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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4명의 약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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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1-25 ㅣ No.323

[순교자 약전] '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124명의 약전을 연재하며

 

 

지난 3월7일, 한국순교자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박정일 주교)에서는 그 동안 ‘하느님의 종 선정 위원회’에서 협의, 검토 작업을 거쳐 선정한 시복시성 대상 순교자 111명을 인준하였다. 

 

동시에 주교 특위에서는 이 111명의 순교자와 이미 1989년과 1996년에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시복 추진에 장애 없음’을 인준받은 전주와 수원교구의 하느님의 종 13명에 대한 시복 안건을 통합하여 모두 124명의 순교자를 단일 안건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그 통합 안건의 제목을「첫 순교자 윤지충과 동료 순교자 및 주문모 신부」로 결정하였다.

 

이후 주교 특위 위원장 박정일(미카엘) 주교는 청원인 류한영(베드로) 신부와 선정 위원들이 다시 한 번 검토한 124명의 순교자에 대한 제1차 시복 시성 추진 작업을 확정 인준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오래 전인 1982년과 1984~1985년에 교회 창설기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 작업을 진행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었고, 각 교구별로는 1987년 이래 전주교구를 시작으로 수원,청주,대구,제주교구에서 시복 추진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이처럼 하나의 박해로 인해, 그것도 이 땅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한 신앙 선조들에 대한 시복 작업을 추진하면서 “어느 순교자는 빠지게 되고, 어느 순교자는 하느님의 종에 오르게 되었다”는 문제점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1999년 초부터 시작한 것이 ’한국 순교자 시복 시성 통합 추진회의‘였고, 그 결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 선정위원회와 주교 특위의 구성이었다. 

 

이제 주교 특위의 인준으로, 처음부터 시복 시성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던 순교자들과 103위 한국 성인의 시복 과정에서 누락된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 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시복 시성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드러내온 염원이기도 하였다. 주교 특위와 청원인, 선정 위원들의 일관된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차 시복 시성 추진 대상 순교자들에 대한 약전을 작성하여 시성성에 교령을 신청하고, 전국적으로 그분들에 대한 현양 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될 것이다. 

 

물론 교구 자체적으로 이미 시복 시성을 위한 현양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그분들에 대한 순교 행적을 널리 알리고, 그래서 신자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기도와 현양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지금의 시복 추진 작업을 우리 모두의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 난을 통해서는 앞으로 시복 시성 대상 순교자들의 약전을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시복 안건의 제목에 맞추어 우선 첫 순교자인 윤지충(바오로)과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행적을 소개하고, 나머지 순교자들은 박해 시기별로 나누어 가나다순으로 수록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신자들의 자발적인 기도와 현양 운동에 보탬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많은 이들의 관심을 기대해 보고 싶다. 

 

다만, 이번에 주교 특위에서 시복 시성 대상 증언자로 선정한 2명, 즉 김범우(토마스)와 최양업(토마스) 신부는 여기에서 소개하지 않는다. 이 증언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 작업은 앞으로 해당 교구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들에 대한 선정 검토 작업은 물론 서울?수원?대전교구에서 추진하게 될 병인박해(1866년) 이후의 순교자들에 대한 선정 작업도 하루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들 제2차 시복 시성 추진 대상 순교자들과 이번의 1차 대상자들이 다시 하나의 안건으로 묶여질 때, 비로소 진정한 통합 추진 작업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해 시기별 시복 시성 대상 순교자>

 

신해박해(1791년) 을묘박해(1795년) 정사박해(1797년) - 순교자 수 14명

신유박해(1801년) - 순교자 수 54명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기해박해(1839년) - 순교자 수 36명

병인박해(1866년) 이후 - 순교자 수 20명

 

[평화신문, 2002년 6월 16일, 한국순교자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역사위원 차기진(루가),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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