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4년 서울대교구장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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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45

2004년 부활 메시지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어느 시인이 "해마다 봄이 되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고 노래한 것처럼 싱그러운 봄과 함께 주님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약속하신 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활을 믿는 것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란 한마디로 부활을 믿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가치관은 쓸모 없어져 버리고 인간의 삶은 결국 멸망과 죽음으로 끝나게 됩니다(1고린 15,14-19 참조). 그러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부활처럼 기쁘고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만의 사건이 아니라, 구원을 원하는 모든 인간의 부활에 대한 희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부활은 우리 신앙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며 보증이기 때문입니다(1고린 15,20-22).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반드시 부활한다는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처지에서도 실망하지 않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인간의 역사와 삶의 종말은 결코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 줍니다. 그 생명은 주님께서 목숨을 바쳐 찾아 주신 구원과 희생의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마르 16,11)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죽음 없이 부활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 십자가의 고통은 허구가 아니며 처참하고 혹독한 실제적인 고통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은 다름 아닌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에게 죄로 잃어버린 생명을, 어둠 속에서 빛을 다시 가져다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죄 때문에 멸망할 인간과 세상은 구원의 생명과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와 세계 정세는 생명과 빛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의 미움과 증오가 폭력과 죽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수난의 고통을 겪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죽이는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진정한 용서만이 죄와 죽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움과 증오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생명과 빛이 머물 수 없습니다.

 

얼마 전,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로 인해 국론 분열이 매우 우려되고 있습니다. 얼어붙은 경제 상황은 더 나빠져 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국민이 느끼고 있는 경제 불황에 대한 불안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도 정치는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의무는 뒷전에 둔 채 상호비방에만 열을 올려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화해와 일치를 통한 공존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를 우리 손으로 뽑게 되는 국회의원 총선거는 어느 때보다도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4·15 총선에서 개인의 감정보다는 냉정한 이성적인 판단으로 우리나라의 미래와 행복에 바람직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여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교구의 모든 신자는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이번 총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솔선수범해서 세상을 생명과 빛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나 거부를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행위는 신자 공동체의 분열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총선이 국민의 화합과 일치를 이루고 참다운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는 만연해 있는 인간 생명의 경시 풍조입니다. 살기가 어렵다고 쉽게 자살하거나 다른 이의 생명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쉽게 해치는 행동은 너무 개탄스러운 현상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세계 최초로 사람의 체세포와 난자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세상이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연구에 뒤따르는 윤리적 문제나 부작용, 위험성도 직시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거슬려서는 안 됩니다.

 

그밖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회뿐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도 수없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점점 심각해져 가는 집단이기주의, 실업 문제, 가정 문제, 심화되는 빈익빈부익부 문제 등 사회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신앙인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히 믿기만 하는 것은 부활 신앙의 진정한 의미가 아닙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 우리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가진 이들이 삶의 현장과 일상생활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거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십자가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부활을 사는 삶이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생명은 모든 사람의 빛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여 여러분 가정에 주님 부활의 생명과 빛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04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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