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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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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2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가 할 일

 

 

교회는 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난한 사람들은 종교기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흉년이 들면 사찰에서 밖에 가마솥을 걸고 유랑 걸식하는 사람들에게 죽을 주었다는 기록이 많다.

 

이는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살리는 일이요, 농사철이 될 때까지 노동력을 보전하는 일이다. 최대의 지주였던 사찰이 유랑 걸식하는 민중들을 방치하면, 농사철이 될 때 일꾼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를 살림으로써 나도 살 수 있는 상생이 이것이다. 

 

유럽에서도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늘 앞장섰다. 16세기에 종획운동으로 농지에서 쫓겨난 수많은 사람들이 유랑 걸식하기 전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교회의 고유 역할이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국가의 역할이 점차 강조되었지만, 아직도 교회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서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온 나라에 실직자가 넘쳐나고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날 때, 종교기관들에서는 그들에게 먹을 것과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땅에 있는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은 교회나 사찰에 의해서 직접 운영되거나, 종교적 배경을 통해 운영된다. 사회복지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커지고, 기업과 학교, 병원 등이 사회복지에 관심을 키워가고 있지만, 여전히 교회와 종교인은 핵심적인 복지 자원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와 종교인의 복지활동이 꼭 최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사회문제는 달라지고 복지 욕구도 달라지는데, 교회는 전통적인 접근방법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직접적인 구제활동만이 복지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필자는 이제 교회가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복지활동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새로운 복지활동의 방향으로 물질적 도움, 정서적 지지와 지혜의 제공, 그리고 지역복지 센터 만들기 등을 들 수 있겠다. 

 

 

물질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여전히 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교회가 물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은 여전히 있다. 국가는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소득을 가진 사람들이 기초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보면 생계비가 부족한 모든 국민은 국가로부터 최저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법적으로 보호자가 있거나 재산이 있는 사람은 생계급여를 받기 어려우며, 소득은 없지만 자기 집이 있는 주민도 국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부모가 가출하여 생활능력이 없는 아동도 주민등록상 부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자가 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쌀과 반찬, 연탄 값과 전기세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을 먼저 구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기세를 내지 못해서 단전이 되고, 수도세를 못 내서 수돗물이 끊긴다면 최저한의 생활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회의 긴급구호는 절박한 경우에 최소한에 그친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동사무소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에게 알려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정부는 어려운 가정을 적극 파악하여,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난은 질병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가난하기 때문에 질병을 예방하지 못하고, 치료비가 없어서 작은 병을 키우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있지만 보험급여가 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큰 병에 걸린 사람은 상당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자기부담분의 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희귀병으로 보험급여를 받지 못할 때에는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치료할 수 있는 질병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의료비를 지원하거나, 무료진료사업을 주선하며, 의료기관을 운영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질병에 걸린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크게 늘어난 실직 노숙자에게는 우선 살 수 있는 거처가 필요하다.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인데, 도시의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도 내 집이 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커지듯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들에게 거처를 마련하는 일은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다행히 도시 빈민지역의 많은 교회가 '나눔의 집' 같은 시설을 만들어서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활의 기회를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물질을 직접 줄 뿐만 아니라, 주민이 물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일자리에 대한 정보가 적고, 사회복지 혜택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교회는 노인, 장애인, 편부모 가족, 요보호 아동 등 복지 대상자에게 정부의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고, 신자들에게도 중요한 복지사업과 복지기관을 알려주어서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복지교육을 해야 한다. 

 

정부도 민방위교육, 예비군교육 등을 통해서 사회복지정책을 자세히 알려주어 주민들이 꼭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복지교육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종교기관에서도 장애인주간, 노인주간 등 특정 시기에 관련 복지사업을 자세히 안내할 필요가 있다. 시군구청, 보건소, 대학교, 종교기관 등이 협력하면 복지공동체 만들기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힘과 지혜를 주어야 한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생활공동체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앙공동체를 강조해 왔는데, 초기 교회는 신앙공동체와 생활공동체를 겸하였다. 

 

교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힘과 지혜를 북돋아주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 정서적으로 약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마음이 약한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가정과 직장에서 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이러한 일을 하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비전문적인 상담이나 간헐적인 프로그램만으로는 큰 도움을 줄 수 없다. 

 

교회에 신자와 주민을 위한 '상담실'을 만들고, 전문성을 가진 직원을 채용하며, 상담의 이론과 기법에 대한 기본교육을 받은 사람을 자원상담원으로 위촉하여 조직적으로 상담사업을 할 필요가 있다. 

 

2002년 총 이혼건수는 145만 3천 건(쌍)으로 2001년에 비하여 7.6%가 증가하였다. 이는 하루 평균 398쌍이 이혼한 꼴이다. 이러한 추세는 교회에 나오는 신자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여러 신자 가정이 가정문제 또는 부부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소년소녀가장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에 안주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쉽다. 교회는 혼인을 앞둔 미혼 남녀를 위한 예비부부교실, 혼인생활을 막 시작한 부부를 위한 부부교실, 아동과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부모교실 등을 체계적으로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도 가톨릭의 성가정 사업과 M.E. 프로그램은 다른 종교에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런데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어 꼭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좋은 사업을 널리 확산시켜서 모든 가족이 성가정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마음이 상해서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된 부부, 한 집에 살고 있지만 각 방을 쓰는 부부를 위한 집단상담과 부부 캠프는 부부간의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업이다. 

 

현대사회의 많은 문제는 가정의 위기로 나타난다. 이혼뿐만 아니라, 별거, 학대와 방임도 큰 문제이다. 겉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도 가정폭력이 난무한 경우가 많다. 지나친 음주, 도박, 낭비벽 등 품행장애까지 포함하면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가정은 더욱 늘어난다.

