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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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ㅣ복음화

선교1: 성장주의와 복음화 - 문제의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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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8 ㅣ No.72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선교 1. 성장주의와 복음화 - 문제의 제기


양적 성장주의, 선교에 득? 실?

 

 

- ‘선교’에 대한 개념 정립과 이해를 위해 90년대 이후 유행처럼 확산됐던 대규모 선교운동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 분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가두선교 장면(사진은 기사중 특정 사실과 관련없음).

 

 

“세속 경제 논리에 물든 성장주의야말로 선교 또는 복음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은 비단 개신교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경종이다.”(최원호 신부, 월간 사목지 주간, ‘선교와 성장주의’, 사목 2007년 1월호, 13쪽)

 

교세 팽창으로서의 선교, 성장주의에 압도된 선교의 개념은 오랫 동안 그리스도교의 선교 활동의 목표로서 오인돼 왔고 한국 천주교회를 비롯한 종교와 종교인들에게 여전히 가장 일차적인 존립의 근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인식에 치명적인 경종을 울린 것이 바로 지난해 후반기에 발표된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였다. 가장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선교에 매진해왔던 한국 개신교의 충격적인 쇠퇴와 상대적으로 선교에 소극적이라고 평가되는 천주교회의 놀라운 약진이라는 대조적인 사실은 팽창주의와 성장주의가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일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왔다.

 

따라서 이 조사 결과는 개신교로 하여금 긴박한 위기 의식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다시금 성찰하도록 촉발시켰고, 실제로 일각에서는 바로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선교의 위기를 중심으로 참된 신앙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회는 이러한 위기감과 반성과 성찰의 요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과연 개신교의 쇠락에 기대지 않는, 복음의 진실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비추어 한국 천주교회는 참된 선교의 소명을 실천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연중기획 ‘공의회는 끝나지 않았다’ 1월의 주제로 선정된 ‘선교’에 대한 우리의 성찰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팽창과 양적 성장을 그 자체로 목적으로 삼지 않는, 스스로의 복음화와 이웃 및 하느님에 대한 충실과 사랑의 자연스러운 발로로서의 선교를 지향할 때, 지금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모습은 냉엄하게 성찰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바로 우리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점에서 시작해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문제들은 수다하다.

 

첫 번째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과연 한국 천주교회는 개신교가 직면해 있다고 생각되는 선교의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위기의 실체는 다시 또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70년대와 80년대 구가하던 높은 교세 신장 추세가 90년대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70, 80년대 급속한 성장의 요인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이 참된 복음화와 선교의 양상이었던가를 검토하는 동시에, 90년대 성장 추세의 감퇴는 또한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 천주교회는 성장주의에서 비켜서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개신교의 성장주의를 비판하지만, 그렇다면 천주교회는 그러한 성장주의에 거리를 두고 있는가 하는 자아 성찰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 즉, 교세 신장율이 떨어지면서 더욱 강화되기 시작한 성장주의의 징후는 이러한 질문을 더욱 중요하게 만든다. 이전에는 개신교의 전유물처럼 알았던 가두선교, 방문선교, 대규모 선교 운동 등은 그것이 지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이라는 긍정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칫 성장주의의 목표 지향이 짙게 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에는 각 교구와 본당, 한국 천주교회 전체의 선교 개념과 전략, 정책 안에 내포된 성장주의의 지향에 대한 반성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대조 사회’에 대한 지향을 바탕으로, 과연 한국 천주교회의 공동체들이 교회의 울타리 밖과 도대체 차별되는 요소들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없다면 왜 그런 것인가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한때 한국 교회 선교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대규모 선교운동, 즉 새로운 양 찾기, 잃은 양 찾기 류의 대규모 선교운동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 분석이 필요하다. 대규모 선교운동이 과연 선교의 대안일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관리가 부재한 냉담자의 양산 기제는 아닌지, 인력과 재정의 단기적이고 집중적이며, 이벤트적인, 소비적 운동은 아닌지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성찰과 분석은 결국 하나의 모색, 즉 미래 교회의 사목적 차원에서의 선교 방법론의 모색으로 귀결된다. 오늘의 세계와 한국 사회 안에서 가톨릭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 것인지를 공의회의 가르침과 복음적 정신, 교회의 전통과 지혜 안에서 모색돼야 한다.

 

 

◎ ‘사목’ 1월호 주요 내용

 

가톨릭신문과 연중 공동기획을 진행하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 발행 월간 ‘사목’지 1월호에는 ‘선교’를 주제로 모두 6편의 글이 마련됐다.

 

머리말격인 ‘선교와 성장주의’(최원오 신부)는 3쪽 분량의 짧은 글 안에서 성장주의에 물든 교회의 선교 지향은 오히려 선교 또는 복음화의 걸림돌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필자는 세속의 논리를 뛰어넘어 세상과는 구별되는 ‘대조 사회’에 대한 권고를 선교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필자들의 글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초기 교부 시대의 선교’(하성수)는 서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으로써 초기 교부 시대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삶과 영성이 ‘믿음에 바탕을 둔 도덕성과 사랑’이었음을 지적하며, 결론적으로 가장 좋은 선교 방법은 우리 “그리스도인 스스로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선교와 성장주의’에서 필자가 강조한 ‘대조 사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성장의 종말과 그리스도교의 선교’(장윤재)라는 글에서는 좀 더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성장주의의 말로를 지적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한국 교회가 이제는 ‘교회 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포교와 선전으로서의 전도, 확산과 확대로서의 교회 이식을 목적으로 하는 전도가 커다란 과오이며, 양적 성장주의와 복음 선포를 동일시함으로써 나타난 문제라고 지적한다.

 

종교 밖에서 각 종교의 선교를 보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는 ‘한 국외자의 선교를 보는 시각’(정진홍)은 자기 종교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세 불리기를 목표로 하는 선교를 그 자체로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그것이 종교의 울 밖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를 지우고 부정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독선으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필자는 나아가 선교가 ‘주장의 확산’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한 감동의 실천’인 경우 그것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지적하면서, 선교는 강요나 설명이 아니라, 고백이며 증언으로서의 실천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에 비종교인들은 종교인들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필자들의 주장에 일관되는 것은 결국 자기 주장의 일방적 강요를 통한 양적 팽창과 성장에 매달리지 않는, 신앙한다는 것은 그 당사자의 삶 자체의 신앙적 양태를 수반하며, 그것은 믿지 않는 이들과는 다른 대조적 삶으로 종교적 진리를 증거하며 결국 그것이 참된 선교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요약된다고 하겠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정신과 한국 교회’(김광태)는 가톨릭 교회의 선교관에 대해서, 공의회 이전과 이후를 비교 성찰하고, ‘현대의 복음선교’나 ‘교회의 선교 사명’ 등 굵직한 교회의 선교 관련 문헌들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인천교구와 서울대교구 시노드 문헌 등을 통해 나타난 선교관과 선교에 대한 인식을 살펴봄으로써 보편교회는 물론 한국교회가 선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한 한국교회의 당면 문제는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가톨릭신문, 2007년 1월 7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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