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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뜨리치안 회에 대해서(레지오교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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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한인성당 [kccu] 쪽지 캡슐

2010-08-10 ㅣ No.907

제 38 장  빠뜨리치안 회

 

빠뜨리치안 회(Patricians)는 1955년에 설립되었다. 이 회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지식을 늘려 주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밝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그들이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의 교육 방법은 최초에 시험적으로 마련한 것이었는데, 오늘날까지 계속 바뀌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초기에는 교리 강습이나 일반 강의 또는 질의 응답과 같은 기존의 방법들이 제시되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한 방법들은 그 나름대로 필요한 기능을 지니고는 있지만, 교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 이를테면 교리 지식을 전혀 갖추지 못한 성인(成人)들의 문제나, 혀가 굳어진 평신도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빠뜨리치안 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으므로, 이 회는 변질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이 회의 교육 방법은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조금만 흔들려도 다른 방송이 나오는 것과 같이, 약간만 손을 잘못 대면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어 버릴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방법이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전문 강사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방식이다. 이와는 달리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 마리애가 쓰고 있는 공동 접근 방법을 이용하는데, 이는 회합에 참석한 모든 회원이 신앙 문제를 놓고 적극적으로 토론함으로써 종교에 대한 지식을 쌓아 가는 공동 작업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의 참된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이 회가 레지오의 여러 특징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레지오의 조직 체계를 적용시켜 신앙 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의 회합은 성모님이 주관하신다. 예수님을 모셔다가 이 세상에 주신 분은 성모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모든 뒷일을 맡아 하신다. 이러한 성모님의 탁월한 지위는 레지오의 소 제대가 잘 드러내 보여 준다. 따라서 빠뜨리치안 회합도 레지오의 제대를 그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빠뜨리치안 회원들은 성모님 주위에 모여 앉아 교회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다시 말하면, 약속대로 그들 한가운데 함께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 회합은 그 자체로서 차원 높은 기도의 형태를 취하게 되며, 다양한 순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평상시에 두 시간 동안을 계속해서 기도 바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점이 바로 빠뜨리치안 회가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영성을 높여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원들로부터 구두 보고를 받는 일이다. 빠뜨리치안 회합 역시 참석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구두 발언을 이끌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가 된다. 따라서 회합실을 준비하거나 회합을 진행하는 일 등의 모든 것은 이 목표를 이루기 알맞게 이끌어져야 한다. 회합은 화기애애하고 이해심이 넘치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 아마도 몇몇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발언에 나서겠지만, 결과적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분위기라야 한다. 그런데이런 좋은 분위기는 그것을 해치는 방해 요인들이 제거됐을 때 가능하다. 만일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일반 대중들의 모임에서나 볼 수 있는 공격이나 비난 또는 상대방에 대한 비웃음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회원들은 모두 떠나고 말 것이다. '가장 미약한 사람들'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형제애가 느껴질 때, 빠뜨리치안 회는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발언은, 마치 쇠사슬의 고리가 다른 고리를 끌어당기듯이, 다른 사람들도 발언하도록 이끄는 도화선의 역할을 한다. 이렇게 토론을 벌이다 보면 회원들은 미처 몰랐던 지식을 얻게 되고, 산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알고 있던 가톨릭 교리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과 흥미가 더해 갈수록 회원들은 그리스도 신비체와의 일치 속으로 더욱 깊이 젖어 들게 되고, 그 신비체의 생명을 받게 된다.

