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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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27 ㅣ No.346

[문헌 풀어 읽기]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훈령 “이민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 이웃이 된 이민

 

‘이민’은 ‘이주민’의 줄임말이다. 우리의 조상들도 이민들이었으며 사람들은 지금도 이동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인천국제공항에 가면 수백 명의 여객을 태운 비행기들이 삶의 애환을 싣고서 수시로 뜨고 내린다. 이제 우리는 여행이나 방문 또는 업무나 공부를 위해 외국을 손쉽게 자주 드나들고, 거리에서나 일터에서 외국인을 쉽게 만나며, 마을이나 텔레비전에서 외국인 며느리를 자주 본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삶이 되어버렸고 거기에 따른 수많은 문제와 과제들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 현실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까?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의 훈령 “이민들을 항한 그리스도의 사랑”(2006년)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신앙인은 언제나 잠시 머무는 나그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집이 이사한 적이 있다. 5k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어린 나이에는 제법 멀어보였고 정든 마을을 떠나 새로운 마을에 가서 산다는 것이 두렵고 싫었다.

 

또한 사제는 언제나 잠시 머무는 사람(paroikos)이며, 어디에 있든지 나그네이다(16항). 정든 신자들과 익숙해진 삶을 두고 새로운 임지로 떠난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 옛날엔 젊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나이가 들어도 도무지 숙달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가꾸고 한평생 산다는 마음으로 살지만 애로사항이 있게 마련이다.

 

또 나는 영국 런던에서 몇 년 동안 거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내게는 이민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주사목을 담당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시골에 살던 한 사제가 국제도시 런던에 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긴장과 과제를 발생시킨다. 언어문제를 시작으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과 갈등, 기대와 호기심 등 안주할 수만은 없는 생활이다. 처음에는 전화를 마음대로 걸 수도 없다. 은행계좌를 만드는 데도 보증인이 필요하다. 병원에 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미사 드릴 장소가 필요하고 한국말로 미사를 드려야 하기에 지역적 경계가 없는 ‘속인주의’의 본당을 운영해야 한다. 한국교회와 영국교회 간의 협의가 있어야 하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해외의 교포들과 주재원들은 고국에 대한 긍지와 향수 그리고 애착이 대단하다. 외국에 가면 모두가 다 애국자가 된다고들 하지 않는가? 모두가 잘 살고자 애쓰고 자녀들의 교육에 헌신적이다. 때로는 무시당하고 차별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지만, 현지 교회의 성직자나 신자들의 환대와 격려와 협력이 힘을 준다. 가까이 다가와 건네는 인사 한마디가 친밀감을 더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만든다. 서로의 친교를 바탕으로 한 하느님의 자녀임을 느끼며 상호 협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발지 국가에서 도착지 국가로

 

요즘 우리는 경향 각지를 막론하고 외국인들을 수시로 만난다. 세계 각국에서 일자리나 공부, 결혼과 사랑을 따라 새로운 희망과 꿈을 가지고 낯선 땅 한국을 찾는다. 이렇게 많은 이민들이 온다는 것은 역사상 초유의 일로서 단일민족을 자랑하며 살아가던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사태’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이민의 출발지 국가였다. 700여만 명이 해외에 살고 80여만 명이 도착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면 이러한 오늘의 이민은 이제 광범위하고도 폭발적이며, “현대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 현실의 중요한 구조적 요인의 하나”(8항)가 되었다.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려면 그만큼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세계 공동체를 하나의 인류가족으로 보고 다원문화에 대한 관용과 정체성에 대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출발지 국가와 도착지 국가 사이의 긴밀한 협력과 국제 간에 존재하는 원칙과 권리들을 언급한 ‘모든 이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을 준수해야 한다(6항).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교회는 오늘의 이민 현상을 ‘시대의 징표’로 보고 인류를 새롭게 하고 복음화할 수 있는 도전으로 본다(14항). 교회는 언제나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이민들에게서 보아왔다(1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집단 가운데 흩어져 살아야 할 소명을 지니고 있는 나그네인 교회가 이민들에게 ‘이웃’이 되어주고 환대하며 이민 문제 해결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21항). “이민 사목은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보호하고, 발전시키고, 참되게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28항).

 

이민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느님이 보내시는 축복과 구원의 통로요 선물이며 기회다. 우리는 이민들을 통해서 다른 종교와 문화를 알고 대화하며 자기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교회를 활기차게 하며 공동체를 풍부하게 하기 때문이다(42항). “그리스도인들은 이민들의 참된 인간적 가치는 물론이고,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생기는 각종 문제점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환대의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39항).

 

 

내가 만난 이민들

 

한국의 노동자 이민 문제는 차츰 성숙되어 가고 있지만, 결혼이주여성 문제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마을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자녀들과 문화적 적응, 결혼과 정의, 인권문제 등 많은 과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안동교구는 사명선언문의 구체적 실천사항을 지난해는 “나는 외국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줍니다.”로 정하고, ‘국제혼인 가정과의 아름다운 친교’, ‘국제혼인 가정 자녀들에 대한 사랑 나눔’, ‘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하기’ 등을 실천하였다. 올해는 계속적으로 “다문화가정과 결손가정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로 정해서 실천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의 도움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더욱 장기적인 참된 환대를 넘어 궁극적인 통합의 단계를 지향하고 있다(42항).

 

대도시에는 몇몇 속인적 본당이 설립되어 방인 사제가 사목하기에 모국어 미사나 혼인문제, 예비신자 교리나 세례, 상담 등 효과적인 사목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골에 흩어져 사는 결혼이주자의 경우에는 방인 배우자가 신자이면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배우자가 신자가 아닌 경우 교회법적인 혼인이 완결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무분별한 상업적 결혼주선 기관들의 난립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출발지 교회와 도착지 교회가 협력하여 혼인 주선 기관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또한 시골에 흩어져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을 순회하며 돌볼 수 있는 출발지 교회의 방인 선교사들이 교구마다 배치되면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정일 가브리엘 - 안동교구 계림동성당 주임신부. 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경향잡지, 2008년 4월호, 정일 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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