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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26차 청소년주일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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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5-13 ㅣ No.418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26차 청소년 주일 담화문

(2011년 5월 29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 참조)

 

 

사랑하는 벗들이여,

 

저는 2008년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 청년 대회를 자주 돌아봅니다. 그때 우리는 하느님의 영께서 힘차게 활동하시며 세계 각지에서 온 참석자들 사이에 깊은 친교를 이루게 해 주신 위대한 신앙 축제를 경험하였습니다. 그 대회는 이전의 대회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젊은이의 인생과 온 교회의 삶 속에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2011년 8월 마드리드에서 열릴 다음 세계 청년 대회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1989년 역사적인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있기 몇 개월 전에 젊은이들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한 바 있습니다[제4차 세계 청년 대회]. 유럽이 자신의 그리스도교 뿌리를 되찾을 필요가 매우 절실한 바로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 참조)라는 주제로 마드리드에서 만날 것입니다. 저는 유럽 교회와 세계 교회 모두에게 참으로 중요한 이 행사에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젊은이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공유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머뭇거리거나 의심하고 그분을 믿지 않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인생에 중요할 수 있는 이 경험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부활하시고 살아 계신 주 예수님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그분 사랑의 경험입니다.

 

 

1. 여러분의 가장 깊은 열망의 원천에서

 

우리 시대도 그렇지만 각 시대마다 많은 젊은이들은 진리와 연대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깊이 열망해 왔습니다. 그들 대다수는 진정한 우정을 쌓고 참 사랑을 알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자아실현을 이루며 참다운 안정을 얻기를 열망합니다. 이 모든 것이 평온하고 행복한 미래에 대한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볼 때, 젊은이들이 가장 염두에 두는 주요 문제가 안정이나 평온함이 아님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직장을 갖고 안정된 기반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 시절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닫고자 노력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저의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볼 때 무엇보다도 기억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진부한 중산층의 삶에 안주하는 것을 꺼렸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는 위대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했습니다. 우리는 위대하고 멋진 삶을 찾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는 시대 상황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나치 독재와 전쟁 속에서 우리는 말하자면 지배 권력 구조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폭넓은 가능성을 경험하고자 열망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탈피하고픈 이러한 충동이 모든 세대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생활과 안정된 직장을 벗어난 어떤 것을 열망하고 참으로 위대한 무언가를 염원하는 것도 젊음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한낱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인간은 실로 위대하고 무한한 무언가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 외 다른 어떤 것도 불만족스러울 따름입니다. “당신 안에 쉬기까지 우리 마음에는 안식이 없나이다.”("고백록")라고 고백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은 참으로 옳습니다. 더욱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열망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에게 그분의 ‘인호’가 새겨져 있다는 징표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십니다. 바로 이 때문에 모든 피조물은 생명을 지향합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고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이를 추구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열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에서 하느님을 지워버려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하느님을 밀어내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충족감과 기쁨을 스스로에게서 빼앗는 일입니다. “창조주가 없으면 피조물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사목 헌장 36항). 세계의 일부 지역, 특히 서방의 현대 문화는 하느님을 배제하고 신앙을 사회생활과는 무관한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연대, 노동, 가정의 의미처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들은 복음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하느님의 실종’(eclipse of God), 곧 일종의 기억 상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교를 드러내 놓고 거부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받은 신앙의 보화를 부인하는 것으로,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이러한 연유로 저는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기를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사회와 교회의 미래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써 보냈듯이, 뿌리를 내려 견고한 토대를 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오늘날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삶의 확실한 준거를 갖지 못하여 크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똑같이 유효하고 진리나 절대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참다운 자유는커녕, 불안과 혼돈, 맹목적인 유행 추종으로 이끕니다. 어린 나무가 깊이 뿌리 내려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까지 한결같은 보살핌이 필요하듯, 젊은이 여러분도 이전 세대들에게서 삶의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확고한 판단 기준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십시오

 

저는 신자들의 삶에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취지에서 여러분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 참조)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나오는 세 가지 표현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우선 ‘뿌리를 내리다’라는 표현은 나무와 그것에 양분을 공급하는 뿌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굳건히 세우다’라는 표현은 집 짓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튼튼히 자리를 잡다’라는 표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장을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 모습이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뚜렷합니다.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저는 먼저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 이 세 가지 표현이 모두 문법적으로 수동태로 쓰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바로 신자들이 뿌리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튼튼히 자리 잡도록 그리스도께서 앞장서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첫 번째 모습은 땅위에 단단히 뿌리 내린 나무의 모습입니다. 나무는 뿌리 덕분에 올곧게 자라고 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뿌리가 없다면, 나무는 바람에 휩쓸려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물론 부모님과 가족, 우리 나라의 문화도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정체성의 또 다른 구성 요소를 드러내 줍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7-8).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뿌리를 뻗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생명을 얻습니다. 하느님께서 안 계시면 우리는 참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1요한 5,11). 예수님께서도 친히 당신 자신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일러 주십니다(요한 14,6 참조).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은 진리에 대한 믿음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우리의 실존 전체에 새로운 힘을 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참다운 신원을 밝혀 주시고, 우리의 삶은 그분과 이루는 친교를 통하여 완덕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누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는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의 목적과 방향을 어떻게 세워 나가야 하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한동안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여야 하는지,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하는지, 어떻게 친교를 쌓아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다시 한 번 제 젊은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저는 꽤 이른 나이에 제가 사제가 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전쟁이 끝난 뒤 그러한 목적을 향하여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정진하면서 저는 그 확신을 되찾고자 노력하여야 했습니다. 저는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 길이 참으로 내가 가고자 한 길인가? 이것이 참으로 하느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뜻인가? 내가 언제나 하느님께 충실하고 그분께 온전히 봉사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갈등이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확신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거다! 그래, 주님께서 나를 원하시는구나. 그러니 그분께서 내게 힘도 주실 거야. 내가 그분께 귀 기울이고 그분과 함께 걸을 때 참다운 나 자신이 되는구나. 중요한 것은 내 바람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삶이 된다.’

