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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상 안의 교회, 사회교리의 흐름: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진리 안의 사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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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10-17 ㅣ No.693

[경향 돋보기 -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회칙 “진리 안의 사랑”] 세상 안의 교회, 사회교리의 흐름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진리 안의 사랑”까지

 

 

교회는 언제나 세상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곧 세상인 시절에는 교회의 일들에 대한 관심만으로 충분했었다. 그러나 교회와 세상의 분리가 확연해지는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또 교회에 대한 세상의 도전이 더 분명해지는 근대 시대를 통과하면서 교회는 세상의 일들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목소리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레오 13세 교황 이래로 교회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공식문헌들을 통해 제시해 왔다.

 

더 좋은 사회에 대한 전망과 사회 안에서의 신앙인의 태도와 자세에 대한 교회의 성찰과 해석들을 담고 있는 사회교리는 언제나 교회와 사회 양자 모두를 겨냥한다. 사회교리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당대 사회의 주요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대화적 반응이기에 닫힌 체계가 아니라 열린 체계다.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1891년)가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첫 문헌이다. 그렇지만 사회교리의 연원은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교리의 근원적 바탕은 성경의 사회적 가르침과 교회 전통 안의 사회적 사상들에 두고 있다. 사회교리의 주요한 근거는 성경 안의 사회적 가르침이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사회회칙들은 주로 스콜라 신학과 철학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자연법 이론에 바탕을 두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공의회 이후의 사회회칙들은 좀 더 성서적 근원에 그 바탕을 두는 경향을 드러낸다.

 

사회교리의 사상적 배경은 아우구스티노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이론이다. 아우구스티노의 “신국론”에 따르면, 영원한 법을 반영하는 교회는 지상의 국가들을 조명해 주어야 하는 책임을 지닌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은 그 안에 하느님의 법을 담고 있으며 이성적 인간은 사회 안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근대 산업화 사회 안의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한 현실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는 교회의 초기 사회회칙들은 스콜라 신학에 대한 경도(傾倒)와, 교회와 세상의 일치를 담지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중세교회에 대한 로망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 속에 존재해 왔으며, 세상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복음의 빛에 비추어 세상의 일들을 해석하고 사회의 흐름에 개입해 왔다. 사실 교회는 모든 시기를 통해 그 자신의 사회교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의 사회교리가 교황의 문헌들을 통해 정립되고 선포되기 시작한 것은 교황과 교도권에 대한 이해가 발전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교황의 교도권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자리 잡히기 시작한 것은 그레고리오 16세 교황(1831-1846년)에서부터 비오 12세 교황(1939-1958년)에 이르기까지다. 이때부터 교황의 교도권이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규범으로 작동되었기 때문에 교황의 사회적 문헌들이 교회의 사회교리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회교리에 대한 문헌들

 

19세기 말 근대 산업혁명이 정점에 도달한 유럽 사회 안에는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도시로 몰린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 당시 등장하기 시작한 사회주의 이념들이 노동자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따라서 교회는 노동자들의 권익에 관심을 가져야 했으며, 동시에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레오 13세 교황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는 그 시대 교회의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회칙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강조한다. 곧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와 노동조합을 구성할 권리를 강조하며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국가의 중재와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한편으로 이 회칙은 그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극렬한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이 회칙에 따르면 사유재산권은 자연법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며 노동은 사유재산권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 회칙은 사유재산권의 확보를 통해 노동자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회적 안전성을 담보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회칙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모든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관계적 인간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에 비추어 교회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양자 모두를 반대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 기준은 후대의 사회회칙들의 근간이 된다.

 

1920년대 후반의 경제적 대공황은 또 한 번 노동자들의 기본적 삶을 흔들고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비오 11세 교황은 회칙 “사십주년”(1931년)을 통해 “새로운 사태”의 정신들을 계승하고 그 원칙들을 재천명하였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사유재산권을 옹호하고 노사간 갈등에서 국가의 개입을 지지하였다. 또 한편으로 러시아 혁명 이후의 국가사회주의 등장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하였다. 이 회칙의 특징 중 하나는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자유주의(capitalistic liberalism)에 대한 강한 반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회칙은 극단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뛰어넘어 일종의 조합주의(corporatist)적 사회질서를 제안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 경제적 상황은 약간 낙관적 전망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확신과 경제개발과 발전을 통해 사회적 빈곤이 퇴출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표현되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사회회칙들은 개발의 도정에서 발생하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비판과 경제 질서 안에서의 도덕적 원칙들을 강조하였다. 요한 23세 교황은 ‘그리스도교와 사회적 진보’라는 부제가 붙은 회칙 “어머니요 스승”(1961년)에서 사회화 과정의 복합성을 강조하였다. 사람들과 사회들은 서로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국가만이 복잡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회칙은 사유재산권을 강조하지만 한편으로 재산권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고려를 담고 있다. 이 회칙은 또한 산업에서 노동자들의 폭넓은 참여를 요청하며, 경제개발 도정에서 소외되는 농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냉전시기에 선포된 회칙 “지상의 평화”(1963년)는 인권에 대한 포괄적 가르침을 담고 있으며 동서간의 대화를 강조하고 파괴적 무기의 감축과 국제질서를 위한 국제연합(UN)의 강화를 주장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1965년)은 사회교리의 형성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헌장은 교회는 시대의 징표들을 읽고 복음의 빛에 비추어 그 징표들을 해석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선포한다. 또한 현대세계 안에서 교회가 직면한 도전들에 응답해야 함을 강조한다. 곧 교회의 사회적 참여는 교회의 본질임을 선언한다.