그 밖의 여러 면을 살펴보더라도, 빠뜨리치안 회가 레지오의 이론과 기술을 응용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쁘레시디움에 대하여 확신을 갖는 것처럼 빠뜨리치안 회를 운영하는 일에도 뚜렷한 소신을 지녀야 한다. 이러한 소신은 이 회를 이끌어 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하여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줄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이나 교회 공동체 안의 신자 상호간에 신앙 문제에 대해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하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침묵주의(Mutism)'라는 말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쉬넨스 추기경(Cardinal Suenens)은 "우리는 흔히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신앙에 대해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하였다. 대개 가톨릭 신자들은 신앙적인 면에서 남을 도우려고 나서지 않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진지하게 물어 오는 사람들에게조차 올바른 대답을 해 주지 못하는 형편이니, 결국 가톨릭 신자들은 믿지 않는 이들을 복음화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잘못된 현상이 널리 퍼지게 되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그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와 같은 이기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신앙 문제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경우에 신자들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대개 대화를 이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 이러한 신자들은 자신의 교리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날 만한 기회는 무조건 피하려 든다.

(나) 교리 지식은 상당한 정도 갖추고는 있지만, 마치 교리 문답의 해답처럼 따로따로 떨어져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이다. 이런 지

식들은, 마치 자동차의 부품이나 인체의 각 부분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각자의 신앙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 더구나 몇몇 중요한 교리 항목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으므로, 이런 때에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따라서 비록 토막 교리 지식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해도, 부품들이 올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기계처럼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 더 많은 경우에, 너무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믿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신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반쪽 믿음'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

한 상태에서, 믿음은 종교와 거리가 먼 환경과 부딪치게 되면 쉽게 무너지고 만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는 레지오가 관장하는 모임이다. 각 지회(支會)는 하나의 쁘레시디움에 소속되어야 하며, 반드시 그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이 진행을 맡아야 한다. 하나의 쁘레시디움이 몇 개의 지회를 관장할 수 있다. 각 지회는 쁘레시디움의 영적 지도자가 승인하는 별도의 영적 지도자를 모셔야 한다. 수도회의 수사나 수녀가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교회 당국이 허용하는 경우에는 평신도도 가능하다.

'빠뜨리치안'이라는 이름은, 대부분의 레지오 고유 명칭이 그러하듯이, 고대 로마에서 쓰던 용어를 따 온 것이다. '빠뜨리치안'은 귀족

(Patricians)과 평민(Plebs)과 노예(Slaves)로 구분되는 고대 로마의 사회 계층 가운데 가장 높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빠뜨리치안 회는 모든 사회 계층을 하나의 영신적 귀족으로 결속시키고자 열망한다. 그뿐 아니라, 본래 빠뜨리치안 귀족들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조국의 번영을 위해 책임감이 넘쳐야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빠뜨리치안 회원들도 그들의 영신적 조국인 교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 회의 규칙에는 모든 회원이 반드시 신앙심이 깊거나 본분을 잘 지키는 신자라야 한다고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가톨릭 신심을 지닌 신자라면 누구든지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반 가톨릭적인 성향이 뿌리 깊은 신자들은 입회 대상이 될 수 없다.

주교가 특별히 허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은 이 회합에 참석할 수 없다.

빠뜨리치안 회합은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 회합 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회합은 매달 꾸준히 열어야 한다. 도저히 회합을 열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회합을 걸러서는 안 된다. 그러나 회원이 매 회합마다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다만 모든 회원들에게 다음 회합을 알리는 연락망을 마련해 놓을 필요는 있다.

한 지회의 회원수는 50명이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50명 정도만으로도 모든 이가 발언에 참여해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좌석의 배치

 

극장처럼 무대와 객석이 별도로 배치되는 식을 피해야 하며, 그렇다고 무질서한 분위기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가급적이면 좌석을 반원형으로 배치한 후 그 앞쪽 공간을 탁자로 채워 둥글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탁자 위에는 레지오의 제대를 차리는데, 반드시 벡실리움이 있어야 한다.회합실은 조명이나 온도 또는 안락한 의자 등 모든 필요한 준비물을 잘 갖춤으로써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꾸며야 한다.

운영 경비는 비밀 헌금으로 충당하고, 회합 때마다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회합의 순서

 

1. 회합은 빠뜨리치안 기도문을 모두 서서 함께 바침으로써 시작된다.

