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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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서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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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05 ㅣ No.1190

[성인의 삶에 깃든 말씀] 성경에서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다

 

 

이번 호에서는 성녀 소화 데레사가 자신의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해 가는 과정에 성경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9,4과 이사 66,12-13에서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다

 

성녀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 그것도 아주 큰 성인이 되고 싶은 원의를 품었습니다. 그런데 소화 데레사에게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랑의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해 드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사랑의 길이란 자기 비허(自己脾虛)의 길이자 완전한 내적 가난의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정에서 성녀는 혼신의 노력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했지만, 사랑은 그 속성상 무한할 수밖에 없고 성녀는 그런 무한한 사랑의 요청 앞에서 자신이 작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체험하여 이를 겸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받아들이는 작은 자가 됐을 때, 잠언 9,4의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는 말씀과 이사 66,12-13의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작은 자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발견했습니다. 1895년 6월 9일 삼위일체 대축일에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받기를 원하시는지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잘 깨닫는 은혜”(《자서전》)를 받게 됩니다.

 

이렇듯 자비로운 하느님 사랑에 성녀는 사랑으로 응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그분께 맞는 사랑이 없음을 깨닫고, 하느님께 당신의 신적 사랑을 허락해 주십사고 청하기에 이릅니다. 성녀가 청한 이 사랑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할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 안에 일으켜 주시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한 길이 바로 신뢰와 의탁을 상징하는 ‘작은 길’입니다. 이것이 훗날 ‘영적 어린이의 길’로 불리게 됩니다. 신뢰와 의탁은 어린이에게서 특별히 드러나는 덕목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4,10에서 드러난 하느님 사랑에 대한 묵상

 

‘영적 어린이’는 참된 ‘사랑의 길을 걷는 영혼’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1요한 4,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가 말하는 영적 어린이는 먼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입니다. 하느님께서 영원에서부터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불러 주셨기에 우리가 이 땅에 있게 되었습니다. 또 그분의 사랑은 변함없이 충실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착하기 때문에 또는 사랑받을 만한 어떤 능력이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그렇게 어떤 조건을 따져서 당신 마음에 들 때에만 사랑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부족하고 나약할 때, 나아가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더 큰 빛을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훌륭하기 때문에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존재 그대로를 사랑해 주십니다. 소화 데레사는 바로 여기에서 놀랍고 신비로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보았습니다. 그 자비로운 하느님 사랑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 바로 ‘영적 어린이’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때, 비로소 기쁨에 가득 차 하느님께 사랑의 응답을 드리기 시작합니다. 육화한 하느님의 사랑인 예수님을 맞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구체적 삶에서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주님을 향한 사랑의 길을 걷는 영적 어린이가 됩니다.

 

영적 어린이는 주도권을 쥐고 먼저 나서서 하느님께 무엇을 해 드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 편에서 사랑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혼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먼저 있었기에 자기가 존재할 수 있고, 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1코린 12장을 묵상하며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다

 

이런 성녀의 원의에 따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신적 사랑을 그의 마음 안에 부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성녀의 《자서전》 두 번째 원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녀가 이 은총을 받았을 때에도 성경은 하느님의 은총의 빛을 전해 주는 소중한 도구였습니다. 당시 성녀는 1코린 12장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빛을 받으며 교회 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합니다.

 

성녀는 거룩한 욕심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고 싶어 했고, 미사성제를 봉헌하는 사제가 되고 싶어 했으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또 교회의 거룩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그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성녀는 자신의 모든 원의를 실현할 방법을 찾기 위해 기도하며 은총을 청했습니다. 결국 성녀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움직이는 힘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모든 지체에 힘과 빛을 주는 사랑으로서 ‘교회의 심장’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거룩한 원의를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 윤주현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에서 신학적 인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스페인의 아빌라 신비신학 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대구 가르멜 수도원 원장,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윤주현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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