 

튼튼한 뿌리가 있어 나무가 땅에 단단히 자리를 잡듯이 탄탄한 토대가 있어 집이 오래 유지되는 것입니다. 집이 그 토대 위에 세워지듯이 우리는 신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굳건히 세웁니다(콜로 2,7 참조). 거룩한 역사 안에는 하느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자기 삶을 세운, 본보기가 되는 많은 성인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가 신앙의 선조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순종하여 자기 선조들의 고향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야고 2,2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굳건히 세운다는 말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루카 6,46) 하고 당신 제자들을 나무라셨습니다. 이어서 집 짓는 비유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실행하는 이가 어떤 사람과 같은지 너희에게 보여 주겠다. 그는 땅을 깊이 파서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들이닥쳐도, 그 집은 잘 지어졌기 때문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루카 6,47-48).

 

사랑하는 벗들이여, “땅을 깊이 파는” 사람처럼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의 집을 반석 위에 지으십시오. 날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십시오. 참다운 벗이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여러분 삶의 여정을 그분과 함께 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면 여러분은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어떠한 어려움과 문제에도 맞서며 시련과 좌절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더 쉬운 제안들을 계속 받고 있지만, 이는 그럴싸해 보여도 궁극적으로 여러분에게 안정과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오로지 하느님 말씀만이 진정한 길을 보여 줄 수 있고, 오로지 우리가 받아들인 신앙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빛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받은 이 영적 은총을 감사히 받아들이십시오. 하느님의 부르심에 책임감 있게 응답하고 신앙 안에서 성숙하고자 노력하십시오. 삶을 형성하는 데에 다른 이들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을 믿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들의 믿음, 교회의 믿음 안에서 힘을 얻고, 여러분이 이 믿음을 받아들여 여러분 자신의 믿음으로 삼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십시오.

 

 

3.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콜로 2,7 참조). 이 말씀이 실린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 신자들의 특별한 요구에 응답하고자 쓴 것입니다. 이 공동체는 신자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그 당시 어떤 문화적 경향의 영향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우리의 문화적 상황은 옛 콜로새 신자들의 상황과 다를 바 없습니다. 실제로, 하느님 없는 ‘낙원’을 창조할 것을 제안하고 시도하며 인간의 삶과 사회생활 밖으로 하느님을 밀어내려는 강한 세속주의 사조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험이 말해 주듯, 하느님 없는 세상은 이기주의로 가득차고 가정이 붕괴되고 개인이나 민족들이 서로 증오하고 사랑과 기쁨과 희망이 없는 ‘지옥’이 되고 맙니다. 반대로, 개인과 민족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받아들이고 참으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곳에서는 사랑의 문화가 실제로 이룩되고 있습니다. 이 사랑의 문화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존엄을 존중받고 친교가 자라며 이 문화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누립니다. 그러나 세속주의에 사로잡히거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종교적 흐름에 현혹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또 이러한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지만 자기 신앙이 식어가도록 그저 내버려 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그들의 윤리적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에 어긋나는 사상에 물든 콜로새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힘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 신비야말로 우리 삶의 토대이고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어리석다’(1코린 1,23)고 여기는 모든 철학은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위대한 질문들 앞에서 그 한계를 드러냅니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저 역시 여러분이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22,32 참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바치셨음을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으로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우리 죄를 떠안으시고 우리가 용서 받도록 해 주셨으며,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시키시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의 길을 환히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삶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이를, 심지어 원수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고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과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들과 이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들이여, 십자가는 삶의 부정처럼 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곤 합니다. 그러나 실은 정반대입니다. 이는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긍정’으로, 당신 사랑의 최고 표현이고 영원한 생명의 원천입니다.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꿰찔리신 예수님의 심장에서 하느님의 생명이 솟아나왔고, 눈을 들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을 바라보는 이는 누구나 이 생명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이 하느님 사랑의 표징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새 생명의 원천으로 받아들이라고 권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는 어떠한 구원도 없습니다! 오로지 그분만이 세상을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를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4.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복음서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인 토마스 사도의 신앙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토마스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의 치유와 기적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파스카 저녁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고 당신 모습을 보이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뵙고 그분과 이야기하고 그분의 현존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예수님께 다가가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는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과학을 빙자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위대하시고 유일무이하신 예수님을 손상시키는 많은 이미지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수년간의 연구와 성찰 끝에 예수님과 만난 제 경험의 일부를 책으로 묶어 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다른 이들 또한 주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만질 수 있게 도우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러 오시어 당신 자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나서 일주일 뒤 당신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시어 토마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우리 역시 감각을 통하여 예수님과 만날 수 있고, 말하자면 그분 수난의 표징, 그분 사랑의 표징에 우리의 손을 대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성사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오시고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성체 안에서 예수님을 ‘뵙고’ ‘만나는’ 법을 배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현존하시고 우리 가까이 계시며 우리 여정을 위한 양식이 되어 주십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언제나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곧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우리 형제자매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섬기십시오.