 

2. 평신도의 주제 발표나 담화는 15분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물론 제한 시간을 다 채우지 않아도 된다. 어느 모임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제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회합에 차질이 생기게 마련이다. 주제 발표는 굳이 그 방면에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이들의 발표는 때때로 너무 학문적이거나 길어지게 되므로, 회합 첫머리부터 순조로워야 할 진행을 오히려 그르쳐 놓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주제 발표 자체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토론 주제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사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공부는 미리 어떤 회원을 지명하여 연구해 오도록 부탁하면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의 다른 토론의 자료를 참석한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필수적이다.

 

3. 주제 발표가 끝나면 회원들이 토론을 시작한다. 회합의 다른 부분은 모두 이 토론을 위한 것이므로, 활발히 진행되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 참석하고 있는 모든 회원이 토론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토론이 될 수 없다. 빠뜨리치안 회의 과제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발언하기를 꺼리는 신자들을 발언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이는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나 교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발언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온갖 배려를 다해야 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될 만한 일은 모두 없애야 한다. 잘못되거나 어리석은 발언이 수없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런 발언에 대해서 꾸짖는 듯한 태도를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와 같은 자세는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감싸고 달래서 발언하도록 만드는 빠뜨리치안 회의 목적을 꺾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발표하도록 이끄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가령 엉뚱한 발언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몽땅 털어놓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그런 잘못된 지식들은 공개된 후 토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바로잡혀야 한다. 그렇지 않

으면 그는 다른 장소에서 이 잘못된 지식들을 마치 노래하듯이 되풀이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발언 그 자체이며, 발언을 잘한다던가 또는 내용이 정확하다던가 하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완벽한 발언이 빛날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발언이 오히려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다. 평범한 발언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발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을 열도록 훈련시켜 주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볼 때, 발언은 회합의 중심을 이루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 전체를 향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전체를 향해서 발언하게 되면, 듣는 이들은 발언한 사람의 말이 끝났을 때 그가 마치 자신과 단둘이 대화한 것처럼 느끼게 되므로, 상대방의 발언 내용에 대해서 무엇인가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발언을 준비한다. 빠뜨리치안 회가 의도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만일 회원들의 마음이 분산되어 있는 분위기라면, 이러한 심리적 균형은 깨지고 만다. 예컨대, 사회자가 발언에 대해서 논평을 곁들인다든지, 또는 칭찬을 한다든지 해서 회원들의 주의를 자신에게 쏠리게 한다면 회원들의 마음은 흐트러지고 말 것이다. 또는, 이미 발언한 사람이 자신이 제기한 문제점을 되풀이해서 다루려고 또다시 발언하거나, 영적 지도자가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를 해결하려고 매번 발언에 끼여 들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토론을 하는 본래의 뜻을 그르치게 되며, 몇몇 회원이 질문하고 전문가 몇몇이 답변하는, 이른바 '전문가 토론회(panel discussion)'로 모습이 바뀌고 만다. 그러므로 소심한 사람들이 발언하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사회자는 주제와 관련이 없는 발언이 나오더라도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발언을 제대로 하라고 주의를 주는 행위는 자칫 회합 전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다만 빗나간 발언으로 다른 회원들까지 궤도를 벗어나는 발언을 하게 만들 때는 사회자가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발언할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앉은 채로 이야기하면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토론이 단순히 대화하는 말투가 되며 무질서하게 묻고 대답하는 식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발언의 횟수가 한 번으로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미 발언을 한 회원보다는 아직 발언을 하지 않은 회원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

 

4. 회합을 시작한 후 한 시간이 지나면 토론을 잠시 중단하고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 휴식 시간에 앞서서 회계 보고를 하고, 동시에 비밀 헌금이 있음을 예고한다. 즉, 회합이 다시 시작되어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끝난 뒤, 곧 이어 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린다는 것을 미리 알리는 것이다.

