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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상의 평화는 불가능한가?: 한반도 평화협정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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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30 ㅣ No.1085

[경향 돋보기 - 지상의 평화는 불가능한가?] 한반도 평화협정의 이해


현재 한반도의 남과 북은 엄밀히 말하면 전쟁 중이다. 단지, 필요에 의해 1953년 양측이 전쟁을 정지하는데 합의했고, 이와 같은 정전체제는 1954년 제네바 정치회담이 결렬됨으로써 평화체제로 대체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지금도 한반도의 정치 경제 군사뿐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각종 선거에서 분단관리 문제는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 이슈가 되어 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국가신인도 하락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며, DMZ는 세계 최고의 군사 요새지역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창조적 아이디어를 한창 실험해야 할 때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현실은 정전체제의 영향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널리 퍼져있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는 이유

남과 북이 전쟁을 끝내고, 위와 같은 분단의 도전과 위험을 청산하려면 평화체제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물론, 평화협정 체결이 곧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쌍방의 평화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면 협정문은 휴지조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언급하겠지만, 평화협정은 실질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조치와 실행이 동반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평화협정의 중요성은 남북의 역동적 관계의 절정 국면에서 부각되어 왔다. 관계가 진취적으로 개선되는 단계에서, 그리고 극적으로 악화되는 국면에서 ‘전환 카드’로 부상했었다. 최근 북한의 평화협정 카드는 후자에 속한다. 북한은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으로 말미암은 일련의 긴장격화 과정에서 평화협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북한은 2013년 3월 5일 키 리졸브 및 독수리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정전협정에 대한 최대 유린이고 파기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판문점대표부 활동도 전면 중지하겠다고 선언했고, 3월 8일에는 정전협정이 백지화되면 상호간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들도 전면 무효화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북한은 그러면서 한반도에 일찍이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됐더라면 핵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압박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다. 미국은 6·25전쟁 직후 대북 제재를 시작하였다. 미국은 2008년 북핵문제 해결을 추동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을 ‘적성국교역법’ 적용대상 및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했으나, 대통령 행정명령 등에 따라 북한 자산에 대한 동결을 유지하고 북한산 완제품이나 부품 또는 기술로 제조된 모든 상품의 미국 내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에 따라 가해진 UN 주도의 대북제재는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고 북한의 생존전략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 평화협정 논의는 미국을 핵심당사자로 할 것인 바 이는 북한을 협상상대로 인정하게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제재하면서 평화를 논할 수 없다.”는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재완화나 폐기는 병든 북한 경제가 갈급한 외부 수혈을 가능케 할 것이다.

둘째, 만일 평화협상을 위해 미국 등이 핵실험에 따른 제재를 완화하거나 폐기하면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핵보유국가가 된 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했다고 간주하고 그에 따른 대접을 요구할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면 북한은 이를 일방적 조치라 비난하면서 양자간 핵감축협상으로 대응할 것이다.

셋째, 군사적 합의인 정전협정과 달리 정치적 합의인 평화협정은 협정당사자들이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함을 전제로 한다. 곧 정전협정은 교전 쌍방의 군사지휘관이 체결한 것이나 평화협정은 정부 간 체결하는 것으로 이것이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협정 상대를 정치적으로 승인해야만 하고 이는 사실상의 수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넷째,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로 전쟁이 종료되었으므로 전쟁 때문에 파견된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남한 내의 군사역량이 저하되고 특히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대규모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어 군사적 ‘피포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 등 대량파괴무기를 배경으로 남한에 대해 정치 군사적 양보를 강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들은 북한의 일방적 희망사항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해서 현재 한국과 미국은 평화협정 논의가 시기상조이면서도 북한이 파놓은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이상 평화협정 언급 자체가 대북정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미는 적어도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진지한 행동을 먼저 취하는 것이 순리라고 보고 있다.

평화협정은 조건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기다리기보다는 만들어간다는 자세가 중요하고, 그에 상응한 계획과 준비가 필수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평화협정과 이를 지지하는 제도적 기반에 관한 원칙과 방향을 정리해 보자.


평화협정과 이를 지지하는 제도적 기반에 관한 원칙과 방향

전쟁을 종료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법적 첫 단계로서 평화협정은 (1) 언제 (2) 누가 (3) 무엇을 담는가가 중요하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일단 남과 북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의지를 확인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현재와 같이 극단적인 대결국면에서는 시도 자체가 큰 정치적 부담과 군사전략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해도 평화협정의 시도가 ‘조건이 성숙하면’이라는 조건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조건이라는 것이 특정 세력의 정치적 타산과 연결되어 무한정 늘어짐으로써 궁극적으로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로, 반전(反轉)의 역동성을 시현하는 극적 평화의 시도가 현존하는 대결적 구도를 적극적으로 순화시키는 촉매나 촉진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지도자들은 국가와 민족 이익을 극대화하는 평화시도의 균형점이 언제 찾아질 수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분별력 있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어떤 나라가 이에 서명하게 되는가? 한동안 북한은 남한이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원했다.) 평화협정에서도 당사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한국이야말로 평화체제를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당사자의 일원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선전효과는 몰라도 설득력은 갖지 못한다. 누구를 배제하기보다는 전쟁에 직접 참여했고, 평화체제를 관리할 당사자들 모두가 참여 · 서명하는 평화협정이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일 것이다.