 

신앙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대화를 나누고 키워 가십시오. 복음서들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읽어 그분을 더 잘 알아 가십시오. 기도 안에서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분께서는 결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신앙이란 무엇보다도 인간이 인격적으로 하느님께 귀의하는 것이며, 또한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 전체에 대하여 자유로이 동의하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0항). 그리하여 여러분은 성숙되고 확고한 믿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의 토대는 단순히 신앙 감각이나 어릴 때 공부한 교리교육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아닙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며 예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표현한 토마스 사도처럼, 여러분은 하느님을 알고 참으로 그분과 일치하여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교회의 믿음에서 힘을 얻어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목격 증인들인 사도들의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가 따라야 할 길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과 나눈 대화를 통하여 형성되는 우리 개인의 그리스도 신앙이 교회의 신앙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떨어진 개인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이 위대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는 것은 바로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주일 미사에서 고백하는 신경(Creed)은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을 믿는 위험에서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각 신앙인은 마치 신앙인들이 이루는 커다란 사슬의 고리 하나하나와 같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으며, 또한 나의 신앙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지탱하는 데 이바지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6항). 교회를 주신 주님께 늘 감사합시다. 교회는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는 믿음 안에서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기 때문입니다(요한 20,31 참조).

 

교회사를 보면 성인들과 순교자들은 자기 목숨을 바칠 정도로 하느님께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언제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십자가에서 얻고는 하였습니다. 신앙 안에서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온갖 역경을 이겨낼 힘을 얻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말하였듯이, 실제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까?”(1요한 5,5) 신앙이 낳은 승리는 사랑의 승리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으로 표현되는 신앙의 힘을 보여 주는 산 증인이 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평화의 수호자이고 정의의 촉진자이며 하느님 계획에 부합하는 세상, 더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일꾼입니다. 그들은 역량과 전문적 소양을 지니고 사회 생활의 여러 분야에서 일하면서 모든 이의 행복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해 왔습니다. 신앙에서 솟아나는 사랑은 매우 구체적으로, 곧 그들의 행동과 말로 증언을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만의 보화가 아니십니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화이신 그분을 우리는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이 세계화 시대에 전 세계를 향해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증언하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희망을 얻고자 갈망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당신 벗 라자로의 무덤 앞에 서서 죽은 그를 되살리기시에 앞서 그의 누이 마르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참조)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리하여 날마다 여러분의 신앙을 실천하고 증언할 수 있다면, 여러분 자신이 그러하였듯이 다른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얻게 되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6. 마드리드 세계 청년 대회를 향하여

 

사랑하는 벗들이여, 저는 다시 한 번 여러분을 마드리드 세계 청년 대회로 초대합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큰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교회를 통하여 믿음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기를 바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겠다는 결심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의 인격적 결함과 또 더 쉬운 길을 가리키는 여러 목소리가 걸림돌이 됩니다. 하지만 좌절하는 대신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도움을, 교회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올해 여러분의 주교와 사제, 그리고 여러분 교구와 본당 공동체, 협회, 단체의 청년 사목 책임자와 함께 마드리드에서 가질 만남을 꼼꼼히 준비하십시오. 우리 만남의 깊이는 무엇보다도 영적 준비와 기도, 함께 하느님 말씀 듣기, 상호 협력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교회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회에는 여러분의 살아 있는 믿음과 창조적 사랑과 힘찬 희망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현존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젊게 하며 교회에 새로운 힘을 줍니다. 이러한 연유로 세계 청년 대회는 여러분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위한 은총입니다. 에스파냐 교회는 여러분을 환영하고 여러분과 함께 이 기쁜 신앙 체험을 나눌 준비에 한창입니다. 저는 교구, 본당, 순례지, 수도회, 교회 운동 단체, 그리고 열심히 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틀림없이 그들에게 강복하실 것입니다. 동정 마리아께서 이 준비 여정에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모님께서는 천사가 알려 준 하느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믿음으로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안에서 이루고 계시는 일에 동의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도록 이끈 위대한 사랑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다가오는 세계 청년 대회를 맞이하여 여러분이 신앙과 사랑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저도 어버이의 마음으로 기도 안에서 여러분을 기억할 것을 약속드리고 여러분께 진심어린 저의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10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원문 :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Benedict XVI for the Twenty-sixth World Youth Day 2011, "Planted and built up in Jesus Christ, firm in the faith" (cf. Col 2,7), 20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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