 

5. 휴식 시간을 위해서 간단한 다과를 준비한다. 이는 회합의 중요한 요소이며, 다음과 같은 중요한 기능을 발휘하므로 빠뜨려서는 안 된다.

 

(가) 회원들이 서로 사귀고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다) 다과를 즐기며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

(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도직 활동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휴식 시간에 다과를 생략하고 그 시간을 다른 목적에 쓰도록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다과를 베풀지 않고 휴식 시간을 적절히 사용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휴식 시간은 15분 동안 계속된다.

 

6. 회합이 다시 시작되면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15분 동안 있게 된다. 이 시간까지 진행된 모든 토론의 내용은 사실상 훈화를 통해서 정리되므로, 모든 회원은 이 훈화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훈화는 회합의 필수 요소로서 토론한 내용을 마무리하고 올바른 형태로 가다듬어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회원들이 하느님께 더욱 많은 사랑과 봉사를 바치도록 북돋아 준다. 훈화 시간을 회합의 끝 부분으로 옮겨, 토론을 거친 더 많은 내용들을 종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훈화는 앞으로 더 계속될 토론을 위해서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따라서 회합이 끝날 즈음 훈화를 하게 되면 이러한 의도를 살릴 수 없게 된다. 또한 다소 수준이 낮은 회원들은 회합 시간 중간에 훈화를 들음으로써 큰 도움을 받는다. 훈화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회원의 경우라도 훈화에 이어 계속되는 토론을 통해서 '해석의 원리'(뒤에 설명함)에 따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7. 영적 지도자의 훈화가 끝나면, 다시 일반 토론을 계속하다가 폐회 시간 5분 전에 토론을 끝낸다.

 

8. 이어서 회합의 끝부분을 다음과 같이 진행한다.

 

(가) 사회자는 전체를 대표해서 주제 발표자에게 간단한 감사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박수를 치는 등의 전체적인 감사의 표시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 다음 회합의 토론 주제를 결정한다. 토론의 주제는 종교에 관한 문제라야 하며, 순전히 학술적이거나 문예나 문학 또는 경제 등에 관한 주제는 피해야 한다.

(다) 그 밖의 공지 사항을 발표한다.

 

9. 모두 일어서서 마침 기도로 사도신경을 함께 바친다.

 

10. 회합은 사제의 강복으로 끝이 난다. 강복은 무릎을 꿇지 않고 서 있는 채로 받는 것이 좋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의자 사이에 무릎을 꿇을 때 일어나는 혼란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전체 소요 시간은 모두 두 시간이 되도록 한다. 회합 순서 전반에 걸쳐 정확히 시간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한 순서라도 정한 시간을 넘기게 되면 다른 순서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회합의 균형이 깨진다. 회합의 각 부분과 할당 시간을 간략히 보여 주는 회합 순서는 405쪽에 실려 있다. 전체 토론 내용을 요약할 필요는 없으며, 어떤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더라도 낙담할 필요가 없다. 다음 모임이 계속 열리므로 언젠가는 완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뜨리치안 회원은 활동의 의무가 없다. 회합에서 활동을 배당해서는 안 되며, 가외로 활동하도록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친밀한 개인 접촉을 통하여 그들을 여러 방면으로 이끌어 주어야 하며, 특히 레지오의 행동단원, 협조단원 또는 아듀또리움 단원이 되도록 권유함이 마땅한 일이다. 빠뜨리치안 회를 슬기롭게 이용하면 지역 사회의 모든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의 몇 가지 원칙

 

