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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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13: 인간과 모든 생명체 존중 · 봉사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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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8-14 ㅣ No.1087

[생명의 복음, 그 영원한 울림] (13) 인간과 모든 생명체 존중 · 봉사할 책임

인간, 모든 생명 주도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할 의무 지녀


천상의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지상의 생명 봉사자들에게 주신 편지

시작하며

자료검색을 하다가 TV 의료 드라마 '골든타임' 누리방에서 의미심장한 댓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요즘은 자기 자신을 책임지기도 힘든 시대입니다. 한 몸을 책임진다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 힘겨워하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일이 버거워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책임'이 필요한 일들은 많아졌지만 '책임진다'는 말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책임진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두고 '허세가 심하다'고 평가할 정도니 시대가 사람들을 겁쟁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또 '책임'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양해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내 책임이고 어떤 부분이 남의 책임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생명봉사자 : 사실 '생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말씀하실 때마다 부담스럽습니다. 내 한 몸도 버거운데 어디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요. <<인간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신성한 가치>>(2항 §2)와 그 엄중함 때문이겠지요. 나이가 많아지고 지위가 높아지면 질수록 높아지는 그 책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사전적 의미를 보면 '책임'은 꾸짖을 책(責)에 맡길 임(任)자를 쓰며, 첫째, 도맡아 해야 할 임무나 의무를 뜻하고, 둘째,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制裁)를 뜻합니다. 통상 둘째에 더 마음이 가지요. 연대책임을 지다,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묻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다 등의 예문으로 보건대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물어내고 파산하고 사퇴해야 하는 '책임'을 맨 정신으로 자청하기는 누구나 어렵고 두렵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어로 보면 제법 달라집니다. 영어 'responsible'(책임있는) 'responsibility'(책임성)는 라틴어 동사 'respondere'(응답하다)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조건에 인간이 'respond'(응답하기)를 하는 것이 'responsible'(책임지는) 것입니다. 생명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도하심에 대한 부응(副應)일 것이기에 '책임지는'이란 의미는 그래서 '긍정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기에 <<인간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39항 §1)고 명백하게 선언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생명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그 한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후대 입법에서 드러났고 산상설교에서 완전하게 제시된 것처럼 <<육체적 생명의 불가침성에 대한 존중>>(40항 §2)을 하면 '책임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이니, 우리는 '갑'이신 하느님의 권능에 '응답'하는 '을'이면 충분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능력도 없는 '무책임한 책임', 권한도 없는 '무늬만의 책임'을 스스로 주장하면 안되겠습니다. 과장된 책임감은 '진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속임수'에서 나옵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윤리적으로 합당한' 도움을 주고 죽어가는 사람은 '최소한의 품위'로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 'responsible'한 선택, 그리고 참으로 '응답하는'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 교황님께서는 <<온 세상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확인해주시면서 동시에 '도덕적인 생태학적 책임'도 강조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하느님께서 인간의 인격적 존엄성과 생명을 위해 봉사하도록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42항 §2). 그리고 인간이 오직 인간만을 위해 창조되었음도 빠뜨리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하느님의 주권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 생명 그 자체를 위해 창조되었다는 특별한 의무 안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43항 §1).

다음에는 '태아의 생명과 노년의 고통'에 대해 더 다루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 >>는 「생명의 복음」 본문.

[평화신문, 2013년 8월 11일, 이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교육분과장,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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