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6년 제39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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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종 [fpyc] 쪽지 캡슐

2005-12-19 ㅣ No.177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제39차 세계 평화의 날(2006년 정월 1일) 담화


진리 안의 평화


1. 전통적으로 새해를 시작하며 발표하는 이 세계 평화의 날 담화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 특히 폭력과 무력 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드리며 평안을 빕니다. 새해에는 더욱 평온한 세상, 점점 더 많은 개인과 공동체들이 정의와 평화의 길에 투신하는 세상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2. 우선, 평화의 탁월한 일꾼이셨던 저의 선임자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은 참행복의 정신에 따라 재임 기간에 일어난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에서 끊임없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적 개입을 식별하셨습니다. 지칠 줄 모르던 복음 선포자였던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을 전 세계의 화합과 평화를 위한 노력의 출발점으로 삼도록 끊임없이 당부하셨습니다. 저의 첫 번째 평화의 날 담화인 이 글을 통하여, 저는 제 선임자들의 고결한 가르침의 길을 따르고, 평화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봉사하는 교황청의 확고한 결의를 다시 한 번 밝히고자 합니다. 베드로좌에 선출된 날 제가 선택한 이름인 베네딕토는 바로 평화에 대한 저의 개인적 다짐의 표시입니다. 이 이름을 선택하며 저는 전 유럽에 평화의 문화를 심어준 베네딕토 성인과 제1차 세계대전을 ‘무익한 대학살’로 단죄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숭고한 요구를 재인식시키고자 노력한 교황 베네딕토 15세를 함께 기억하고자 하였습니다.

3. 올해의 성찰 주제인 “진리 안의 평화”는, 언제 어디서든 진리의 빛으로 깨달음을 얻게 될 때 인간은 자연히 평화의 길을 걷게 된다는 확신을 나타냅니다. 사십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폐막하며 발표한,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은 인류가 “온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참으로 더욱 인간다운 세계를 이룩하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사람이 새로운 마음으로 평화의 진리를 향하여 돌아서지 않고서는 그 일을 성취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평화의 진리’라는 표현은 실제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하려면, 우리는 평화를 단순히 무력 전쟁의 부재에 국한시켜서는 안 되며 “인간 사회 안에 그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심어 놓으신 질서의 열매”, “언제나 더욱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류가 실현하여야 할” 질서의 열매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계획하시고 바라신 질서의 열매인 평화는 본질적으로 불굴의 진리를 담고 있으며 “우리 안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염원과 바람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4. 이렇게 볼 때, 평화는 천상 선물이며 하느님의 은총으로서, 모든 차원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 행사를 요구합니다. 곧 진리와 정의와 자유와 사랑 안에서 인류 역사가 하느님의 질서를 따르도록 할 책임입니다. 현세 사물의 초월적 질서에 충실하지 못하고 인간 마음에 새겨진 보편적 도덕률인 대화의 ‘원리’를 존중하지 않을 때에, 인간의 전인적 발전과 기본권의 수호가 방해받거나 거부될 때, 무수한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불의와 불평등을 강요받을 때, 어떻게 평화의 선이 실현되리라 희망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그러한 선의 진리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평화를 ‘평화로운 질서’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궁극적으로 인간에 관한 진리를 온전히 존중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5.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리고 무엇이 평화의 실현을 방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의 맨 첫 권인 창세기는 요한 복음사가가 “거짓의 아비”(요한 8,44)라고 말한 두 갈래의 혀를 지닌 동물이 역사의 시초에 한 거짓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거짓은 또한 성경의 마지막 권인 묵시록의 마지막 장에서 말하는 죄악 가운데 하나로서, 거짓을 일삼는 자들은 천상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거짓을 좋아하여 일삼는 자들은 밖에 남아 있어야 한다”(묵시 22,15). 거짓으로 비롯된 죄의 비극과 그것의 잘못된 결과로 개인과 민족들의 삶은 황폐해졌고 또 계속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릇된 이념적 정치적 체계로 진리가 고의적으로 왜곡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착취되고 살해됨으로써 가정과 공동체 전체가 파괴된 지난 세기의 사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우리가 어떻게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위협적인 죽음의 시나리오를 날조하는 우리 시대의 거짓들 앞에서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진정한 평화 추구는 진실과 거짓의 문제가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지구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6. 평화는 특정한 문화적 정체성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억누를 수 없는 염원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이 위대한 선에 이바지할 의무를 느껴야 하며, 어떠한 형태의 거짓도 인간 관계를 해치지 못하게 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한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차이점만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일은 이러한 근본 진리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초월적인 공동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문화에 속한 이들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가운데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점들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단순한 진리들이 평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순수한 의향으로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이러한 진리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각으로 평화를 이해하게 됩니다. 곧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가 다스리는 사회, 각 개인을 위한 선익이 최대한 실현되는 사회에서 개별 시민이 사이좋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평화의 진리는 모든 이가 풍요롭고 진실한 관계를 맺도록 요구하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추구하고 이 길로 나아가며 다른 이들과 투명한 관계를 맺고 약속에 충실할 것을 촉구합니다. 특히, 이 세상에 교묘하게 현존하는 악에 대항해 스승이신 하느님께서 가져다 주시는 해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1베드 2,22; 이사 53,9 참조)는 것을 알고 신뢰로써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스스로 진리라 정의하셨고 묵시록 저자의 환시 속에 나타나시어 “거짓을 좋아하여 일삼는 자들”(묵시 22,15)에 대한 철저한 반감을 표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인간 역사의 완전한 진리를 드러내 보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은총의 힘으로 진리 “안에” 머무르고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전적으로 진실하시고 충실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진리이십니다.

