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9년 제95차 세계 이민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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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4-15 ㅣ No.325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95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문


이민이었던 ‘이민족들의 사도’ 바오로 성인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 세계 이민의 날 담화의 주제는 “이민이었던 ‘이민족들의 사도’ 바오로 성인”입니다. 이 주제는 제가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맞이하여 선포한 희년과 적절하게 일치하는 데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사실 ‘소명에 따른 이민’이었던 바오로 사도가 실천한, 다양한 문화와 복음 사이의 중개와 선포는 오늘날 이민 운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기준점이 됩니다.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 있던 유다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울은 로마 문화의 주요 배경이 된 히브리어와 문화,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와 언어를 배웠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를 만난 후(갈라 1,13-16 참조), 바오로 사도는 비록 자신의 ‘전통’을 부인하진 않았고 유다교와 율법에 대해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로마 9,1-5; 10,1; 2코린 11,22;  갈라 1,13-14; 필리 3,3-6 참조), 용기와 열정, 그리고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 22,21)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새로운 사명에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필리 3,7-11 참조). 그에게 예수님은 그의 존재 이유가 되셨고 사도로서 복음에 헌신하도록 이끌어준 동기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에서 그리스도의 사도로 변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인 복음을 민족과 문화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전파하는 데에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도의 길을 걸어가면서 지속적인 반대에 부딪쳤지만, 유다인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선포하며 이방인 지역에 사는 동족들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두었습니다(사도 18,4-6 참조). 유다인들이 그를 거부하면, 그는 이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순회’ 사절로서 진정한 ‘이민들의 선교사’가 되어 이방인들에게 다가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드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도록(2코린 5,17 참조) 초대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 선포를 위해 근동의 바다를 건너 유럽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로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유다교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안티오키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곳입니다(사도 11,20.26 참조).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설교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는 데 온전히 집중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의 민족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에도 교회와 세례 받은 모든 이의 사명입니다. 신중한 사목적 배려로 유학생들과 이민, 난민, 유민, 피난민, 그리고 현대적인 형태의 노예와 인신매매의 희생자들까지 포함한 다양한 이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각기 다른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이민이나 여행자의 처지에 따른 특수한 어려움을 고려하여 이방인의 사도 시대와 같은 접근 방식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하여야 합니다. 저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바오로 사도와 같은 사도적 열정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1코린 9,19)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모든 이에게 선포하였고(로마 8,15-16; 갈라 4,6 참조),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고……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1코린 9,22). 그의 이러한 모범에 따라 우리는 우리 시대의 형제자매들과 연대하고, 모든 방법을 다하여 세상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인종과 문화, 종교 사이에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사도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오로 사도를 두드러지게 한 선교 열의와 투사다운 열정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를) ……이미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필리 3,12) 때문에 그리스도와 긴밀히 결합된 그가 “그분 고난에”(필리 3,10; 참조: 로마 8,17; 2코린 4,8-12; 콜로 1,24) 동참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고 느낀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은 바로 이러한 사도적 열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갈라 1,15-16; 참조: 로마 15,15-16).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어려움도 그가 당시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사람들로 넘치던 로마나 코린토와 같은 국제 도시에서 용감하게 복음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이나 바오로가 여러 사람들에게 보낸 서간들을 읽으면서, 배타적이기보다는 모든 이에게 열린, 문화나 인종의 차별이 없는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모범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례 받은 모든 사람은 사실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살아있는 지체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일하며 나누는 일상의 삶에서 드러나는 형제적 연대가 가장 돋보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가 선포하고 실천하는 말씀, 곧 그리스도를 닮고(에페 5,1-2 참조) 사도를 닮으라고(1코린 11,1 참조) 모든 사람에게 촉구하는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1테살 1,6 참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이러한 차원의 형제적 상호 수용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늘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공동체가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히 결합될수록 비판과 비난과 추문을 더욱 삼가게 되고, 이웃을 더욱 잘 보살피며 서로를 더욱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로마 14,1-3; 15,7 참조). 그리스도와 일치된 신자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이며 한 아버지의 자녀로 느낍니다(로마 8,14-16; 갈라 3,26; 4,6 참조). 이러한 소중한 형제애는 신자들이 사랑의 으뜸인 “손님 접대”에 힘쓰도록 합니다(로마 12,13; 1티모 3,2; 5,10; 티토 1,8; 필레 17 참조).

 

이렇게 하여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맞아들이리라. 나는 또한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나에게 아들딸이 되리라”(2코린 6,17-18).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어찌 어려움이나 시련을 겪는 모든 사람들, 특히 난민과 유민들을 돌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불확실하고 불안한 상태에 있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당하기 일쑤인 사실상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필요를 어찌 충족시켜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오로 사도의 유명한 말처럼,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1코린 1,27)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09년 1월 18일에 거행될 이민의 날이 모든 사람에게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이웃이라는 확신으로 어떤 구별이나 차별도 없이 온전히 형제애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15항 참조). 위대하고 겸손한 사도이자 이민이며 모든 민족들과 문화의 복음화를 위해 일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의 정점이며 종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계명은, 잘 알다시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일치하여 형제애와 사랑의 탁월한 성사인 성찬의 잔치를 함께 나눌 때에 그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형제 사랑의 새 계명을 성찬례의 은사에 결합시키신 것처럼, 스스로 인류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벗들’은 서로 섬기고 서로 돌보며,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게 될 것입니다”(갈라 6,2)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에만 신자들 사이에 모든 사람을 위한 사랑이 자라날 것입니다(1테살 3,12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열정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증언하시기 바랍니다. 복음 메시지 전체는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는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와 특히 사랑과 수용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총을 얻어 주시기를 빕니다. 이민을 돕는 일에 헌신하는 모든 사람과 나아가 방대한 이민의 세계에 하느님의 보호를 간청하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도 안에서 늘 기억하겠다고 약속드리며, 사랑을 담아 여러분 모두에게 사도로서 축복을 보내 드립니다.

 

카스텔 간돌포에서

2008년 8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 한국 천주교회에서 거행하는 2009년 세계 이민의 날은 4월 26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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