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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순교자성월 기획1: 상복(喪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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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28 ㅣ No.1104

[순교자성월 기획] (1) 상복(喪服)

서양 선교사들 상복으로 변장하고 전교


순교신심을 돌아보게 하는 9월 순교자성월, 가톨릭신문 수원교구는 ‘순교’와 관련된 주제어를 선택, 5주간 연재한다.

주제어는 순교자들의 생활상이 얽혀있는 유·무형의 도구나, 신앙선조의 순교사와 관련된 단어들로 구성했으며, 문헌 등을 통해 증명된 것과 함께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어우러져있다.


한국교회 초기 프랑스에서 온 선교사들은 상복으로 변장하여 서양인의 생김새와 서툰 조선말을 숨길 수 있었다.


조선시대 상복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에게 좋은 변장 수단이었다. 당시 상장례 예법상 부모를 잃은 상주는 죄인이므로 얼굴을 가리게 돼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양인의 생김새와 서투른 조선어를 숨길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조선인들과 다른 몸매 또한 마로 된 펑퍼짐한 옷으로 가려질 수 있었다.

따라서 선교사들은 성사여행을 다니거나 근처에 사는 교우 집을 방문할 때 꼭 상복을 착용해야만 했다. 베르뇌 주교는 서한을 통해 “우리는 상복을 입고 있는데, 어깨까지 내려오는 짚으로 된 큰 모자를 쓰고, 유럽에서 쓰는 포장용 천과 비슷한 마로 된 옷을 입고, 역시 짚으로 만든 신발을 싣는다”고 묘사한다.

조선에 입국하기 전 모방 신부 또한 상복으로 변장해 완전한 상주의 모양새로 차려 입었다. 모방 신부는 압록강 언덕에 도달하기 전, 솜바지 옷과 삼베로 만든 긴 상복을 입고 얼굴 전체를 가렸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큰 방갓과 두건을 쓰고 짚신을 신었다.

유홍렬씨는 책 한국천주교회사를 통해 “그 이후 조선에 들어오는 서양의 성직자들은 모두 이러한 옷차림을 하고 입국하며 국내를 돌아다니게 됐는데, 이러한 모습은 1890년경까지 계속됐다”고 적고 있다.

지난해 교구 손골성지(전담 윤민구 신부)는 오매트르 성인을 포함, 103위 성인 가운데 10위의 프랑스 선교사 중 6위의 고향과 초대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제3대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고향을 방문한 바 있다. 이들은 당시 서양선교사들이 상복을 입고 신분을 감췄던 점에 착안, 상복을 입은 선교사들의 실물크기 모형을 만들어 프랑스 교구에 전달하기도 했다.

여러 문헌을 통해 보았을 때, 대부분 서양 선교사들은 상복으로 변장하고 이동했다. 흥미로운 사실이지만 당시 신앙선조의 지혜와 절박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2년 9월 2일, 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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