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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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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간추린 사회교리: 세계화, 우리에게 기회인가, 위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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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7-22 ㅣ No.960

[간추린 사회교리] 세계화, 우리에게 기회인가, 위험인가?


세계화된 세상이다. 외국산 차를 타고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원두커피를 마신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검색한다.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이 유럽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다문화 가정은 이제 낯설지 않다. 전 지구적 차원의 인권 · 환경 문제를 공동으로 고민하고, 각국의 정치 ·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상호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세계화는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있고,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 되는 세상! 국가, 지역, 종교, 문화를 초월하여 하나 되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세계화의 빛 속에서 어둠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배와 착취의 도구인가? 연대의 도구인가?

세계화의 과정에서 단연 돋보이는 영역은 경제영역이다. 경제영역에서 세계화는 재화와 자본의 이동을 방해하는 장벽을 제거하고,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생산수단을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투자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곳에 투자한다.

현대차를 미국에서 생산하고, 유럽의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에 제한되지 않고, 세계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세계화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인가?

“경제발전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경쟁’이며, 생산수단의 사유권은 절대적인 권리로서 사회적인 한계도 없다”(「민족들의 발전」, 26항).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뜨겁다. 세계화 이전에는 자국 내의 사람들과 경쟁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전 세계 모든 이와 경쟁해야 한다. 고용주들은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고 숙련되고 값싼 노동력과 조세를 감면해 주는 국가에 투자할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고용의 질적 하락과 국가의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사회적 안전망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빈부의 양극화는 극대화될 것이다.

경제영역의 세계화 과정은 자본시장의 개방에서 볼 수 있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거대 금융자본은 새로운 위협의 요인이 되고 있다. 단기 투기자본들이 수익을 내고 떠난 뒤,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많은 나라가 IMF사태를 겪은 바 있다. 우리 또한 IMF사태를 벗어나려고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었나!

얼마 전에는 미국 경제의 불평등과 대형 금융회사들의 부패에 항의하는 반(反) 월스트리트 시위가 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방값 걱정, 끼니 걱정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구호였다. 그들은 금융자본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잔치에 반발하여, 빈부 격차의 해소, 고용 확충,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인권과 민족들의 권리를 실제적으로 존중하며 …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보장하는 틀 안에서 … 세계화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간추린 사회 교리」, 366항)는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우리의 양심을 깨워야 할 때이다.


한 · 미 FTA의 불편한 진실

2011년 11월 22일,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가 최루탄 연기 속에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되었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먹고살려면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 물건을 외국에 팔려면 우리도 사주는 것이 공정한 무역이라는 것이다. 상호 윈윈(win-win)하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사회적 약자들은 원하지 않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거대한 골리앗과 상대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한미 FTA는 소수의 대기업과 재벌들의 이익을 창출해 줄 뿐, 일반 국민들의 삶을 향상시켜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에도 여전히 고물가는 서민들의 시장바구니를 무겁게 하고, 동네 빵집과 슈퍼까지 장악한 대기업의 횡포는 서민들의 삶을 힘겹게 만든다. 농민들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농산물보다 값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고, 우리의 농산물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식량주권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만일 홍수나 기근 등의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면, 식량 자급률이 27%에 불과한 우리나라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의 먹거리를 우리가 지켜내지 못한다면 누가 지키겠는가? 지금이라도 한미 FTA의 독소조항인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의 재논의와 노동자, 농민, 영세 사업자와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필요하다.


기회와 위험

세계화의 두 얼굴에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세계화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세계화는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들 손에 달려있다.”(교황청 사회학술원연설, 2001년 4월 27일)고 말씀하셨다.

사회적 경제적 진보에서 소외되고 가장자리에 밀려난 이들을 위하여 부를 재분배하는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 다수의 고통을 담보로 소수의 탐욕을 채우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곧 공동선의 추구,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간추린 사회교리」, 363항)를 통해 인류의 전체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무역관계의 균형, 재화의 보편적 목적,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실현하는 정책으로 드러나야 한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경제

교회는 인간활동의 한 차원으로 경제활동을 바라보지만, 사회의 유일한 가치로 절대시하는 것을 거부한다. 인간 삶에 경제생활은 매우 필요하지만, 인간 삶을 유물론적인 차원으로 격하시킬 수 없다. 경제활동의 도덕적 · 영적 성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계획은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차별을 제거하며, 인간을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 누구나 자기의 물질적 복지를 도모하고 윤리적 향상을 추구하며 영신 기능을 계발할 수 있게 한다”(「민족들의 발전」, 34항).

경제는 인간의 활동임과 동시에 인간에게 봉사할 때 그 의의를 지닌다. 경제가 소수의 탐욕을 부추기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 탐욕을 경계하라 말씀하신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으며(루카 16,13 참조), 가난한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루카 6,20 참조)이라고 선언하신다. 자신의 탐욕으로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시키는 것은 간접적 살인이며(「간추린 사회교리」, 341항 참조), 가난한 이들에 대한 나눔이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된다(마태 25,34-40 참조).

경제의 세계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빈부격차의 심화, 실업의 증대, 고용 불안정, 가계 부채의 증가! 우리를 어둡게 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 세계화의 과정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연대를 통한 세계화, 소외 없는 세계화를 이룰 것인가? 빈부의 양극화로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세계화를 이끄는 우리 손에 달려있다.

* 유주성 블라시오 - 수원교구 신부. 교황청 라테라노대학교 성알폰소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면서 영성지도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7월호, 유주성 블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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