1. 집단 심리를 활용하자.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집단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 집단이 훌륭한 정신과 규칙을 지니고 있다면 그에 맞는 큰 영향력을 구성원들에게 행사하게 된다.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 뒤쳐지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힘껏 노력하는데, 이러한 노력은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때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각 개인은 완전히 수동적으로 집단을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을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참여하며, 일단 집단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얻으면 곧 힘을 발휘한다. 이러한 원리를 빠뜨리치안 회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드러나 보이지는 않으나 억제할 수 없는 집단의 힘이 가장 뒤쳐져 있는 회원을 포함한 모든 회원을 움직여서, 그들이 이 회합을 통해 듣고 배운 바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밖의 다른 면에서도 함께 어울리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정도의 성과를 내고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집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는 높은 수준의 정신을 지닌 간부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새롭고 훌륭한 의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보장해 주므로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집단 심리의 작용으로 회원들은 새로운 의견과 사상을 제대로 흡수하게 된다. 따라서 빠뜨리치안 회는 항상 질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2. 괴로운 침묵의 순간을 참고 기다리자. 토론중 발언이 오랫동안 끊기면 괜히 불안해진다. 그때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발언을 재촉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재촉은 옳은 방법이 될 수 없다. 재촉에 의해 생기는 긴장감은 회원들로 하여금 오히려 발언하려는 마음이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족들끼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라. 따라서 이따금 대화가 멈출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발언이 끊기면, 집안에서 가족들이 하듯이 모두 잠자코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잠잠한 분위기는 곧 깨진다. 그리고 다물었던 입이 일단 열리면, 대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변한다.

 

3.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문가에게 곧바로 해답을 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문제를 풀고자 노력하는 방법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방법은 직접적이고 간편한 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육이 이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의 단점은 학생들이 전문가의 해답을 절반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력과 책임감이 향상되지 않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문제를 푸는 두 번째 방법은 힘이 더 든다. 이 방법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맡김으로써 그들 스스로 해답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서툰 해답을 마련하면, 전문가가 나서서 지도해 준다. 그 다음 다시 학생들 스스로의 힘으로 좀더 나은 방안을 찾도록 한다. 이와 같이 남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되는 성과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시된 문제의 내용과 해답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서서히 노력하여 문제를 풀었으므로, 배운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겨 자신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빠뜨리치안 회가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어떤 정확하지 않은 발언이 나오더라도 지도자가 이를 즉시 바로 잡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 그대로 토론에 내맡겨 두어야 함을 알려 준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문제는 토론 과정에서 해결된다. 만일 그것이 끝까지 해결되지 않고 크게 잘못된 상태로 남게 되는 경우에는 물론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발언한 당사자가 창피를 느끼지 않는 방법이라야 한다. 이런 경우,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을 가르치실 때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4.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하자. 일반 강의에서는 청중의 반응이 질문을 통해 나타나므로 질문을 환영한다. 질문을 하면 즉시 강사가 답변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질문을 반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론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여긴다. 이를 마치 전기(電氣)의 경우에서 누전을 일으키는 현상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여 토론에 기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처음부터 질문만 하려 하고,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다 보면 토론은 타격을 입게 되며, 결국 토론의 장(場)이 강의실로 바뀌고 만다. 이런 강의실에는 회원들이 끝까지 앉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꼭 지켜야 할 황금률이 있다. 그것은 질문하는 사람이 반드시 자신의 의견(해답)을 덧붙여서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질문은 대개 토론의 흐름을 바꾸지 않고도 적절히 합류시킬 수 있음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어 있다.

 

5. 빠뜨리치안 회의 형성 원리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아 올려놓듯이 지식을 쌓아 올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빠뜨리치안 회원은 단순한 덧셈이 아니라 곱셈을 한다.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이른바 살아 있는 벽돌을 쌓아 올린다. 새로운 의견 하나하나가 이미 발표된 다른 모든 의견들과 상호 작용을 일으키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또다른 의견들을 생산해 낸다. 즉,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의견이 수정되고 새로운 사상이 싹트는 것이다. 특히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이 복잡한 상호 작용은 각 사람의 마음에 풍부한 열매를 맺는 누룩의 역할을 하게 되며, 집단 전체에도 공동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마치 밀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회원들의 각기 다른 성격이나 생각들을 한데 모아서 같은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추진력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침체된 믿음과 소극적인 신앙에 강한 추진력과 더불어 방향까지 제시해 주면, 삶은 틀림없이 변화를 가져온다.

