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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 요셉, 성녀 데레사의 영적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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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3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 요셉, 성녀 데레사의 영적 아버지

 

 

성녀 데레사가 좋아한 성경의 인물 중에 성 요셉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 요셉에 대한 성녀의 신심은 남달랐습니다. 성 요셉 신심은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성녀의 영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면 성녀는 어떤 면에서 성 요셉을 따르고, 그분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요?

 

 

성 요셉과 성녀 데레사의 인연

 

성녀 데레사에게 성 요셉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해 준 중요한 계기가 세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성녀가 강생 수녀원에 입회하여 양성되고 서원을 발한 다음, 심한 병에 걸려 거의 죽어 가던 상황에서였습니다. 1542년 즈음으로 당시 스물일곱 살이었습니다. 성녀는 몇 년간이나 전신 마비로 누워 있으면서 성 요셉에게 병이 나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성녀는 성 요셉의 도움으로 중병을 떨쳐 낼 수 있었고, 그 후 성 요셉에게 큰 은덕을 받았음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서른아홉 살이 되던 1554년으로, 그해 사순절에 채찍질을 당하며 피땀 흘리는 예수님 상을 보고 크게 회심하던 때였습니다. 그 체험을 한 후 성녀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읽으면서 자신의 회심을 더욱 확고히 다집니다. 그 큰 회심의 은총이 성모님과 성 요셉 덕분이라며 그분들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세 번째 계기는 종교개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가톨릭교회에 기도와 희생으로 영적 힘을 불어넣고자, 첫 번째 개혁 수녀원인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던 시기였습니다. 1562년, 성녀의 나이 마흔일곱 살 때였습니다. 성녀는 그 수녀원 정문에는 성 요셉이, 뒷문에는 성모님이 계시면서 공동체를 보호하고 인도하실 것이라 확신하고 그분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전구했습니다.

 

관구장 신부가 개혁 수녀원의 창립을 허락하지 않자 성녀는 아빌라 교구장 주교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창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녀는 순명과 관련하여 수도자로서 내적 갈등을 겪는데, 그때 성모님과 성 요셉이 현시 중에 나타나 성녀에게 하얀 망토와 십자가를 걸어 주며 위로하고 계속 그대로 추진할 것을 조언합니다. 이 현시 체험에 힘입어 성녀는 마침내 첫 번째 개혁 수녀원을 창립합니다. 성녀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의 시작이 성모님과 성 요셉의 도움 덕분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 후 수녀원 창립을 위해 떠날 때면 작은 성 요셉 상을 늘 품에 안고 떠났습니다.

 

 

성 요셉과 관련한 일화

 

1572년, 성녀는 당시 장상들의 명을 받고 출신지인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수녀들은 성녀로 인해 수도원이 엄격해질 것을 염려하여 성녀가 수녀원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결국 성녀는 뒷문으로 들어가 경당에 있는 원장 의자에 성모상을 놓으며, “제가 아니라 이분이 여러분의 원장님이십니다”고 하여 수녀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성모상과 함께 가져온 성 요셉 성화는 부원장 자리에 놓았다고 합니다. 수녀원을 이끌어 가시는 분은 성모님과 성 요셉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형제적 배려가 담긴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녀가 쓴 편지를 보면 종종 결어 부분에 ‘성 요셉의 가난한 자매/자매들 드림’이란 전형적 표현이 나옵니다. 말년에 쓴 편지 가운데 임종하기 몇 년 전(1577-79년)에 쓴 편지를 보면, 성녀를 잘 이해한 지인들만 아는 은어(隱語)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중 성녀가 자신의 신비 체험에 관해 이야기하며 예수님에 대해 말한 부분을 보면, 예수님 대신 요셉 성인이 나옵니다. 다시 말해 성녀는 ‘성 요셉’이라는 은어로 예수님을 가리키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립한 맨발 가르멜 수녀원을 위해 만든 새로운 회헌에 성 요셉에 대한 사랑을 다양한 형태로 심어 놓았습니다. 맨발 가르멜 회원들이 성무일도와 전례 중에 성 요셉에 대한 신심을 표현하도록 제도적으로 배려해 놓았습니다.

 

 

기도하는 이들의 모델이자 스승인 성 요셉

 

성녀 데레사가 성 요셉을 단순히 좋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성녀는 성 요셉에게서 다양한 영적 모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선 성녀는 성 요셉을 성교회의 아버지로 여겼습니다. 성 요셉은 아버지 중에 최고의 아버지로서 특히 구세주 예수님을 지켜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가능하도록 준비해 주었고, 성모님을 지켜 줌으로써 성모님의 섭리적 정배(淨配)가 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 요셉은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로우신 성인의 전구로 하느님이 제게 베푸신 은총이나 저를 영육 간의 위험에서 구해 주신 일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입니다. … 주님은 하늘 나라에서도 성 요셉의 모든 청원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자 하십니다”(《자서전》 6,6). 성녀는 이런 성 요셉의 모습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영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녀는 요셉 성인을 예수님과 성모님을 위해 봉사한 이의 전형으로 보았습니다. 당연히 성 요셉은 두 분과 가장 가깝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이를 바탕으로 성 요셉을 영적 여정에 들어선 모든 이의 모델이자 수호자로 소개했습니다. “성 요셉께 대한 참된 신심을 가지고 특별한 공경을 하면서도 덕의 길에 진보하지 못한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자서전》 6,8).

 

나아가 성녀는 성 요셉을 기도의 모델이자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우리도 그분을 그렇게 받아들여 기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대했습니다. “특히 기도를 하는 영혼은 성 요셉께 대한 사랑을 간직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 때문에 온갖 고통을 참아 견디신 천사의 모후를 생각할 때마다 그 두 분을 그처럼 훌륭히 도우신 성 요셉께 감사의 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기도를 가르쳐 줄 만한 스승을 갖지 못한 분은 이 영화로운 성인을 인도자로 삼으신다면 길을 헤맬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자서전》 6,8).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곁에서 구원 역사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이자 두 분의 수호였던 요셉 성인. 성녀 데레사의 권고를 따라 성 요셉을 여러분의 영적 아버지이자 영성 생활의 수호자요 기도 생활의 모델이자 안내자로 받아들일 의향은 없습니까?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2월호(통권 465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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