 

1960년대 일종의 세계경제개발 시대에 산업화된 국가와 개발도상국들 간의 부의 불균형의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회칙 “민족들의 발전”(1967년)을 통해 국제무역에서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를 지적하고 가난한 국가들에 대한 부유한 국가들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였다. 이 회칙은 모든 재화는 모든 민족을 위해 사용되어야 함과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사회적 발전을 강조하였다. 바오로 6세는 교황 교서 “팔십주년”(1971년)을 통해 평등과 참여에 대한 인간적 갈망을 강조하면서 산업화 과정 속에서의 도시화와 환경에 대한 문제점들을 처음으로 지적했다.

 

로마 시노드 문헌인 “세계정의”(1971년)는 경제적 개발도상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불평등에 주목하면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요청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 안에서 정의를 증언하는 일이 교회의 사명임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바오로 6세의 교황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1975년)는 복음화의 과정 안에는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이 포함된다는 것을 선포한다. 이 문헌은 해방신학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첫 번째 사회회칙인 “노동하는 인간”(1981년)은 노동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 수상으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 경제정책이 노동자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이 문헌은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언급하면서 자본에 대한 노동의 우선성을 강조한다. 또한 이 문헌은 노동자의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노동자들의 연대성을 강조한다.

 

1980년대 후반,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간의 경제적 격차가 심화되어가고 또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의 서구 국가들과 동구 국가들의 갈등이 더 첨예해지던 시기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사회적 관심”(1987년)을 통해 국가 간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했다. 이 회칙은 사회의 구조적 죄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언급한다. 한편 이 회칙은 사회교리에 대한 일종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사회교리는 자본주의와 막시즘 사이의 제3의 길을 지칭하는 이념이 아니고 또 사회적 갈등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며, 오직 복합적인 세상 안에서 신앙인들의 사회적 행동을 끌어내는 실천적 도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1989년 공산주의의 몰락과 동구 국가들 안에서의 극적인 경제체제의 변화는 많은 사회문제들을 야기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백주년”(1991년)을 통해 국가사회주의의 폐해와 자본주의 체제가 생산해 내는 사회적 불평등을 지적하면서 개인과 사회의 쇄신을 촉구하였다. 특히 이 회칙은 자본주의 체제 속의 생활방식, 곧 소비주의가 갖는 비영성적 측면을 강하게 비판한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지구촌을 하나의 세계로 묶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결합된 세계화(globalization)의 과정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전 지구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막대한 환경문제들을 낳으며, 다양한 지역문화들을 소멸시키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신의 첫 사회회칙인 “진리 안의 사랑(Caritas in Veritate)”(2009년)을 통해 세계화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이 문헌은 사회 경제적 과정으로서의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모두를 고려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지닌 세계화를 강조한다. 이 문헌 안에서 교황은, 세계화 시대의 복합적 문제들을 전대 교황들의 문헌들에서 확립된 사회교리의 원칙들에 비추어 해석하고 윤리적 규범을 제시하며, 우리가 “세계화의 희생양이 아니라 세계화의 주역이 되어 사랑과 진리의 인도를 받아 분별력 있게 행동”(42항)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회교리의 의의와 한계

 

사회교리는 주로 경제 질서에 관한 문제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 질서에 대한 문제는 경제 문제와 결부된 경우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교리는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파생되는 문제들(노동관계, 사유재산권, 자유시장경제의 폐해, 소비주의 생활양식 등등)을 몇 개의 신앙 윤리적 원칙들(공동선, 연대성, 그리스도교적 정의 등등)에 비추어 분석하고 평가하여 신앙적 행동의 지침을 제시한다. 사회교리는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원칙들의 제시와 동시에 제도적 교회 자신의 행동을 포함한다. 19세기 이후 교회의 공식적인 문헌들을 통해 확립되어 온 사회교리는 세상 속의 교회에 대한 뚜렷한 증거였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사회교리는 이상적 원칙들로만 가득하고 구체적 행동을 끌어낼 세부적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았다. 실제 교황의 회칙들은 이론과 실천의 긴밀한 연결을 제시할 수 있는 통합된 방법론을 잘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으며,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그저 산발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수준을 잘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편으로 사회교리를 담고 있는 교회의 문헌들은, 사회적 실재와 그 실재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사용된 신학적 언어들과의 간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역사적 지식을 수반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회교리 안의 애매모호함은 양자택일보다는 양자 모두를 선택하거나 양자 모두를 비판하는 제3의 입장을 선호하는 가톨릭 신학의 특성에 기인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손쉬운 양비론에 빠지기 쉬운 경향을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 애매모호함은 교회의 과거의 사회교리들과 어떤 연속성을 가지려는 입장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교리들 안에 내포된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한편으로 그 해석의 다양성을 초래해 교회 안의 갈등의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노동하는 인간”과 “백주년”의 회칙에 대한 가톨릭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사이에는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이 회칙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교회의 지지와 인정을 뜻하며, 진보주의자들에게 이 회칙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교회의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사회교리가 살아있는 것이 되려면 사회교리 안의 원칙들과 실제 교회의 모습 간의 괴리 역시 늘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회교리 안에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를 자주 비판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자신이 외적 성장과 자본의 논리에 빠져 살아가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교회 자신이 스스로 이런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교회의 사회교리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할 수가 있다.

 

아마도 어쩌면 사회교리의 구체적 실천은 언제나 구체적 사회 안에 존재하는 지역교회들 그 자신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 정희완 요한 - 안동교구 신부. 버클리 예수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교회, 그리고 경제적 세계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문경 모전동성당 주임으로 있다.

 

[경향잡지, 2009년 10월호, 정희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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