 

6. 주관자의 역할 쁘레시디움의 운명이 간부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빠뜨리치안 회도 주관자들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주관자는 자신의 역할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관자가 너무 드러나게 행동하면 할수록 일반 회원들의 역할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학교 교실과 같은 분위기로 빠져 들고 만다. 영적 지도자, 사회자 및 주제 발표자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간과 그 밖의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한다. 참석한 회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 사람들은 전문가나 권위자 앞에서는 불편을 느낀다. 그러므로 이 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은, 회원들에게 지식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칠 때 쓰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 29)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주관자들이 두드러진 행동을 하지 않을수록 토론은 더욱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주관자들이 꼭 정해진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관자들도 일반 회원과 마찬가지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되도록이면 자제하라는 뜻이다.

 

7. 해석의 원리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해석의 원리'이다. 토론중에 대다수의 회원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발언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에 이 해석의 원리는 회원 모두가 발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는 아무리 수준 높은 사상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는 토론을 거치면서 보통 회원들도 모두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학식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서로 다 이해할 수 있는 공동의 발판을 마련하는 능력은 값비싼 보석처럼 귀중한 것이다. 이제 이처럼 귀중한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가령, 주제 발표 (또는 어떤 다른 발언) 내용이 수준이 너무 높아서, 참석한 회원 가운데 10 %만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자. 만일 일반 강의의 내용이 그처럼 어려웠다면 그 강의는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빠뜨리치안 회합에서는 내용을 이해한 10 %의 회원 가운데 몇 명이 그 발언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그들은 대다수의 회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토론을 벌이기 때문에, 어려웠던 내용이 일반적인 수준으로 낮아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회원들도 발언에 참여하게 되고, 마침내는 밀을 갈아서 고운 밀가루를 만들어 내는 결과가 나온다. 당초 발표된 내용에 들어 있던 불명확한 점이 풀이가 되고 설명이 가해져서 모든 회원들은 자신의 지적 수준에 알맞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빠뜨리치안 회에서는 누가 무슨 발언을 하든, 어느것 하나 잃어버리는 것이 없다.이러한 빠뜨리치안 회의 특성은 선교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에서 매우 독특한 가치를 발휘한다. 이 곳에서 선교사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언어가 다르고 사고 방식이 전혀 다른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 교리를 충분히 이해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빠뜨리치안 회의 '해석의 원리'는 마치 깊은 구렁에 다리를 놓는 것과 같은 큰 힘을 드러낼 것이다.

 

8. 하느님께 일거리를 드리는 일 이 일에는 단순히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 것 이상의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은총의 원리이다. 즉, 은총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을 초월하여 우리가 가진 재료와 능력으로 지을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 계시 종교에서는 신앙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완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모든 일에 초자연적인 믿음과 은총이 늘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토론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하물며 토론이 다소 충분치 못했다고 느껴지면, 흔히 그 토론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미천한 우리의 노력마저도 당신 손에 받아 주시고 써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의외로 해결된다. 과연 그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문제의 정도에 비추어 우리의 노력이 훨씬 컸던 것인지, 혹은 하느님께서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워 주셨기 때문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은 우리가 바랐던 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우리의 철학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물론 이 철학은 단지 빠뜨리치안 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철학을 통해서 빠뜨리치안 회합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훌륭한 발언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발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미약한 노력이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국 가톨릭 신자들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느냐 기울이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낫지' 하며 우물거리기만 하는 한, 그러한 노력은 기대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 공동체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 이러하므로, 빠뜨리치안 회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치유하는 도움의 손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

 

(다 함께 서서 바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랑하올 주님,

빠뜨리치안 회를 축복해 주소서.

저희는 빠뜨리치안 회원으로서

주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오며,

또한 주님의 어머니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다가가려 하나이다.

