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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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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84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십자가의 성 요한과 성경

 

 

가르멜 수도회에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는 영성의 대가가 있습니다. 이분은 하느님에 대해 깊은 신비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정통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에 따라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같은 작품에 담아 소개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영적 유산을 남겼습니다. 성인은 이 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성화(聖化) 여정을 단계별로 제시하면서 영성의 근본 법칙, 영성 생활의 원리 등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유년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적 가르침은 하느님을 향해 걸은 그분의 생애와 직접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인은 1542년 6월 24일 스페인의 중부 지방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친가 쪽은 성녀 데레사와 마찬가지로 개종한 유다인 혈통으로 톨레도에서 성공한 상인이었습니다. 성인의 아버지 곤살로(Gonzalo de Yepes)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숙부의 일을 도와 살면서 폰티베로스에서 이슬람 출신의 카타리나(Catalina Alvarez)와 인연을 맺습니다. 당시 사회의 비주류에 속한 두 남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인했고, 그래서 매우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부부는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는데, 막내가 십자가의 요한이었습니다. 성인의 가족은 가장을 병으로 일찍 떠나보내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메디나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성인은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예수회 신부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기초 교육을 받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의 원장 신부 도움으로 병자를 간호하며 가정의 생계를 돕습니다.

 

 

성녀 데레사와의 만남

 

이렇게 청소년기를 보낸 성인은 1562년 스무 살이 되자 메디나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수련을 받고 1564년 서원한 다음 살라망카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 후 1567년 서품을 받은 뒤 고향 메디나로 돌아와 첫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당시 그곳에는 두 번째 개혁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하러 성녀 데레사가 와 있었습니다. 친구 신부의 주선으로 성녀와 만날 당시 십자가의 성 요한은 더욱 엄격한 수도 생활을 꿈꾸며 카르투시안 수도원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성녀 데레사는 남자 맨발 가르멜 수도원 설립을 제안하며 초대 회원으로 그를 영입합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성인은 이듬해 11월 28일 두루엘로에서 다른 두 회원과 함께 첫 번째 맨발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합니다.

 

 

톨레도 감옥에서 체험한 어두운 밤

 

그 후 성소자가 늘어나자 성인은 중부 지방의 여러 도시에 수도원을 창립하고 개혁적인 맨발 가르멜의 정신을 전파합니다. 성인은 1572년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 원장으로 부임한 성녀 데레사의 초대를 받아 5년간 그곳의 영적 지도신부로 봉사합니다. 그러나 개혁 운동의 선봉에 선 성인에게 위협을 느낀 원 가르멜 신부들은 1577년 12월 성인을 납치해서 톨레도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 독방에 감금하고 갖은 고초를 주며 그의 개혁 운동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듬해 여름까지 체험한 감옥 생활은 아주 처참한 삶이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끝에서 성인은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심경을 여러 편의 시에 담습니다. 이는 훗날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이 탄생하는 바탕이 됐습니다. 1578년 8월 15일 밤, 성인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담요를 찢어 엮어 만든 밧줄을 타고 몰래 감옥 창문으로 탈출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성인은 그 뒤 약 10년간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며 여러 맨발 가르멜 수도원을 창립했으며,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영적 지도를 비롯해 그간의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영성적 시(詩)를 해설하여 영성사에 길이 빛날 주옥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맨발 가르멜 내의 개혁 노선 차이로 초대 총장인 도리아 신부에게 박해를 받아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심한 병에 걸린 채 우베다 수도원에서 핍박을 받으며 죽어 갔습니다. 성인은 1591년 12월 14일 임종했으며, 1726년 시성되고 1926년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과 성경

 

성인의 영성에서 성경은 상당히 중요한 바탕으로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성인은 당대 스페인의 최고 대학인 살라망카 대학과 알칼라 대학에서 공부하며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신비 체험을 전할 때 늘 성경의 권위를 빌어 해석하고 제시했습니다. 성인에게 성경은 자신의 체험의 진위를 식별하는 기준점이었습니다.

 

성인은 자신의 신비 체험에 적합한 성경 구절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구절을 소개할 때도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 독자들이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나아가 ‘유비적 해석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그것은 이미 초대 교회의 오리게네스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학파 교부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성경 해석 방법으로, 성경 구절이 지닌 문자의 의미뿐 아니라 윤리적 의미와 ‘신비적 의미’(영성적 의미)를 끄집어 내어 전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영성적 전망에는 다양한 성경의 가르침이 배어 있습니다. 성인이 제시하는 가르침의 틀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전하는 성경의 전망을 그 바탕에 둡니다. 성인은 이러한 전망에서 하느님과의 사랑의 합일을 향한 인간의 여정을 설명하는 가운데, 창조될 당시 ‘인간의 본래 상태’, ‘하느님의 모상’, ‘원죄’, ‘그리스도의 강생’, ‘그리스도를 따름’, ‘옛 인간에서 새 인간으로 변모’라는 성경의 주요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영성적 해석을 바탕으로 소개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월호(통권 466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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