7. 평화의 진리는 전쟁의 비극 한가운데서도 은혜로운 진리의 빛을 발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사목 헌장’에서 “불행히도 전쟁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적대 편의 모든 행동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민간인들에 대한 전쟁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국제 공동체는 국제인도주의법을 만들었습니다. 교황청은 평화의 진리가 전쟁 상황에서도 존재한다는 확신으로 여러 다양한 상황과 배경에서 인도주의법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으며, 그 법을 존중하고 즉각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국제인도주의법은 평화의 진리의 본질적 요구를 가장 훌륭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모든 민족은 이 법을 존중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인도주의법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 법이 올바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오늘날의 무력 분쟁과 갈수록 새로워지고 첨단화되는 무기 사용의 가변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규범으로 이 법을 쇄신해 나가야 합니다.

8. 국제인도주의법의 적용을 위하여 일하시는 모든 분들과 국제기구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여건을 조성하는 어려운 임무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군인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말씀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조국 봉사에 몸바쳐 군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지키는 역군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 임무를 올바로 수행할 때에 그들은 참으로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군종 교구들은 이러한 힘겨운 일선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군종 교구장뿐만 아니라 군종 신부들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평화의 진리의 충실한 전달자가 되기를 권고합니다.

9. 오늘날 테러리즘으로 평화의 진리가 계속해서 심각하게 훼손되고 또한 거부되고 있습니다. 테러의 위협과 공격으로 전 세계가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의 선임자이신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테러범들의 엄중한 책임을 자주 지적하셨으며, 동시에 그들의 무분별하고 치명적인 전략을 단죄하셨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전략들은 흔히 비극과 혼돈을 야기하는 허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결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테러 행위로 살인을 하는 사람들은 사실 인간성과 인생과 미래에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모든 것이 증오와 파괴의 대상입니다.” 허무주의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흔히 근본주의로 불리는 종교 광신주의도 테러범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이를 조장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광신적인 근본주의가 나타내는 극도의 위험성을 깨달으시고는 이를 신랄하게 비난하시며, 진리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다른 이들이 자유롭게 받아들이도록 제시하기보다는 이를 폭력으로 강요하는 행위에 대하여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여기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으로 강요하려는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에게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신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10. 자세히 살펴보면, 허무주의와 광신적인 근본주의는 똑같이 진리와 비뚤어진 관계에 있습니다. 허무주의자들은 진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근본주의자들은 진리를 힘으로 강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허무주의와 근본주의는 그 기원이 다르고 그 문화적 배경도 다르지만 인간과 인간의 생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자체를 경시하는 위험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공통됩니다. 실제로 이러한 공통된 비극적 산물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진리를 왜곡한 결과입니다. 허무주의가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적 현존을 부정한다면, 광신적 근본주의는 하느님을 자체적으로 만든 우상으로 대치시킴으로써 그분의 자애롭고 자비로운 모습을 왜곡시켜 버립니다. 오늘날 테러리즘 현상의 원인들을 분석할 때에는, 정치적 사회적 원인들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뿌리 깊은 문화적 종교적 사상적 동기들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11. 인류가 우리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을 생각할 때에, 전 세계 곳곳의 모든 가톨릭 신자는 무엇보다도 ‘평화의 복음’을 더욱더 온전히 선포하고 실현하며, 하느님의 온전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평화의 진리를 강화하는 첫째가는 절대적인 조건임을 보여주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하시는 사랑이시며, 당신 자녀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고 그들의 다양한 재능을 인류 가족의 공동선을 위하여 책임 있게 사용하기를 바라시는 자애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의미를 주는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이십니다. 하느님, 오로지 하느님만이 선과 평화를 위한 모든 활동을 성취시켜 주십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하느님을 지워버리려고 하느님께 저항하면 결국 인류는 두려움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결국은 헛된 결정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역사는 충분히 입증해 왔습니다. 이를 깨달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 그리고 선의의 모든 사람과 폭넓게 협력함으로써 평화의 일꾼으로 불가분의 진리이며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확신에 찬 증언을 하여야 합니다.