평화협정에 담을 내용

평화협정은 어떤 내용을 담게 될 것인가? 평화협정은 단순히 전쟁 종식의 선언뿐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의지를 확인하고 평화를 관리하는 조치들을 망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정전체제를 대체할 구체적 방안들을 담아야 한다. 이를테면 비무장지대 처리 방안, 군사적 적대행위 방지 조치, 그리고 정전체제를 관리해 온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의 대체방안 등이 있을 것이다. 아울러 통일에 대한 정치적 의지 등과 함께 국제적 평화보장 조치도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과 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무력 불사용,’ ‘불가침,’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을 약속하고, ‘불가침의 경계선’을 정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으로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한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고 군사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문제도 원칙적으로 합의하였다. 따라서 협정당사자들 특히 한국은 평화협정에 담아야 할 내용의 대강을 이미 포함하고 있는 남북기본합의서를 평화협정의 골간으로 제시하고 미비한 부분에 대한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평화과정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의할 점도 있다. 한국은 전통적 평화협정에 포함되었던 전쟁의 원인과 책임 규명, 이에 따른 배상과 보상, 전범처리 및 사면 문제 등이 평화협정 협의 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평화만들기’라는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한다. 책임 규명 등은 평화와 협력이 정착 확산되면 묻지 않아도 해결될 것이다. 또한 남북문제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라는 점을 고려하여, 주권과 국경 및 내정 불간섭 등 국가승인의 의미를 갖는 용어의 사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남과 북이 평화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평화협정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평화체제를 지지할 실질적 조치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대량파괴무기의 제거와 북미 · 북일관계정상화를 ‘동시행동의 원칙’에 입각해 교환하는 조치이다. 한국이 냉전기 위협이었던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했듯이 북미 · 북일수교가 이뤄지면 이른바 교차승인이 완성된다. 더욱 큰 의미는 한국의 일차적 국가목표가 평화와 번영이라 할 때, 그리고 북한의 체제 불안감과 독특한 외부인식 체계를 고려할 때, 이러한 ‘동시적 빅딜’이 합리적일 뿐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도 ‘북한 순화’와 관련한 관계정상화의 적극적 긍정적 측면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평양에 미국대사관이 들어가면 ‘비밀핵프로그램’에 대한 의심도 체계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다. 과거 한국이 실험 목적으로 저농축우라늄 0.2g을 생산한 사실이 드러난 것도 IAEA 등 국제사회에 한국이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계정상화는 ‘북한 변화’와 관련해서도 근본적이고 미래지향적 효과를 낼 수 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또는 1979년 관계정상화 이전과 이후의 중국은 얼마나 다른가? 북한이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

또 하나의 중요한 조치는 남북 군사력의 하향적 균형화이다. 전쟁할 수 있는 능력 특히 기습공격 능력을 낮추면 불확정적이고 불투명한 상대의 의도에 의존하는 부담이 덜어진다. 전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군사분계선에 전진배치된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등 군사적 신뢰조치를 취하고, 이어서 단계적으로 공격형 무기를 줄이는 등 군사력 감축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치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충분치 않다. 중국과 일본이 군비경쟁을 지속하는 상태에서 한반도에서만 군축을 실시한다면 결국 남북한만 ‘동북아 권력정치의 희생양’이 될 공산이 크고, 그와 같은 조치의 정치적 현실성과 군사적 타당성은 담보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 내의 평화 촉진과 함께 안보 유지를 위해 동북아국가들이 정치적 신뢰 구축, 군사적 투명성 보장, 무력 갈등 예방 등을 목표로 협력하는 다자간 안보협력의 제도화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1975년 헬싱키에서 시작된 유럽의 다자간 안보협력 노력의 결정체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자신의 이익과 절대적으로 부합하는 동북아 다자간 안보협력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한국은 동북아 어느 국가에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이들 국가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은 평화의 제도화라는 담론을 단순히 선포하는 이상주의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수준의 국력으로 그러한 담론을 행동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나 결과를 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공언한 ‘서울 프로세스’의 추진은 의미 있는 (재)시작이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기회의 창’이 열리도록 능동적이고 분별력 있게 선제

평화협정은 멀리 놓여있는 결승점이 아니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끌어당길 수 있는 가변적인 위치에 있다. 강조하건대, 한반도의 평화를 보는 시각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에게 평화는 ‘나의 일’이고, 아무리 맹방이라 해도 타국에게는 궁극적으로는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압박 봉쇄하면서 ‘수그리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북한이 비핵화의 로드맵으로 신속히 그리고 진지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정치적 한도 내에서 적극적 유인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제재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있고, 전략적 학습효과를 이용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북한 방치는 대량파괴무기의 증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특히 고려해야 한다. 북한 동포의 인권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나의 일’을 해야 한다. 한국의 이익의 관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분단 대결의 부담금을 평화 안정의 배당금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의 ‘이한제한(以韓制韓)’을 극복하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한국은 평화협정이 북한의 핵지위를 인정하거나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결과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남한의 주민이 ‘핵을 이고 살 수 없고,’ 한미동맹은 전쟁과는 법적 역사적 계보가 다르다. 그 밖에 사활적 국가이익이 침해되도록 방치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의 창’이 열리도록 능동적이고 분별력 있게 선제하고, 창이 열리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명민함과 유연성을 확보하며, 창이 닫히기 전에 손을 쓸 수 있는 과감성과 기민성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박건영 아우구스티노(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학부장,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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