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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한 비판적 검토2: 법률 목적의 애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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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13 ㅣ No.877

[생명의 문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대한 비판적 검토 (2) 법률 목적의 애매성

생명, 과학 어느 것이 먼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은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윤리 관련 법률로서, 생명과학기술과 관련되는 생명윤리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법률은 '생명윤리 및 안전'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교회는 이 법률의 입법 초기부터 해당 조항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고 있지 않다.
 
이번 호에서는 이 법률이 지닌 문제점 중에서 법률 목적의 애매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애매성'이란 단어 또는 문장이 두 가지 이상 의미를 갖고 있어 그 단어 또는 문장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밤'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단어가 해가 진 후의 어두운 밤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밤나무 열매 밤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할 때 '그 단어는 애매하게 사용됐다'고 말한다.
 
대부분 법률은 제1조에 그 법률 목적을 기술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조에 기술된 목적은 다음과 같다. "이 법은 생명과학기술에 있어서의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고, 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질병 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하여 개발ㆍ이용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부분 법률의 목적 진술은 명료하다. 그런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목적 진술은 너무 길고 복잡해 이 법률의 목적이 무엇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문장을 분석해서 읽어보면, ① 생명과학기술에 있어서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고 ② 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질병 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해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③ 최종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생명윤리 및 안전의 확보'와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만약 생명윤리 및 안전 확보와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충돌할 경우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이를 검토한 한 연구는, 법률의 입법 취지, 뉘른베르크 강령이나 헬싱키 선언 등 국제적 가이드라인의 내용 등을 참고할 때 만약 이런 충돌이 발생할 경우 생명윤리 및 안전 확보가 우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해석해야 인간의 존엄성을 규정한 헌법 제10조, 인체에 위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는 근거 조항인 헌법 제12조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후 조항에서도 이 법률 목적이 생명윤리 및 안전 확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률 제4조의 책무 규정을 보면,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해야 하며 ② 생명과학기술을 연구ㆍ개발 및 이용하고자 하는 자는 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지 아니하고 생명윤리 및 안전에 적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과 관련해서는 이미 1983년 제정, 시행하는 생명공학육성법이 있다. 따라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목적은 '생명과학기술에 있어서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위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는 것으로 명료화해야 한다.
 
참고로 2001년 과학기술부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생명윤리기본법(가칭) 목적 조항은 다음과 같다. "생명윤리기본법은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는다. 생명윤리기본법은 생명과학기술이 생명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면서 건전한 발전을 하도록 돕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는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현재 목적 조항은 이 법률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생명윤리 및 안전의 확보와 생명과학기술을 개발ㆍ이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이 법률이 생명윤리를 확보하려는 법률인지 아니면 생명과학기술연구를 위한 법률인지 불분명하다. 이 법률은 생명윤리 및 안전의 확보를 기본 목적으로 해야 한다. 법률 목적에 대한 복잡한 진술은 이 법률 목적이 무엇인지를 흐리게 한다.
 
[평화신문, 2011년 11월 6일, 홍석영 교수(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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