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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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11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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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07-12 ㅣ No.198

제11회 농민주일 담화문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로 우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농민주일’을 제정한 지 열한 해를 맞고 있습니다. 농민주일은 위기에 처한 농촌과 농업의 소중함을 깨닫고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창조질서 보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하는 취지에서 제정되었습니다. 그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는 그러한 노력들의 작은 결실을 보아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는 농업과 농민의 중요성을 옹호하고 친환경적인 농산물 직거래를 통한 도농간 공동체 건설에 이바지함으로써 농민들에게 작은 희망을 안겨 주어 왔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제11회 농민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농민들이 처한 상황은 절박하기만 합니다. 정부는 그 동안 농촌을 살리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으나 근본적 해결 노력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고 여겨집니다. 고기 잡는 그물을 주거나,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주기보다 고기를 나누어 준 임시변통에 만족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하고, 1995년 농민주일을 처음으로 제정한 이래로 점점 어려워져 가는 농촌과 농민들의 상황을 주목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경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미 칠레와 체결하였고 앞으로 미국 등의 개별 국가들과 체결하려는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을 통하여 한국의 농업과 농촌 공동체를 해체 직전의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농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향후 10년 동안 119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하지만 그 결실이 다수 농민들에게 돌아갈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며 그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도 불확실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교회는 불안과 빚더미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농민들을 위하여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고뇌하고 있습니다.

 

3. 한편, 우리는 현재의 FTA가 글로벌 경제의 흐름 속에서 국가의 경제를 대승적으로 살리기 위하여 맺어진 고육지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곧 자동차와 핸드폰을 더 팔기 위하여 쌀을 포함한 과수와 곡물 등의 수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 속에서 우리 정부가 농촌과 농민의 권익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냉철한 검토를 해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바입니다.

 

정부 주도로 수조 원의 세금을 투자하여 혁신농업, 경쟁력 있는 농업을 개발하는 것이 생존의 길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우리 농업이 지속적으로 위축되어 가고 있으며,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농촌 인구는 급격히 노령화해 가고 있으며, 농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한 현실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며 그 소중함은 시장의 원리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농민들이 “쌀은 민족의 생명이며 나라의 주권”이라고 호소하는 것은 벼농사가 단순히 경제적 재화로서의 쌀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을 보전하고, 지하수를 만들어 내며, 홍수를 방지하고, 토양의 유실을 막으며, 기후를 조절하는 등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공익적인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따라서 우리 교회는 제11회 ‘농민주일’을 기하여 농업과 농민이 ‘공동선’의 이름으로 일방적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촉구합니다.

 

교회는 강자 위주의 시장원리만을 강조하는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하여 “소외 없는 세계화의 필요성”(요한 바오로 2세 “세계 평화의 날 담화”, 1998.1.1. 제3항)을 거듭 역설한 바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도 2006년 사순시기 담화를 통하여 “인류의 참된 선에 초점을 두는 세계화를 이루는 길, 따라서 참된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강조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외 없는 세계화를 만들기 위한 구조적인 개선의 노력이 절실한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는 지난 1994년 이래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통하여 전개해 오고 있는 ‘생명공동체’운동에 격려를 보내며, 이 운동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 참된 의미를 지속적으로 구현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농촌의 마을 공동체와 도시의 본당 공동체뿐만 아니라 교회의 많은 구성원들, 학교와 단체와 기관과 병원에서도 이 운동에 활발히 동참하여 생명 농산물을 나누며, 동시에 생명공동체 운동의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실천방식들을 개발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농촌과 생명을 함께 살리는 운동을 통하여 모든 자연과 생명체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살아 숨쉬는 터전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농촌과 도시에서 생태와 공동체의 가치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도농간의 직거래와 상호 교류 등 다양한 실천방식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실천과 행동은 고사 직전에 있는 고목에서 새순이 돋고 햇순이 나오게 함으로써 쓰러져 가는 생태와 생명을 되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농민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농사일을 통하여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여러분이야 말로 생명이신 하느님의 자녀로서 가장 귀중한 몫의 하나를 수행하고 있음을 의식하여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6년 7월 16일 제11차 농민주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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