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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복자 124위 열전47: 이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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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02 ㅣ No.1429

[복자 124위 열전] (47) 이일언


40년 몰아친 시련, 기쁨으로 승화



124위 약전을 한쪽 한쪽 넘기다 보면, 그냥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복자가 있다. 이일언(욥, 1767∼1839)이다.

40년에 가까운 유배와 옥살이, 연금, 모욕, 학대, 형벌로 자신의 수호성인인 욥만큼 가혹한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견뎌내고 믿음을 굳게 지켜 하느님의 사람다운 ‘인내의 모범’을 보여준 복자여서다.

 

- 복자 이일언 욥.

 

 

그렇다고 다른 복자들은 이 같은 인내의 모범과 덕행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그가 남다른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하면서’ 순교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하느님이 전부”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정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충청도 홍주현(충남 홍성시) 출신인 이일언은 어려서 아버지(이점손)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경상도 안의현(현 경남 함양군 안의면)으로 유배됐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입교 시기가 1801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안의로 유배된 그는 관장의 눈 밖에 나서 옥에 갇힌다. 유배 와서 다시 옥에 갇히는 사례는 거의 없었기에 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셈이다. 물도 얻어 마시지 못하는 고통과 배고픔 속에 10년간 감옥에 갇혀 온갖 모욕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는 관장의 말을 묵묵히 참고 따르는 인종(忍從)의 삶을 살며 신자로서 모범을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언제부턴가 관장의 허락을 받아 자신의 집에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됐다. 이어 1815년 을해박해가 발생하던 해부터는 안의로 자신을 찾아온 부인과 함께 살았다. 수백 리 길 낯선 유배지에서 10여 년 만에 만난 부부의 심경이 어떠했을지는 미뤄 짐작하기가 어렵다. 부부의 연금 생활은 정해박해가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826년까지 계속됐다. 그해 5월에는 드디어 연금에서 풀려나 전라도 임실현 대판 마을(현 전북 임실군 성수면 오류1길 일대)로 이주해 교리를 실천하며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열중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신앙생활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정해박해가 시작됐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부인은 그에게 피신을 권했다. 그는 그 권유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이전에 순교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처럼 궁벽한 곳에 살고 있어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없으니 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하고 탄식할 뿐이었다.

박해는 그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 말을 한 지 사흘쯤 지났을 무렵에 전주의 포졸들이 들이닥쳐 그를 체포했다. 그는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이뤄졌다고 여기며 기쁜 기색으로 포졸들을 따라 나섰다.

전주 관장은 복자를 문초하는 과정에서 신앙 때문에 잡혀갔던 그의 이력을 알아내고는 더 혹독하게 매질했다. 키도 작고 몸집도 보잘것없었지만, 그는 신앙적 인내로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 보는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며칠 동안 문초와 형벌이 계속됐지만, 그의 신앙은 조금도 변함없이 항구했고, 관장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뒤 옥에 가뒀다. 이후로 그는 김대권(베드로, ?∼1839) 복자 등과 함께 12년 동안 전주옥에 갇혀 있으면서 무려 세 차례나 자신의 결안(結案), 곧 사형선고문에 서명해야 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그해 5월 29일 전주 장터(숲정이)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당했다. 그의 나이 72세였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동안 자식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왜들 우느냐? 여러 해 동안 옥중에서 신음해 오다가 오늘 마침내 천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아비가 예수 그리스도님을 위해 죽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을 오히려 기뻐해라. 그러니 너희도 훌륭한 교우가 되어라”(다블뤼 주교의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 제5권 참조).

이렇게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지나 십자가에 피를 묻히고 천상에 오른 순교자 이일언은 ‘고통을 벗 삼지만 기쁨에 찬 삶’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고통의 광야에서 일생을 살았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승화시켰던 복자이기에 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외려 기쁨으로 가는 디딤돌이었다.

 

[평화신문, 2015년 2월 1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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