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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아버지 여정: 천재공장이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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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4-22 ㅣ No.613

[아버지 여정] ‘천재공장’이 실패한 이유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자신을 낳아준 친아버지와 자신을 길러준 양아버지 가운데 누구의 영향력이 더 클까요? 정답은 ‘양아버지’의 영향력이 더 큽니다. 아버지의 역할은 생물학적인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아버지들은 자녀를 위한 씨만 뿌려놓고 자녀의 양육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생물학적인 아버지에 머물러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천재공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천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엽기적인 공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에스콘디도에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이 공장의 설립자인 로버트 그레이엄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정자를 기증받아 217명의 천재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모두 천재로 성장했을까요?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천재공장의 인간품종 개량사업은 실패로 돌아갔고 1999년에 문을 닫게 됩니다.


아버지의 정서적인 보살핌이 중요하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이가 성장하는 데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자보다 후천적인 생활환경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곧, 노벨상을 수상한 아버지의 씨앗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정서적인 보살핌입니다.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자녀 가운데 22%가 아버지가 없는 편모 가정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편모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전체 청소년 자살의 63%를 차지합니다.

또한 교정기관에 수감되는 청소년의 70%, 고등학교 낙제생의 71%, 청소년 약물남용 환자의 75%, 마약 복용자의 80%, 분노로 인한 강간범의 80%, 행동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85%, 감옥에 수감 중인 청소년의 85%, 노숙자의 90%, 가출 아동의 90%를 차지합니다.

또 다른 통계를 살펴보면 가정에 아버지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을 경우 자살할 확률이 5배 증가합니다. 또한 낙제할 확률은 9배, 약물을 남용할 확률은 10배, 강간을 저지를 확률은 14배, 행동장애를 일으킬 확률은 20배, 감옥에 갈 확률은 20배, 그리고 가출할 확률은 32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1958년에 태어난 1만 7,000명을 대상으로 무려 50여 년에 걸친 추적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성장요인을 분석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영국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연구가 밝혀낸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최종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가 전반적인 삶의 질을 결정한다!”

연구 결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았던 아이들은 학업 성적이 높았습니다. 청소년기에 범죄에 물드는 확률도 낮았고,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에서 오는 정신적인 후유증에도 잘 견뎌냈습니다. 또한 어른으로 성장한 다음 아버지의 가난을 대물림할 확률이 낮았습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역할 모델

자녀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중요한 이유는 어머니의 사랑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자녀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 역할이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어머니는 주로 인간관계의 측면에 대한 역할 모델이 되는 반면, 아버지는 사회적인 측면에 대한 역할 모델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일을 대하는 방식,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직업적 목표를 추구하는 면에서 아버지는 자녀에게 고유한 역할 모델이 됩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지 못하는 사랑을 아내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 채워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품속에 꼭 안아서 이곳이 자신의 세상이라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반면 아버지는 아이를 가장 높은 언덕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도록 해야 한다”(마야 인디언 속담).


아버지 노릇을 못할 바엔 차라리 가만히 있어라

아버지가 수행하는 자녀교육은 어머니보다 두 배의 효과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녀에게 각각 100만큼 투자하면 어머니는 보통 100이라는 결과를 그대로 얻는 반면 아버지는 100을 초과해 120, 150, 심지어 200이라는 결과를 얻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긍정적인 자녀양육에서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자녀양육에도 똑같이 적용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잘하면 2배의 효과가 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오히려 2배의 역효과가 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엔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노력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아직은 괜찮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미루고 또 미룹니다. 이런 분들에게 불편한 진실 하나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는 제한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미국의 부모교육 창시자인 토머스 고든은 아버지에게 주어진 시간은 자녀가 만 13세가 되기 전까지뿐이라고 경고합니다. 자녀가 만 13세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가 조금만 노력하면 자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가 넘어가게 되면, 곧 자녀의 사춘기가 시작되면 아무리 아버지가 다가가려 해도 자녀는 멀어지기만 합니다. 그리고 한 번 멀어져 버린 정서적인 관계는 평생 굳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노력과 공부는 절대로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또한 현재 자신의 자녀가 만 13세가 훌쩍 넘어버렸다고 포기해 버리는 것은 더더욱 안 됩니다. 그것은 아버지로서 주어진 사명에 대해 커다란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마주보며 ‘아빠(Abba)’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자녀는 나를 어떤 말로 부르고 있을까요? 먹고사는 데 너무 바빠서 ‘아빠’가 아닌 ‘바빠’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나빠’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 권혁주 라자로 -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가족관계 프로그램 개발 연구원. 그동안 서울대교구 혼인강좌, 부부여정, 아버지여정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경향잡지, 2012년 4월호, 권혁주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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