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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무익한 연명치료 중단 (1) 이것은 의미가 없는 치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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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2-01 ㅣ No.991

[생명의 문화] 무익한 연명치료 중단 (1) 이것은 의미가 없는 치료입니다?

연명치료의 의미, 누가 정하는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일주일째 입원 중인 김 할머니를 돌보는 딸들은 요즘 고민에 잠을 못 이룬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이 절로 나올 때도 있지만, 눈물의 자리를 이렇게 큰 한숨이 차지하게 될지 몰랐다. 

의료진은 할머니가 깨어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했다. 의식이 돌아온다고 해도 이미 암이 전신에 다 퍼져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치료방법도 없다. 결국 극심한 통증 속에서 임종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딸들은 한숨만 푹푹 나왔다. 게다가 입원비로 큰 비용이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10월 2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의원의 주장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년도 의료 수가 협상의 조건으로 대한병원협회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할 것을 제시했고 이러한 목표가 달성될 경우 인센티브까지 지급하겠다는 사실이 밝혀져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생명 윤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임종 시기의 치료 결정'을 의료비 재정 절감을 이루려는 조건과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에 비윤리적 처사라는 비판이 바로 제기됐다. 이에 '만성질환 예방과 건강한 노후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으로 급히 수정되며 이 파장은 일단락 됐다.

어떤 행위가 의미가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더구나 그것이 삶과 죽음의 문제일 경우 더 어렵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 논의와 의료계(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병원협회)의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의학적 지침'에서도 나타났듯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은 치료의 대상, 종류, 절차 및 치료 중단 인정 여부, 요건, 절차 등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무의미한' 대신에 '무익한'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다. 과연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해당하는 것일까?  

전쟁 중 북에서 혼자 내려온 김 할머니에게는 남편과 딸 셋이 전부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셋째 딸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집을 나가 먼 도시에서 다른 살림을 차렸다고 했다. 큰 배신감과 화를 뒤로 하고 할머니는 수산 시장에서 억척같이 일하면서 20년간 혼자서 딸 셋을 키웠다. 혹시나 딸들 앞날에 누가 될까 남편과의 호적정리도 하지 않았다.

딸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딴 살림에 실패한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용서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첫째 딸 결혼을 앞두고 남편의 존재는 없는 것보다 나았고, 남편은 조용하고 성실하게 집안일과 시장 일을 뒷바라지 해주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남편이 다시 돌아온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을 마음에서부터 받아들이고 용서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중이 줄고 피곤해 받은 검사에서 암이 불현듯 발견돼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남편은 참회하듯 한결같이 옆에서 병수발을 들어줬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이제 항암화학요법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 말기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병의 진행 상황 상 적어도 몇 개월은 더 남아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 정도 기간이면 삶을 마무리하기에는 모자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저녁식사를 하는 중에 갑자기 사래에 걸려 숨쉬기가 어려워지며 의식을 잃었다. 음식물이 폐로 넘어가는 바람에 폐렴이 심해져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된 것이다.

비록 지금 할머니의 병세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할머니에게는 말없이 병상을 지켜주던 남편에게 아직까지 하지 못했던,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말이 남아있었다. 두 손을 꼭 맞잡고서 남편에게 이 말은 전해야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중있을 것 같았다.

"괜찮소. 나 이제 다 괜찮소. 마음에 진 짐, 다 내려놓고 사시오. 그동안 옆에서 지켜주어 고맙소. 정말 고마웠소. 우리 나중에 하늘 나라에서 웃으며 만납시다."

임종 시기의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며 무익한 연명치료처럼 보인다고 할 지라도 필자는 의사로서 김 할머니의 중환자실 치료를 끝까지 고집할 것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김 할머니와 두 손 꼭 맞잡은 할아버지,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딸들의 모습을 꼭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 가족의 일생을 관통하는 그 순간에 담겨 있는 '의미'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2년 12월 2일,
오승민(가톨릭중앙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사무국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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