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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사제와 여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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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4-06 ㅣ No.513

[사제의 해]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 사제와 여가생활

 

 

사제생활 40년을 뒤돌아보면서 ‘사제와 여가생활’이란 주제를 생각해 보니, 여가생활이라기보다 여가시간에 무슨 취미생활을 했느냐고 물어도 될 것 같습니다. 여가의 사전적 의미는 ‘겨를, 틈, 짬, 레저, 자유시간’ 등으로, 폭넓은 의미의 여가활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돌뱅이에서 신부가 되어

 

대신학교에 들어가 깨달은 것은 제가 정서가 결핍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서가 결핍되면 인격의 밸런스가 무너져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정서가 결핍된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에 진학할 꿈을 접고 일곱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돌뱅이 생활전선에 투신하여 6.25사변으로 각박해진 세상에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어린 나이에 성격이 거칠어졌던 것입니다. 중학교 때는 문예부장도 했는데, 현실은 세속적 근성과 거친 성격으로 정서를 메마르게 하였습니다(경향잡지 1998년 12월호 참조).

 

그래서 대신학교 때 음악을 하면 정서함양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악기를 시작했으나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일제 기타라서 그랬는지 선배가 욕심을 내기에 주어버렸습니다. 사제가 되어서는, 일본과 교역이 활발하지 않던 때라 일본에 가는 외국신부에게 아코디언을 사다 달라고 해서 막상 배우려고 하니 주위에 교습소가 전혀 없었습니다. 퇴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신학생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일 년 전에는 아직도 악기에 미련이 남았던지 색소폰을 빌려서 배우다가 퇴임 때 돌려달라고 해서 음악과는 인연을 접었습니다.

 

사제생활 초기에는 여가로 테니스와 낚시를 즐겼고, 몸이 좋지 않아 휴양 겸 흑산도로 자원하였을 때는 외로운 마음에 글을 쓰고 시도 썼습니다. 시의 씨앗을 심은 지 40년 만에 싹이 트고 줄기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드디어 퇴임 때에 “홀로 가는 나그네”라는 시집을 상제하게 되었습니다.

 

대신학교 때는 문예반 소년답게 신학교에 부탁하여 2학점을 배정받아 학교의 후원으로 서예를 배우고 사군자와 한국화를 배우며 정서함양을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후일 광주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한국화를 더 연마하고 안식년 연수 때 서울 홍익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도 교육을 받았습니다. 퇴임한 뒤에 그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손을 놓고 있습니다.

 

 

거짓 자아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저는 여가생활을 자기의 직무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그림을 그리고 나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잘 보이듯이 말입니다. 동양화에서 그림이 살아나려면 여백이 중요하듯 우리 삶이 생기가 있으려면 여가생활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피조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피조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피조물들의 실체와 실상과 진실을 꿰뚫어보게 된다. 피조물의 이러한 본질은 우리가 피조물들을 우리 자신의 밖에 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올바르게 바라볼 때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물들에 집착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사물들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사물들을 놓아줄 때 우리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보기 시작할 수 있다. 사물들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어려운 관상의 길을 나설 수 있게 되는데, 이 길의 끝에서 우리는 하느님 안의 사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토마스 머튼, “고독 속의 명상”).

 

인간만이 자신과 사물을 자신의 밖에 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사물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객관화해서 사물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실상과 본질과 만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모든 사물 안에 깃들어 에너지화되어 활성화된 놀라운 표징과 대면하고 하느님의 영광에 휩싸여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저는 사제의 여가생활은 사제의 신원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재물(소유)과 직업(직무, 역할)과 남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거기에 얽매여 살기에 거짓 자아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사제직무에서 벗어나(한 걸음 물러나) 여가를 즐길 때, 사제의 신원을 더 객관화해서 바라볼 줄 알 때 사제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제의 자아가 거짓 자아가 되기 쉬운 것은 지나치게 자신의 역할(직무)에 집착하여 자아를 상실할 위험이 있고, 사목을 하면서 자신에 대한 주교님과 신자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자신의 주체가 없고 남의 평가에 맞추어 살다보면 거짓 자아가 형성될 위험이 있습니다. 거짓 자아로 살아갈 때 사제는 성덕을 쌓지 못하고 의화(義化)와 성화(聖化)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자만하면서 일에 묻혀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일’에 묻혀버립니다. 저는 지나치게 아집이 강하여 사목생활에서 자신의 계획만을 고집하여 사목회의 소리를 묵살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야 내 계획이 무참히 무너질 때 바로 거기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교훈도 얻었으나 인생은 지각생이어서 늦게 깨닫고 나니 퇴임하라고 합니다.

