준 밀가루를 받으려고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사람들을 말한다. 인도적 지원의 위력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강화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과 북이 하나로 통하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 북한 선교이다.

 

* 박창일 요한 - 예수성심전교회 신부, (사)평화3000 운영위원장.

 

[경향잡지, 2011년 10월호, 박창일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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