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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복자 124위 열전58: 박상근 마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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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5-05 ㅣ No.1477

[복자 124위 열전] (58) 박상근 마티아


아전 출신으로 이웃 돕고 전교에 힘쓰다 순교의 길 걸어



복자 박상근 마티아


124위 중 안동교구의 유일한 순교복자인 박상근(마티아, 1837∼1867)은 이서(吏胥), 곧 아전을 지낸 인물이었다. 지방 관아의 하급 관리인 향리였다. 당연히 남 부러울 게 없는 삶을 살았을 터다. 그런데도 그는 신앙을 선택했다. 입교가 곧 순교로 이어지는 시대라는 사실을 아전을 지낸 그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신앙의 길, 순교의 길을 걸었다.

그의 선택은 과연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왜 그 길을 걸었을까, 그 여정을 살펴보자.

박상근 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조선조 후기다. 삼정(三政), 곧 세금 징수와 관련된 전정(田政)이나 군역 업무인 군정(軍政), 춘궁기 때 농민에게 식량과 씨앗을 빌려주었다가 추수한 뒤에 돌려받는 환정(還政)의 혼란이 극심했던 시대다. 돈이나 지위 같은 가치에 마음을 뒀다면, 그는 아전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얼마든지 돈을 착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터다.

그렇지만 그는 신앙을 받아들였고, 세속 가치를 내려놓았다. 시복자료집에는 그가 무슨 계기로 신앙을 받아들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입교 동기나 과정이 베일에 싸여 있는 셈이다. 다만 아전을 지낸 그는 신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과거 경력을 활용해 도움을 줬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이에 비춰볼 때 신앙의 길을 걷기로 한 그는 아전이라는 신분은 포기했지만, 그 경력을 살려 남들을 도우며 믿음살이에 전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숙모인 홍 마리아와 친척들, 이웃에 열심히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며 전교에 힘썼다. 또한, 비신자 어린이들이 죽을 지경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달려가 대세를 주곤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1861년 4월 조선에 들어와 경상도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칼레 신부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된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직후 좁쌀을 사러 경북 문경의 한실 교우촌에 갔던 그는 숨어 있던 칼레 신부를 만나 자신의 집으로 모셔온다. 그러나 박해자들에게 쫓긴 두 사람은 사흘 뒤 새 은신처를 찾아 다시 한실로 돌아가야 했다. 이때 한실이 바라다보이는 산에 오른 칼레 신부는 박상근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가 박해자들에게 잡힐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때 박상근이 울먹이며 칼레 신부에게 했다는 말이 오늘에도 전해져온다.

“제가 신부님 곁을 떠나다니요. 혹시 한실이 습격당했다면 신부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려고요. 은신할 곳도 없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신부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가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이 험한 곳에서 돌아가신다면, 저도 기꺼이 따라 죽겠습니다.”(1867년 2월 13일 자로 칼레 신부가 알브랑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박해시대 신자들의 사제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박상근은 칼레 신부의 거듭되는 강권에 순종, 집으로 돌아온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피신한 칼레 신부는 페롱 신부와 함께 중국으로 탈출, 「한어 문전」 집필을 거들고 조선에서의 박해 상황과 순교자 전기를 기록해 파리로 보냈다.

반면, 박상근은 숙모 홍 마리아,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돼 상주로 끌려갔다. 그는 관아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천주교를 봉행하고 있다”며 신앙을 증언한다. 그러고 나서 함께 옥에 갇힌 교우들에게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자”고 권면했고,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많은 교우도 순교에 이르렀다.

박상근 또한 1866년 1월 옥중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평생 유복한 삶이 보장된 아전의 자리를 포기하고 기쁘게 순교의 길을 걸어간 청년 박상근의 삶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신앙적 삶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서른 생애, 비록 짧지만 강렬한 필치로 풀어낸 전교와 순교의 신앙, 그것이 박상근 복자의 삶이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3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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