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8년 해외원조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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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1-13 ㅣ No.319

2008년 해외 원조 주일 담화문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티아 6,10)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1. 지난 세기 동안 우리는 경제 효율의 극대화를 통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달려왔습니다. 예상대로 경제 성장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생활과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한 경쟁, 발전과 진보라는 화려한 구호 밑에 존재하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우리 안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UN의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전 세계 인구 중 10억은 생계비가 하루에 1달러 미만인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으며, 해마다 8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빈곤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1억 4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성적 불평등이라는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4천만 명이 안전한 식수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고, 무분별한 자원 이용과 산림 파괴, 동식물의 멸종, 오염의 증대로 환경이 전례 없이 파괴되어 빈곤층이 입는 환경 피해가 더 크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9월 UN 총회에 189개국 정상이 모여 새천년 선언(Millennium Declaration)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2015년까지 절대 빈곤을 반으로 줄이기 위해 새천년 개발 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선정해 공표하였습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국제 사회는 2015년까지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정부 원조를 자국 GNP의 0.7%까지 끌어올리기로 합의하였습니다.

 

2. 한국 전쟁 이후 세계의 가난한 나라 중 하나에서 세계 10위를 오르내리는 부유한 나라로 자리바꿈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바탕에도 이런 해외 원조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의 빈곤 퇴치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여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미합니다. ‘내가 어렵더라도 남을 도울 줄 아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은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이기적이고 물질중심으로 전도된 가치관에 묻혀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보건복지부의 작년도 자선 모금액은 2,177억 원인데, 이 중 84%가 기업과 단체로부터 나온 것이고, 개인에게서 나온 것은 16%에 불과합니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중국의 20%보다도 낮다고 합니다. 세계공동모금협회 45개 회원국의 평균 개인 기부가 69.5%인데 일본은 70%를, 미국은 83.2%를 개인이 냈다고 합니다. 미국인 중에서 72%가 기부를 하며, 상류층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소득에 대해 더 높은 비율로 기부를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서양 문화와 공동체적인 우리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결과라는 분석도 가능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부 문화에 인색한 국민이라는 평가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세계 시민으로서,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웃에 대한 맡은 바 책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한국 천주교회가 세계를 향해 나눔을 실천하려고 ‘해외 원조 주일’을 정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3.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께서도 첫 번째 회칙인「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동일시하셨습니다.”(15항)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며,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에게 폐쇄적이거나 이웃을 미워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될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깊은 본질은 하느님 말씀의 선포, 성사 거행, 그리고 사랑의 섬김이라는 교회의 삼중 임무로 드러납니다. 이 임무들은 서로를 전제로 하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 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표현입니다”(25항).

 

이번 사도좌 정기방문에서 저는 교황님을 알현하면서 한국 교회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을 설명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 차례의 평양 방문과 대북 지원 상황을 들으신 교황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시며 “주교님은 한국 카리타스의 위원장을 맡고 계시니 북한 주민들을 계속 돌보아주고, 좀 더 계획적으로 도와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의 소명을 일깨워주시는 교황님의 말씀은 가깝든 멀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어야 하며, 단순히 ‘남는 것’이 아닌 ‘요긴한 것’을 가지고서 나누어야 한다는 교회의 오래된 전통에서 기인합니다(「사회적 관심」 31항 참조). 오늘날 고통 받는 사람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이웃을 외면하는 것은 거지 라자로가 자기 집 문간에 누워 있음을 모르는 체 하는 부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루카 16,19-31 참조). 사도 바오로의 권고처럼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져 주어야 할 구체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7-18).”

 

2008년 1월 27일 해외 원조 주일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한국 카리타스)

위원장 유흥식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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