 

 

‘재(財)테크’가 아니라 ‘시(時)테크’를 잘 해야

 

요사이 물신주의 세상에서는 ‘재(財)테크’에 아귀다툼을 벌입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사는 우리는 ‘시(時)테크’를 잘 해야 하겠습니다. 여가생활도 일종의 시테크가 아니겠습니까? 정신건강은 시간과 공간의 활용이 조화와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여가생활은 건전한 육체와 지성, 감성을 함양하는 데 일조해야 합니다. ‘게으름의 미학’이라는 책이 있고 ‘슬로우 마을’을 지정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빨리’라는 일중독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태국에 갔더니 한국사람 별명이 ‘빨리’라고 합니다. 식당에 앉기가 무섭게 주문한 음식을 ‘빨리빨리’ 달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저는 대신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50년 동안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국민체조’를 하루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잠자는 동안 뒤틀어진 몸의 균형을 바로잡는다는 마음으로 하는데 이제는 안 하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몸이 유연합니다.

 

여기서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간장이 안 좋아 몸이 너무 비대해지니까 의사가 저더러 골프를 권해서 지금껏 합니다. 초창기 때는 신부들에게는 회원 대우를 해서 그런 대로 값싸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생각으로는 의사의 처방을 고해신부가 바꿀 수 없다는 말을 들었기에 고해신부 명령인 것처럼 여기고 순진한 마음으로 운동을 했습니다. 골프가 사치스럽다고 하는데 지금은 올림픽 종목이 되어 한결 가벼운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골프를 해서 그런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알 수 없으나 나이가 72세인데 성인병 약을 먹는 것이 없습니다.

 

퇴임은 어떤 의미에서 남은 생애가 여가생활입니다. 저는 퇴임 때도 시간과 공간의 활용을 잘하려고 하는데, 먼저 하루에 한 시간은 반드시 걷기 운동을 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사는 아파트 8층까지 가능하면 하루 한두 번을 걸어서 올라갑니다. 퇴임하면 일 년간은 사람들이 좀 찾아오나 다음 해부터는 오지 않는다는 퇴임 선배 신부님 말씀을 기억해서 그림이나 그리면서 한 점씩 선물로 줄 생각인데 그러면 구경거리도 되고 사람이 좀 찾아올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벽을 여는 영성의 샘물

 

사람은 적당한 긴장이 있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생활이 느슨하여 망가지는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천만다행인 것이 ‘영성의 샘물’이라는 제목으로 날마다 인터넷 편지를 띄웁니다. 미국 ‘가톨릭신문 - 한글판’에도 연재를 합니다. 지금 5년째로 1,385회를 했습니다. 영성서적들을 읽고 가톨릭 영성의 진수를 뽑아 인터넷에 올리느라 하루가 지루하지 않고 적당한 긴장이 있어 생활에 탄력이 있고 활력이 생깁니다. (이 기회에 선전을 해도 되는지 모르나, 영성생활의 활력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주소창에 www.catholicspirit.org 또는 띄어쓰기 없이 영성의샘물이라 치시면 됩니다.)

 

끝으로 경험상 이야기하고픈 것이 있습니다. 여가 때 동료끼리 돈내기 화투놀이는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 잃고 몸 버리고 동료까지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선배와 후배끼리 함께 어울리는 것은 좋으나, 너도 선수 나도 선수라고 생각하여 선배에게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어 선배와 후배들의 질서가 없어져 버립니다. 제 경험으로 신부들의 돈내기 화투놀이는 신자들에게 스캔들이 되기도 합니다. 사제관에서 신자들과 늘 어울리다 보면 밤늦게까지 신자들을 붙잡아두는 경향이 있어 그들의 부인들이 성토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 김홍언 요한 보스코 - 신부. 광주대교구 원로 사목자. 1936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광주 대건신학대학(현 광주 가톨릭 대학교)을 졸업, 1969년 사제가 되어 여러 본당에서 사목하다 2009년 8월에 은퇴하였다.

 

[경향잡지, 2010년 3월호, 김홍언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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