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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성모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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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3 ㅣ No.627

과거 평화신문 기사인데 참조하세요.
 
 
세계의 성모 마리아상
 
 
광복절인 8월 15일은 교회전례력으로 성모마리아의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들어올려지심을 기념하는 성모승천대축일이다.
 
성모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치고 승천했다는 사실은 성서에 기록돼 있지 않지만 이미 4세기 중엽부터 신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으며, 8세기에는 그 날짜가 8월 15일로 정해졌다.  이 교리가 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된 것은 금세기에 와서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 11월 1일 구세사(救世史)에서 마리아가 수행했던 특별한 역할을 인정, ‘성모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성좌의 고유한 권위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천주의 모친 마리아께서 지상생애를 마치신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교의를 하느님이 계시하신  대로 공언하고 선언하며 분명히 정의하는 바이다.”(교황 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지극히 자혜(慈惠)로우신 하느님’)
 
이후 성모승천대축일은 마리아에 관한 축일 중  가장 중요한 축일로 1월 1일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과 함께 의무축일로 지내오고 있다.
 
특히 성모의 밤 행사에서나 또 묵주의 기도를 바치는 신자들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성모신심은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또 다른 전통이다. 하지만 신자들 중에는 가정에 모셔둔 성모상은 물론 성모와 관련된 각종 성물의 종류와 유래, 특징 등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적으로 보급된 수많은 형상의 성모상과 성물 중 한국의 신자들이 가장  많이 모셔두고 있거나 소지하고 있는 것들을 추려 소개한다.
 
▲ 루르드의 성모상 : 1858년 2월 11일 이후 프랑스 루르드(Lourdes)에서 16∼18번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재현한 것. 각 가정에 모셔둔 소형 성모상과 성당 마당 한쪽에 설치된 성모동굴의 성모상은 대부분 이것이다.
 
머릿수건과 옷은 모두 흰색이고,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으며, 묵주를 오른쪽 팔에 걸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발등에는 장미송이가 놓여있다.
 
성모동굴은 1858년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을 재현한 것으로, 당시 성모님은 14세 된  소녀 베르나데트(1844∼1879)에게 나타나 “나는 원죄없이 잉태된 자”로 이름을 밝히고는 회개와 보속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성모 형상은 베르나데트의 증언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이후 노틀담 자매수녀회에 입회한 가난한 방앗간 집 맏딸 베르나데트는 1933년에 시성되었다.
 
국내에 루르드 성모상이 많이 보급된 이유는 한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파리 외방전교회의 영향 때문이다.
 
▲ ‘평화의 모후’ 성모상 : 흔히 ‘평화의 모후’  ‘자비의 모후’라 부르며,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이 성모상을 모셔놓고 회합을  한다. 성모님이 두 팔을 펼치신 자세로 흰 수건과 망토를 두르고 있으며, 발 밑에 뱀을  밟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화의 모후 성모상은 1830년 프랑스 파리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에서 성녀 카타리나 라보레(1806∼1876)에게 발현하신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발현 당시 성모마리아는 “신뢰를 갖고 열심히 기도하면  어떤 기도도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성모 마리아는 11월27일 두 번째 발현에서 자신의 발현모습을 메달에 새겨 보급하라고 일러주었다.
 
맨 처음에는 성모님의 지시대로 ‘기적의 메달’에만 그 모습이 새겨졌으나 점차 상본과 조각 등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 기적의 메달 : 1830년 성녀 카타리나  라보레에게 발현한 모습을 새긴  것. 당시 카타리나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지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은총이 내리는 메달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성모 마리아는 타원형의 구조 안에서 발현하였는데 그 주변에는 황금글씨로 ‘오,  마리아, 죄 없이 잉태되신 분, 당신께 다가가는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라고 적혀있었다.
 
그후 메달 뒷면에는 M자와 십자가, 그리고 그  아래에는 가시관에 싸여있는 예수의 성심과, 칼이  꿰뚫고 있는  성모신심이 있는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1832년 파리의 대주교가 이 메달의 주조를 허락하면서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메달의 대중적 인기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무염시태)’ 교의를 선언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 파티마의 성모상 :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6번에 걸쳐 루치아, 프란치스코, 히야친타라는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하셨던 모습을 재현한 것.
 
하얀 수건을 쓰고 흰옷을 입고 있으며, 가슴에 금색지구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두 손은 묵주를 걸은 채 합장하고 있다. 또 두 발은 구름을 밟고 있으며, 구름 아래에는 참나무 가지들이 늘어져 있다.
 
특히 성모발현을 목격한 세 사람의 목동 중  프란치스코(1908∼1919)와 히야친타(1910∼1920)가 오는 10월께 복자품에 오를 예정이다. 이후 수녀가 된 루치아(92)는 현재 스페인 코인브라 가르멜수녀원에 있다. 파티마 성모는 어린 목동들을 통해 속죄하고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칠 것 등을 당부했다.
 
▲ 한국의 성모상 : 90년대 들어 한국인의 특징적인  얼굴표정과 미학을 형상화한 성모상이 신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최봉자 수녀를 꼽을 수 있으며, 성물의 토착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 1933년 벨기에 바뇌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발현한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한 ‘바뇌의 성모’(루르드 성모상과 흡사하나 머리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있는 점이 다름) ▲ 1931년  까무잡잡한 인디언 여인의 모습으로 발현한 ‘과달루페의 성모’ ▲ 1947년부터 이탈리아에서 가슴에  세 송이의 장미를 달고 나타난 마리아를 형상화한 ‘신비로운 장미’라는 이름의 성모상 등이 한국에 보급돼 있다.
 
신학자들은 “성모상과 같은  성물 자체를 공경의  대상으로 삼거나 은총을 내려주는 신비체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성물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제541호(1999-08-15),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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