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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일본 고토 열도를 가다 (하) 슬픈 역사의 단면 가쿠레 키리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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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1-14 ㅣ No.857

슬픈 역사의 단면 '가쿠레 키리시탄' - 일본 고토 열도를 가다 (하)


신앙유산 전승에 자부심... 교회로 돌아올 생각 안해

 

 

가미코토 기리후루사토 마을에 있는 가쿠레 키리시탄 공동체에서 쵸우가다 역할을 하고 있는 사카히 요시히로씨가 취재진에게 그들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 현재 고토 지역에는 3개의 공동체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1614년 일본에 금교령이 내려진 후 끊임없는 박해로 많은 키리시탄(포르투칼어 크리스타오 christao에서 유래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 순교 혹은 배교를 하면서 고토열도 키리시탄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18세기 후반 나가사키시의 개척정책으로 소토메 지역 주민 3000여 명이 고토열도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박해를 피해 배를 탄 가난한 키리시탄이었다.

 

1873년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후 대부분의 가쿠레 키리시탄(잠복 그리스도인)은 100여 년에 걸쳐 교회로 돌아왔지만 고토열도에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전통을 지켜가며 세상에 나오길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남아있다.

 

가미고토(上五島)에서 운 좋게 가쿠레 키리시탄 공동체의 '쵸오가다'(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자)를 만날 수 있었다.

 

키리시탄이 박해를 피해 숨어있었던 동굴을 순례할 예정이었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배가 접근할 수 없어 대신 기리후루사토 마을 가쿠레 키리시탄의 쵸오가다 사카이 요시히로(54)씨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기리후루사토 마을 가쿠레 키리시탄 공동체는 키리시탄에 대한 핍박이 극심하던 1730년 경 형성됐다. 이 마을에서는 11가구 40여 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혈족이다. 사카이 요시히로씨는 9대 쵸오가다이다.

 

쵸오가다는 한국 천주교회 초기, 가성직제도를 통해 고해ㆍ성체성사 등을 거행하며 신부 역할을 했던 평신도와 유사하다. 쵸오가다는 가쿠레 키리시탄들의 신앙생활을 이끌며 세례를 주기도 한다.

 

또 선대 쵸오가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모 마리아상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 사카이씨에게 성모 마리아상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묻자 "절대 보여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성모 마리아상은 외부인에게 어떤 경우에도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묵주와 십자고상.

 

 

아직도 세상으로 나오길 거부해

 

쵸오가다는 주일이 되면 전해 내려온 전례방식으로 자신의 방에서 기도를 바친다. 쵸오가다가 기도하는 모습은 자식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다. 공동체에 속해있는 키리시탄들이 다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는 때는 부활절, 성탄절, 풍년을 기원하는 시치닌마 축제 등 1년에 단 세 번뿐이다.

 

이때 가쿠레 키리시탄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십자가와 묵주를 향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기도를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외운다. 이들에게 묵주는 성모 마리아상과 같이 지켜야 하는 유물 중 하나였다. 묵주기도를 하는 법은 모르는 듯 했다.

 

사카이씨가 직접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동행한 일본인 통역이 귀기울여 들었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기도라기보다는 주술사들이 외우는 주문과 흡사하게 들렸다.

 

쵸오가다는 사순시기에 기도를 중단한다. 사카이씨는 "사순시기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슬픈 기간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사카이씨에게 가쿠레 키리시탄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신앙의 자유를 찾았는데 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교회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통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라며 "교회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카이씨는 조상들의 가르침은 반드시 따라야 하고 앞으로도 지켜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토열도 신부들이 교회로 돌아오라고 수차례 권유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고 했다.

 

- 가미코토 아오사가우라본당 주일학교 아이들이 출석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신앙은 여전히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기는 가쿠레 키리시탄들과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가쿠레 키리스탄들은 기나긴 박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준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가미코토 아오사가우라본당 오야마 시게시 신부는 "가쿠레 키리시탄은 타종교 신자들보다 전교하기가 더 힘들다"며 "그들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 전교대상"이라고 밝혔다. 오야마 신부는 "그들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세례를 줄 때 하는 기도도 보편교회와 다르다"며 "천주교와 가쿠레 키리시탄 공동체는 비슷한 부분이 조금도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진정 그리스도인인가?

 

사카이씨는 공동체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을 예감하고 있다. 그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교회로 돌아간다고 하면 막지 않는다"면서 "언젠가는 가쿠레 키리시탄이 모두 없어지겠지만 마지막까지 전통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쵸오가다가 교회 복귀를 결정하면 공동체 전체가 그 결정에 따르게 된다. 쵸오가다가 없으면 공동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쵸오가다는 자식에게 세습되며 남자만이 할 수 있다. 아들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이어받게 된다. 사카이씨는 곧 아들에게 기도문과 성물 등을 물려주고 기도하는 방법을 전수할 것이라고 했다.

 

- 아오사가우라본당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매주일 오후 4시에 오야마 시게시 주임신부와 함께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친다.

 

 

사카이씨는 "신앙을 지키는 것은 우리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다"며 "늘 하느님이 함께 해주셨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쿠레 키리시탄에게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우르시는 분'이라는 영원히 변치 않을 굳건한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고토열도 가쿠레 키리시탄들은 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켰다. 하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은 천주교 신자라고 생각하지만 천주교 신자가 아닌, 기나긴 박해가 만들어 낸 일본교회의 슬픈 단면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아오사가우라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일학교 수업이 막 끝났는지 초등학생 대여섯 명이 성당 안팎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한참을 깔깔거리며 뛰어놀다가 의자에 앉아 오야마 신부와 함께 큰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조금 전 허름하고 좁은 방에서 낡은 성물을 앞에 두고 가쿠레 기리시탄의 삶을 설명하던 쵸오가다 사카이씨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14일, 일본 고토=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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