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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와 음악공부를 할라 캅니까? - 사제와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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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5-02 ㅣ No.523

[사제의 해] “와 음악공부를 할라 캅니까?” - 사제와 자기계발

 

 

“그 많은 공부 중에 와 음악공부를 할라 캅니까?” 제가 대신학교 재학 중에 음대에 편입하여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 드린 뒤, 음대를 마치고 돌아오면 신학교에 다시 받아주시겠느냐는 질문에 서정길 대주교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신학교로 가서 학업을 계속하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늘 젊게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저녁기도를 드린 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성악반, 중학교 때는 악대부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오르간도 배우고 처음으로 지휘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때 예수회 듀발 신부님의 음악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저도 음악을 하는 사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군생활도 음악적 재능을 더 키울 수 있는 공군 군악대를 지원하였고, 제대 후 대신학교 때에는 성악과 악기 레슨도 정식으로 받았습니다. 당시 광주 대신학교에는 음악 전공 교수님이 계시지 않았기에 제가 신학과 1학년생들의 전례음악 수업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학장신부님께서는 저를 한 달에 한 번, 서울로 작곡공부를 할 수 있도록 보내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제가 되고 여러 어른 신부님들을 보면서 저는 나이가 들어서도, 찾아오는 신자가 없어도, 신자들의 칭찬이 없어도, 늘 젊게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신부가 되면서 은퇴 후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곡을 만들고 음악을 하는 것이야말로 창조적인 일이며 늙어서도 젊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살려 교회에 봉사하면서 평생을 기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문희 대주교님께서 이탈리아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나라고 하시기에 저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부 된 지 일 년 반 만에 서울로 유학길에 올랐고, 2년이 지난 뒤에는 이탈리아로 성음악을 공부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서 대신학교와 효성여자대학교 음대에서 가르치다가 또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전례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저는 행복한 사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저의 사제생활에 가장 활력을 주고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것은 바로 합창을 하고 음악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합창단과 한 주간에 한 번이라도 연습을 하게 되면 그동안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가 그야말로 한 방에 날아갑니다.

 

 

본당 신자들은 합창단원들이 아닙니다

 

올해로 사제생활 33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본당의 주임신부로서 지낸 기간은 이제 겨우 7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전례음악을 배우고 가르치던 일에만 전념했던 제가 본당을 맡게 되니 만나는 신자들은 전에 제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 음악과 관련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여러 성향의 신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사목자로서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음악가들은 왜 끊임없이 연습을 할까요? 완벽해지려고 합니다. 제가 합창단을 연습시키는 것도 최상의 음악을 재연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늘 완벽한 것을 생각하며 살아오던 저는 본당에서 사목을 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일을 시켜도 대충 하고 마는 사람들,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 내 입장에서 보면 얼렁뚱땅 적당히(?) 사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지내기가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또 합창단을 연습시키다 보면 지휘자는 주로 틀린 음정, 호흡, 음색 등 틀린것만 찾아내는 데 능숙해집니다. 본당에 살면서도 이런 버릇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잘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고, 반대로 그들의 그릇된 또는 잘못된 것만 눈에 띄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보다는 꾸중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더구나 힘든 것은 주임신부가 한 소리 하면 신자들이 따라주기는 고사하고 열 가지 뒷말이 들려오는 데에는 정나미가 뚝 떨어지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제가 살아온 생활방식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합창단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휘자는 연습하는 곡의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쉴 것인지 말 것인지를 정해주고, 어떤 부분에서는 소리를 크게 하고 작게 하라고 일일이, 세세한 것까지 미리 안내를 합니다. 그리고 지시에 따르지 않는 단원에게는 주의를 주고, 마음에 들 때까지 연습을 시킵니다. 음악 외적인 것은 질문이 가능해도 음악적인 것에 대해서는 단원들이 이의를 달지 못하고 그냥 따라오게 합니다.

 

이런 저의 마음자세와 태도에서 신자들은 무엇을 느꼈겠습니까? 자신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착한 목자의 모습보다는, 늘 자신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지시만 하는 못된 목자로 느꼈을 것입니다. 고민이 많았습니다. 신자들을 탓하기보다는 제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목자인 저는 합창단의 지휘자가 아니고 본당 신자들은 합창단원들이 아닙니다. 아무리 제가 좋은 지향과 열정을 가지고 신자들을 지도한다고 해도, 사목자와 신자가 서로 사랑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변화는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제들은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살지 않나 반성해 봅니다

 

부족한 저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더 읽고 묵상하는 동시에, 카네기 최고 경영자 과정과 ‘Seven Habits Program’ 등에 참석하여 인간관계와 리더십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이 분야에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하나씩 사목생활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계속해서 제가 사제로서 잘 봉사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재능들을 키워나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 욕구와 엄청난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진취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려고, 아니면 살아남으려고 변화를 추구하며 더 성공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들을 지도해야 할 우리 사제들은 어쩌면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살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우리의 전문분야에 대한 공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학문들과 각자의 관심분야에 대해서도 시간을 투자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관심 있는 분야에 몇 해만 꾸준히 투자하면 비록 학위는 없지만 전문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신부님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계십니다. 저술, 그림, 사진, 악기에 능통한 분들 말입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사제생활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의 소통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십니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이 반드시 예술적인 재능의 계발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목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제의 주된 임무 중의 하나인 강론의 경우, 신자들의 상태에 대한 섬세한 파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당 신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이며, 어떤 일에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투자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목자로서 양들의 상태와 됨됨이를 잘 알지 못할 때 쌍방의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강론은 신자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말씀으로 일관하게 되고, 그냥 ‘좋은 말씀’으로 그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고해성사의 경우에도 신자 개개인에게 알맞은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누구에게나 보속으로 “성모송 몇 번 하세요.” 하는 것으로 끝날 겁니다. 살아있는 강론도 계속적인 공부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사제의 성장은 교회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보좌신부님들은 주로 주일학교와 교사들 그리고 청년들을 지도하게 됩니다. 많은 시간을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게 되죠. 그러나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그들을 사목하기 위한 좋은 글들을 읽고 공부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발행되는 주간지나 월간지에 청년사목을 위한 좋은 실례와 글들이 있지만, 별로 안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비록 교리교사들과 청년들과 술자리를 하더라도 그냥 어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런 자리에서도 우리는 사제로서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사제의 성장은 바로 교회의 성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 성장해야 하는가? 성숙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봉사하고자 하는 신자들을 위해 날마다 배우고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지식(신학교 때에 배운 것)에 안주하고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지도자는 곧 추종자의 위치로 내려앉고 말 것이며, 좋은 말씀을 독백하는 것 외에는 베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확장하는 방법들은 다양하게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저는 사제들도 신자들 중에서 몇 명을 택하여, 자신이 하는 강론이나 사목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조언을 해주실 분들을 모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신자들의 입장에서 사제들에게 조언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제 자신의 성장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의견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 지식이 넓어지고 지혜가 커집니다. 그래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다음에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책에서 얻은 지식들을 적용해 봐야지 하는 결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사제들은 하루에 몇 시간쯤 독서를 하고 공부를 할까요? 저는 많이 궁금합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되돌아보는 반성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사제로서 올바른 성장은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상황은 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시도 배움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날마다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며 기도와 공부를 하는 데 일정한 시간을 빼놓는다면 머지않아 큰 열매를 맺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기계발이라 함은 스스로를 재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재발견의 과정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 줍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성장, 계발시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잡지, 2010년 4월호, 김종헌 발타사르 신부(대구대교구 태전성당 주임, 주교회의 성음악분과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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