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강론자료

2015-0113.....연중0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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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01-12 ㅣ No.1677

연중 제1주간 화요일 - 홀수 해

히브리서 2,5-12               마르코 1,21-28

2015. 1. 13. 이태원

주제 : ‘하느님에 대한 옳은 신앙고백의 방법은?

세상 사람들의 삶은 힘든 일과 어려운 일들이 겹쳐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할 것이고, 분리해서, 따로따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의 세계에서 바라보면 악의 세계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기 쉽지만, 그 악의 세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어도 선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이라는 곳은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장소였고, 실제로 그 일이 실행되던 곳이었습니다. 그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특별한 일을 하셨는데, 왜 그 자리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는 표현은 대단히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신앙고백의 으뜸으로 여기고 아주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는 베드로사도의 메시아고백보다도 훨씬 앞선 일입니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조금 전에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들은 이 소리, 더러운 영이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낸 소리를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드러난 일에 대한 판단이 좋으려면 말 그대로 드러난 일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가 속으로 혹은 바탕으로 갖고 있는 삶의 자세도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중의 순서가 바뀌면, 평가는 달라지기 마련일 것입니다.

 

세상에 통용되는 말에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헌데 정말로 그럴까요? 세상의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런 표현을 쓰지만, 시작이 나쁜 것이 뻔히 보였는데도, 잘못된 길을 가다가 마음을 돌이킨 인간을 위로하려고 만든 말일 것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시작은 나빴는데, 결과는 좋을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분(=넉넉히/충분히) 양보해서 세상의 일에는 그런 말을 적용해서 위로할 수 있다고 해도, 같은 말이 신앙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생각해봐야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일에도 그런 말의 적용이 가능할까요?

 

신앙인들이 혹시라도 세상의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자세를 신앙의 일에 대하여 마음자세를 가질 때는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문제라고까지 하지 않는다면, 어떤 불협화음이 생기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특별한 사랑의 자세를 보이신 것은, 그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을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인간을 특별하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의 순서를 바꾸면 큰일 납니다.

 

하느님, 당신 앞에 올바로 서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당신의 사랑과 평화를 선물로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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