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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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성경 속 생명 이야기10: 생명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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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4-12 ㅣ No.1137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0) 생명의 원천


창조주 하느님은 모든 생명의 원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한 원천에서 생겨났습니다. 


성경은 첫 책부터 마지막 책까지 하느님을 영원히 살아계신 분으로 증언하면서 생명의 원천으로 제시합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있었음'(창세 1,2)을 밝히고 하느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1,4)으로 선포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존재의 원천이신 이유는 영원한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한처음에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창세 1장) 하느님의 창조활동이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육화한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실현됐음을 요한복음서는 매우 장엄하게 선포합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1.3-4).

하느님의 무상적 사랑으로 창조된 인간이 선을 거부하고 악을 선택해 죽음의 나락에 떨어지자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새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인간이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최고 방식인 아드님의 육화로 당신의 큰사랑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전해짐으로써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음을 요한 1서의 저자는 생생하게 증언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1요한 1,1-2). 예수님의 공생활, 죽음 그리고 부활을 실제로 체험한 감동에서 나온 이 증언은 우리가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를 깊이 느끼게 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인간을 살리는 구원의 도구로 내어주실 만큼(요한 10,10) 우리는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들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구약시대에 매우 설득력 있는 표현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도한 이사야 예언자의 글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이사야 예언자가 어머니와 갓난아기의 관계를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로 비교한 것은 우리 각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논리를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앎으로써 우리 자신의 생명이 소중함을 깨닫고 타인의 생명 또한 존중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체험한 고통을 기억해 훗날 자유인으로 살아갈 때 다른 이를 자비롭게 대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매우 큰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탈출 22,22).

주님은 생명을 살리는 분이십니다. 공생활 중에 육체적, 윤리적, 영적 차원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병자들에게 언제나 연민으로 다가가 치유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태 4,24).

예수님께서 사람이 돼 세상에 오신 목적은 여러 죽음의 상황으로 인해 자유를 잃고 고통의 어둠속에 있는 인간에게 생명을 되찾아주시려는 것입니다. 곧 모두가 골고루 충만하게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때, 생명의 원천이신 주님을 떠올리면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평화신문, 2014년 4월 13일,
민남현 수녀(엠마, 성바오로 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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