12. 현대 세계의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는 평화를 구축하는 일에서 몇 가지 희망적인 표징들을 볼 수 있음을 기쁘게 지적할 수 있습니다. 무력 분쟁의 수적 감소를 그 실례로 들 수 있습니다. 평화의 길을 따라 나아가면서, 우리는 물론 아직은 불안정한 단계이지만 그럼에도 특히 예수님의 땅인 팔레스타인의 고통 받는 사람들과 아프리카와 아시아 일부 지역의 주민들에게 더욱 안정된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몇 가지 진전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평화와 화해를 위한 계속되는 노력이 긍정적인 열매를 맺기를 오랫동안 고대해 왔습니다. 그러한 희망의 표징들은 특히 전쟁 방지와 진행 중인 전쟁의 평화적 해결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제 공동체와 그 기구들의 끊임없는 일관된 협력과 활동을 통하여 확인되고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13.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순진한 낙관주의로 귀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 아직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족간의 유혈 분쟁과 전쟁의 참화가 계속되고 있어서 눈물과 죽음의 씨를 뿌리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잿더미 속의 불씨처럼 잠재되어 있던 갈등에 새로 불이 붙어 크게 폭발할 위험을 안고 있는 상황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평화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대신 국민들에게 다른 민족들을 향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 권위들은 무거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특히 위험 지역들에서 힘겨운 협상으로 겨우 얻은 불안한 균형을 위협하고 인류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고 어둡게 만들 따름입니다. 또한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핵무기에 의존하는 정부들은 어떻습니까? 무수한 선의의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그러한 시각은 해로울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핵전쟁에서 승자란 없고, 희생자만 있을 뿐입니다. 평화의 진리는 공공연하게 또는 비밀리에 핵무기를 보유한 정부들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가지려고 계획하는 정부들을 포함한 모든 이가 분명하고 확고한 결정으로 진로를 선회하여 합의를 통한 점진적인 핵 철폐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하여 절약된 자원은 자국민과 그 가운데에도 가난한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발전 계획에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14. 이와 관련하여, 유감스럽게도 군비가 계속 증가하고 무기 매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군비 축소를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 공동체가 이룩해 온 정치적 법률적 과정은 일반적 무관심 속에 난항에 빠져 있습니다. 무기 생산과 신무기 개발을 위한 연구에만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평화의 미래가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국제 공동체가 지혜롭고 용기 있게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합심하여 군비 축소의 과정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국제 공동체의 여러 기구들은 평화의 선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통하여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에 필요한 권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5. 군비 축소에 대한 단호한 결정의 첫 수혜자는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과거에 수없이 약속받은 발전에 대한 권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리는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연합의 최근 정기 총회에서도 장엄하게 재천명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국제연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면서, 광범위한 세계화 현상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세계의 변화된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국제 연합의 제도와 운영의 쇄신을 바라는 바입니다. 국제연합기구는 세상에 정의와 연대와 평화의 가치들을 증진하는 더욱 효율적인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 창설자에게서 받은 사명에 충실하여 어디서나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투신합니다. 교회는 평화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이에게 필수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참되고 영원한 평화는 반드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진리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되새겨 줍니다. 이 진리만이 정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사랑과 연대를 받아들이게 하며 모든 사람이 참으로 자유롭고 일치된 인류 가족을 위하여 일하도록 격려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진리 위에서만 참 평화의 기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16. 이 담화를 마치며, 저는 특별히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깨어있고 늘 준비된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다시 한 번 권유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날마다 복음에 귀 기울이고 사랑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진리 위에 평화를 구축하는 법을 배웁시다. 모든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진리를 더욱 온전히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자각시키기 위한 교육과 증언 활동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저는 더욱 기도에 열중하기를 당부합니다. 평화는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간청하여야 하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평화의 진리에 대한 선포와 증언은 분명히 더욱 설득력을 지니게 되고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신뢰와 효성으로 평화의 임금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바라봅시다. 이 새해를 시작하며 성모님께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요한 8,32 참조) 진리의 빛을 따라 어디에서든 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청합시다. 성모님의 전구로 인류가 이 근본적인 선인 평화를 더욱 존중하고 이 세상에 평화를 더욱 견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함으로써 더욱 평화롭고 안정된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05년 십이월 8일 목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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