 

교회는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지만, 신자들이 가정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건강한 신앙공동체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만 볼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허한 사람에게 힘과 지혜를 주는 구체적인 사업이 절실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법, 화를 내지 않고도 나의 감정을 전하는 방법 등 수많은 기법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 교회가 인간관계 훈련에 관심을 가지면 주먹보다 말이 앞서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신앙공동체이면서 지역복지 센터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는 초기 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아서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가 생활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일차적으로 가난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일반 신자들이 가진 보편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복지대상자와 복지제공자가 따로 있다는 시각으로는 사회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건강할 때 아픈 사람을 돕고 아플 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강보험'과 같이 모든 사람은 복지대상자이면서 복지제공자이다. 가난한 사람은 기부자에게 물질적 대가를 주기는 어렵지만 나눔의 기쁨을 줄 수 있다. 

 

주는 기쁨과 받는 고마움을 제도화하기 위해서 교회는 각종 봉사활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굳이 새로 만들고, 새로운 직원을 배치하지 않아도 일하는 방법을 조금만 바꾸면 교회는 지역복지 센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방법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난한 이웃을 돕는 레지오 활동을 재가 노인복지 센터로 발전시킨다. 

 

레지오 활동 가운데 독거노인이나 중증장애인의 가정을 방문하여 밑반찬을 주고, 점심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이 있다. 이것은 정부가 장려하는 재가 노인복지사업 가운데 가정봉사원 파견사업에 해당한다. 교회는 부설로 재가 노인복지 센터를 설치하고, 레지오 활동으로 가정봉사원 파견사업을 실천하며, 점차 주간 보호사업과 단기 보호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 좋겠다. 재가 노인복지 센터가 번창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지원할 것이다. 

 

둘째, 교회에 노인대학을 만들고 장차 노인대학을 노인복지회관으로 발전시킨다. 

 

교회는 노인 신자와 지역 노인들을 위해서 노인대학을 만들도록 한다. 대학이라고 해서 별도의 건물이나 강사진이 필요하지 않다. 성당 시설을 활용하고, 신자나 지역인사 가운데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게 강의를 요청하면 된다. 

 

노인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기에 이에 대한 강좌를 개설하고 노인병을 예방하는 운동요법을 가르치거나 물리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배우자나 자녀들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노인들에게 인간관계 훈련을 시키고, 재산을 관리하는 방법,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것도 좋다. 

 

노인대학이 정착되면 각종 취미활동, 동아리활동, 여가활동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장차 노인복지회관으로 발전시킨다. 노인복지회관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직원 인건비와 사업비도 보조받을 수 있기에 매력적인 사업이다.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사랑의 식당을 운영하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배운 풍물이나 악기 연주 등으로 작은 공연을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농촌과 도시 빈민지역에 있는 교회는 재가복지 센터를 겸한다. 

 

인구가 급격히 줄고 고령화되는 농촌의 교회는 더 이상 신자가 늘지 않고, 자체 헌금만으로 교회를 운영하기 어렵다. 

 

아무리 작은 농촌교회도 어린이선교원을 운영했던 교회에는 보육 공간, 식당, 차량 등이 있다. 만일 교회가 아침마다 무료하게 지내는 독거노인들을 차량으로 모셔와서 낮 동안 보호한 뒤에 저녁에 모셔다 드린다면 그것이 바로 주간 보호사업이다. 주간 보호사업은 정부가 크게 장려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농촌 교회도 보전할 수 있다. 

 

넷째, 교회를 지역복지 센터로 발전시키고자 먼저 사목자를 대상으로 복지교육을 한다. 

 

사목자가 사회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교회를 중심으로 복지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또한 각종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다양한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 교회가 신앙과 함께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을 제공할 때, 주민들이 교회로 모일 것이다. 

 

사목자와 신자를 위한 복지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복지사업을 잘하는 우수 사례를 연구하여 지역 실정에 맞는 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개별 교회만의 노력보다는 교구의 사회복지위원회 또는 사회복지재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각종 연찬회를 마련하고, 교재와 지침서를 개발하며, 사회복지 담당직원과 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을 체계화해야 한다. 

 

정부도 교회와 적절한 협력관계를 형성하여 서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정부가 짓는 사회복지관, 노인복지회관, 장애인복지관 등을 민간에 위탁할 때, 종교기관에게 운영할 기회를 주고, 교회에서 복지교육을 실시할 때 강사나 교육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가 주민복지에 체계적으로 관심을 가질 때, 결국 정부의 복지행정은 줄어들 수 있기에 정부는 종교기관과 다양한 협력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섯째, 사이버 공간에 신앙공동체와 생활공동체를 만든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주민의 삶의 공간은 가상공간으로 확장되는데, 아직도 많은 교회는 온라인 사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 교회가 소식지를 보내거나 안내책자를 만들 때, 주소, 전화번호, 팩스 번호만 넣고, 이메일, 홈페이지, 카페 등을 소개하지 않는다면 인구의 절반이 넘는 네티즌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교회가 주보나 자료집을 미리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제공한다면 인쇄비와 발송비 등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교회활동을 널리 알리고, 카페를 통해서 정보를 나눈다면 전화요금도 많이 절감할 수 있다. 아울러 인터넷에서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므로 교회 운영에 신자들의 참여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와 청소년 세대가 교회를 찾게 하려면 가상공간에 생활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것은 몇가지 예에 불과하다. 교회가 신앙공동체이자 지역복지 센터가 되도록 하기 위한 더 많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백 가지 아이디어보다는 한 가지 실천이 더 소중하다. 복지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다. 교회는 행복추구를 위한 신앙공동체이고 생활공동체의 텃밭이지 않은가?

 

[사목, 2003년 10월호, 이용교(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복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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