저희가 가톨릭 신앙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그리하여 진리가 저희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께서 항상 저희와 가까이 계심을 깨닫게 해주소서.

이로써 저희가 주님 안에서 생활하고

주님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저 한 사람의 방심이 형제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멸망케 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저희에게 내려 주신 짐이 비록 무겁지만

영광임을 알게 해 주시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인내하게 하소서.

저희가 어떤 인간의 무리인지,

또한 저희 본성이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아옵기에,

저희는 주님께 저희의 두 어깨를 바치기에도 합당치 않음을

고백하나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희의 연약함보다는

저희의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어,

불완전한 저희를

주님의 도구로 불러 써 주심을

또한 잘 알고 있나이다.

이에 저희는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기도에

저희들의 목소리를 합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주님께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에게 성령의 은총을 내려 주시고

저희와 함께 머무르시며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저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베풀어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풍부하게 받은 것을

아낌없이 나누도록 해주소서.

이 길이 아니고서는

주님의 강생과

처절한 십자가의 죽음이 얻어 주신 은총의 열매를

온 세상이 받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옵니다.

주님, 그토록 크신 당신의 노고와 수난이

저희 안에서 헛되지 않게 해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회합 순서

 

0:00 -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다 함께 서서 바침)

            평신도 주제 발표(15분 이내)

0:15 - 토론

0:59 - 회계 보고

            영적 지도자 담화 후 비밀 헌금이 있음을 예고

1:00 - 다과, 휴식 시간

1:15 - 영적 지도자 담화(15분 이내)

1:30 - 토론 계속

            헌금(비밀 헌금 주머니를 돌림)

1:55 - 공지 사항(주제 발표자에 대한 감사 표시 및 다음 회합 일자와 주제 등을 알림)

2:00 - 사도신경(다 함께 서서 바침)

            사제의 강복(선 채로 받음)

대학 및 청소년 지회

 

정상적인 방식으로 회합을 갖기가 전혀 불가능한 경우, 예컨대

 

(가) 대학 및 기타 교육 기관에 지회가 설립되어 있거나

(나) 회원 모두가 18세 미만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지회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단축된 진행 방식(소요 시간 1시간 30분)을 허용한다.

0:00 - 빠뜨리치안 회 기도문 및 평신도 주제발표(5분 이내)

0:05 - 토론(40분)

0:45 - 휴식 시간(10분) (다과를 생략할 수 있음)

0:55 - 영적 지도자 담화(10분)

            비밀 헌금은 생략할 수 있음

1:05 - 토론 속개(20분)

1:25 - 공지 사항(일반 지회의 경우와 같음)

1:30 - 사도신경 및 강복(일반 지회의 경우와 같음)

 

"빠뜨리치안 회는 가정적이다. 우리 모두에게 관련되는 문제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정 생활에서 맛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우리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이므로 하느님의 가족에 속한다. 옛날 갈릴래아에서 사도들이 주님과 함께 하루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나서, 그날 주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놓고 이야기 꽃을 피우던 바로 그 정신을 본받아, 우리의 믿음을 생각하고 믿음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놓고 토론하는 것 ― 이것이 빠뜨리치안 회의 정신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없이 훌륭하고 사랑에 찬 선생님이시고 스승이시며 주님이심을 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신비 속에 우리의 마음을 적시어, 마치 우리가 우리의 자녀나 가정이나 직장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듯이, 우리의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아주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신다. 우리는 이 통찰력을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서로 배운다. 빠뜨리치안 회합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이웃의 입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가슴은 활활 타오른다. 빠뜨리치안 회합 안에서 그리고 빠뜨리치안 회합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시고, 하느님의 진리를 가슴속에 더욱 깊이 새기게 해주신다. 이로써 우리의 일터인 교회가 우리 안에서 더욱 확실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마음은 마음으로부터 빛을 얻고 가슴은 믿음으로 타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안에서 자라시는 것이다."(브로피 신부 / Fr. P. J. B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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