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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사회] 간추린 사회교리: 문화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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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8 ㅣ No.989

[간추린 사회교리] 문화와 교육


어느 날, 성당 마당에서 신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교우분이 “신부님! 저 오늘 돌잔치 갔다가, 신부님 생각이 나서 신부님 것도 하나 챙겨왔어요!” 하시며, ‘복(福)’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작은 ‘떡 상자’를 주고는 급히 자리를 뜨셨습니다. 저는 그 떡 상자를 냉동실에 넣어두었습니다.

나름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식복사를 두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 아침을 거르지만, 주일이나 대축일에는 아침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토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마침 그 떡 상자가 생각이 나서, 주일 아침식사 때 먹으려고, 냉동실에서 꺼내 주방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주일 아침, 미사를 마치고 떡 상자를 열었습니다. 맙소사! 떡 상자 속에는 떡 대신 예쁜 돌 기념수건이 들어있었습니다. 당혹스러움과 황당함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세상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목적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는 구체적 일상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방향과 목적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이 삶의 나침반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구체적 가르침의 요약입니다. ‘문화와 교육’이라는 주제가 주는 인상이 너무 크고 무거울 수도 있지만, 사실 ‘문화와 교육’이라는 주제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아주 쉽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Gloria Dei vivens homo).” 곧 인간이 자기 존엄에 맞갖게 살아가면 바로 이러한 존엄을 부여해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임을 말합니다.

저는 밥을 해 먹을 때, 참기름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기름집에서 짠 참기름을 1.5리터 탄산음료 용기에 담아 사용합니다. 플라스틱 탄산음료 용기에 들어있는 참기름이지만 맛은 최고입니다.

껍데기는 알맹이의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껍데기가 알려준 정보와 알맹이가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당혹스러움과 황당함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제가 받았던 떡 상자 속의 기념수건처럼 말입니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입니다. 제 주방의 참기름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신앙인들, 곧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 태어난 신앙인들이 구체적인 일상 안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간다면 알맹이를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사회교리는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되돌리려는 노력

현대 세상은 ‘빠름’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교묘하게도’ 그 빠름이 지향하는 목표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어디로 달려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도록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그 지향이 무엇인지 고민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은 속도지상주의 문화의 극단적인 면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절차를 중시하지 않는 성과주의, 인간마저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업주의와 잘못된 소비주의, 물질 만능주의 등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의 흐름에 휩싸여 덩달아 함께 흘러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부끄럽게도,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인 나라에 살면서도, “그래도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이성적인 반성 없이 외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죽음의 문화 속에 머물면서도 스스로 자각조차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회교리는 이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되돌리려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삶 속에서 끊임없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도록 초대합니다. “왜?” “무엇을 위하여?” “이 제품 안에, 이 제도 안에 인간의 가치가 제대로 실현되어 있나?” “나의 선택이 정녕 하느님 나라를 위한 선택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선택일까?”

철학적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죽음의 문화가 제일 좋아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본질은 숨겨진 능력을 끄집어내는 활동

교회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며 만들어가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들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초대합니다. 「간추린 사회교리」가 정확히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회교리를 보급하는 이유 역시, “사랑의 문명의 건설을 위하여” 노력하는 우리들에게 명확한 가치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인간은 인격을 지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닮았고 창조의 절정이라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이끌어주는 노력이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을 뜻하는 영어단어 에듀케이션(education)은 라틴어 에두카레(educare, 이끌어내다. 끄집어내다)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받은 인간의 소중한 가치들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숨겨진 능력들을 끄집어내는 활동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공명현상이란 단어가 요즘은 우리들 일상 안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진동수가 같은 소리굽쇠를 가까이 두고 한 쪽을 때리면 다른 한 쪽도 같은 소리를 내는 현상을 말합니다. 교육이란 바로 공명현상의 원리와도 같습니다.

가정은 이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입니다. 특히 “부모들은 말과 모범으로써, 관계와 선택의 일상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상징들을 통하여, 자녀들을 진정한 자기증여로 실현되는 참다운 자유로 이끌어가며, 자녀들 안에 타인에 대한 존중, 정의감, 진심 어린 개방, 대화, 헌신적인 봉사, 연대, 그 밖의 모든 다른 가치를 심어줍니다”(「생명의 복음」, 92항).

많은 분들이 교회의 가르침과 현세의 흐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 하나 바뀐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라는 인식도 만연합니다. 세상은 점점 하느님 나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고, 뚜렷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주님께 의지하고 의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끝으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이신 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 추기경께서 2004년 4월 2일 「간추린 사회교리」를 발표하며 신자들에게 당부한 아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모든 신자는 무엇보다도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라고 한 베드로 사도의 표양을 따라 믿음의 힘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김준영 미카엘 - 의정부교구 문산본당 주임신부. 1996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교에서 교의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 런던 캄피온하우스컬리지에서 연수했다. 1997년 사제품을 받고, 1999-2004년까지 북경어언문화대학에서 중국문화를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제관계를 연수했다.

[경향잡지, 2012년 11월호, 김준영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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