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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네 잘못이 아니야!(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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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8-23 ㅣ No.862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네 잘못이 아니야!

 

 

성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가장 아프고 무겁게 하는 문제는 성폭력일 것이다. 학교, 학원, 동네, 직장, 심지어 생명의 요람인 가정도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뜻하지 않게 당한 성폭력으로 말 못할 상처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성폭력 피해자를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1980년대 후반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 변월수 사건 등 일련의 사건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은폐되어 온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따라서 성폭력은 더 이상 개인 문제가 아니고, 사회적인 범죄이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침해한 인권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성폭력 사례

 

1991년 1월 30일, 한 여성의 강간 복수 살인 사건은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부남 사건! 그녀는 아홉 살 때 엄마 심부름으로 물을 길러 나갔다가 “잠깐 방에 들어와서 심부름을 해달라.”는 34세의 동네 아저씨에게 강간을 당했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고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그녀는 어른이 되었고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결혼을 했다. 한 달 뒤 성교불능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당했다. 의사는 극도의 ‘경계성 인격 장애’라고 진단했다.

 

그 뒤 재혼을 하였으나 결국 정신불안증에 걸려 친정으로 돌아왔다. 성폭력을 당한 지 21년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성폭력 가해자를 찔러 죽였다. 1심 3차 공판 최후 변론에서 그녀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인 것이다.”라고 했다.

 

20여 년 동안 정신적인 감옥에 있다 비로소 해방된 그녀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치료감호 선고가 내려졌다. 그녀는 항소와 상고를 거쳐 1993년 5월 1일 출소하였다.

 

김부남 사건은 성폭력의 후유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인 것이다.”라는 그녀의 절규는 성폭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김부남 사건은 우리나라 성폭력 추방 운동에 박차를 가한 중요한 사건이며, 다음 해에 일어난 김보은 · 김진관 사건과 함께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

 

성폭력이란 성을 매개로 개인의 성적인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하는 행위다. 성폭력은 강간, 성추행, 성희롱, 성기 노출 등 신체적 폭력 외에도 심리적인 불쾌감과 수치감, 두려움과 공포를 수반하는 언어적, 정서적, 정신적 폭력을 포괄한다.

 

성폭력은 성관계가 아니다. 강간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 결합을 포함하므로 성관계로 잘못 인식될 수 있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자행된 성행위는 성관계가 아니라 엄연한 폭력 행위다. 더욱이 인간의 존엄성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폭력 행위이며 동시에 인권을 유린한 범법 행위다. 따라서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성폭력은 낯선 사람에 의해 우연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아는 사람에 의해 계획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다. 때로는 가족, 친인척 등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기 때문에 피해 사실이 은폐되거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근친 성폭력 피해자는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후유증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

 

13년 동안 딸을 성폭행해 온 의붓아버지를 딸의 남자친구가 살해한 김보은 · 김진관 사건(1992년)이 그 예다.

 

성폭력 피해 후유증은 임신과 낙태, 불임, 우울증, 가출, 자살 시도, 살인 등 극한 상황까지 몰아갈 수 있다.

 

성폭력 가해자 중에는 정신질환자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해내는 정상적인 사람이다. 성폭력은 자신의 소외감, 열등의식, 상처와 분노 등을 부정적으로 발산하거나 남성다움을 잘못된 방식으로 확인하고 과시하려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성적인 공격에 나약하고 무력한 여성과 어린이가 주로 대상이 되며, 소수의 남성 피해자 역시 약자로서 심각한 정서적 혼란과 고통을 경험한다.

 

성폭력은 어느 특수한 계층이 아니라 때와 장소, 신분, 직업,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생후 4개월의 아기부터 70세 이상의 연령대에 분포되어 있음이 사례를 통하여 드러난다. 정신지체 장애우도 성폭력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점점 더 성이 상품화되고 성문화가 왜곡되면서 성 차별적인 사회의 풍토가 성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적극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성폭력 피해자는 우선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수치스럽고 당혹스럽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곧바로 신뢰하는 사람에게 알리고 전문적인 상담과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가족은 물론 친구, 친척, 주변 사람 역시 피해자가 폭력을 당한 것이지 피해자의 탓이 아님을 인식하고, 전문기관과 연계하여 피해자의 보호와 치료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피해자가 성폭력의 충격에서 벗어나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세심한 배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또한 왜곡된 성문화, 성의식을 바로잡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판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성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고 생명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음을 인식하며 책임감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올바른 성교육은 여성과 남성이 성적 존재로서 상호보완적인 관계와 파트너십을 지향하며 양성평등적인 사회를 건설하고 건강한 성문화와 생명문화를 창조하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엄마, 아빠, 나도 살고 싶어요!”

 

이제 성폭력의 결과로 너무나도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성폭력에 따른 임신이다.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 병사들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잉태된 아기를 낳아 보살피려고 수도회를 떠나는 젊은 보스니아인 루시 수녀는 자신의 배 속에 있는 아기가 폭력의 산물임에도 평화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점을 총장수녀에게 이야기하며 수도회를 떠나는 이유를 밝힌다.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느 밤. 누군가가 나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범했습니다. … 제가 세르비아 군인들에게 짓밟히던 그날 밤, 시간이 가는 동안 저는 계속해서 “너는 죽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갔습니다. 총장수녀님,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 저는 이미 스스로 결정했습니다. 만일 제가 엄마라면 아이는 당연히 제 것이지 그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설령 제가 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 아이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식물도 뿌리가 잘려서는 안 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지는 곡식의 낟알은 씨 뿌리는 사람(그가 또는 그녀가 설사 나쁜 사람이더라도)이 던진 곳에서 자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다른 모양으로 수도성소를 지켜갈 것입니다. … 저는 아이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어느 곳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최대의 기쁨을 앗아가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제게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 저는 오래 전에 사용하던 앞치마를 두르고 목각신발을 신고 소나무 껍질에서 송진을 얻으러 어머니와 함께 나설 것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사랑만을 가르칠 것입니다. 폭력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아이는 저와 더불어 용서만이 유일하게 인류에게 주는 위대한 것이란 점을 증언할 것입니다.”

 

- 1994년 가톨릭신문에 실린 편지 글

 

루시 수녀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필자는 가슴이 뭉클하고 정신이 깨어나는 체험을 한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무너지는 치욕을 느끼는 고통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그 믿음을 일관성 있게 행동으로 옮기는 엄청난 용기, 그러한 믿음과 행동하는 용기 안에 내재하는 뜨거운 사랑의 힘이 마음 깊숙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생명과 사랑이 한마음을 이루고 생명과 사랑이 책임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루시 수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자신의 관점을 떠나 태어날 권리, 살 권리와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 아기의 관점에서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면서도 자신 안에 자기를 넘어서는 거룩한 하느님의 모상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잉태된 생명은 태어나고, 사랑받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거나,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는 물론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는 생명을 살리고 치유하는 길이 될 것이다.

 

* 김태선 데레사 - 착한목자수녀회 수녀로 성폭력 상담소와 미혼모 보호시설인 춘천 ‘마리아의 집’에서 소임을 수행했다.

 

[경향잡지, 2011년 8월호, 김태선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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