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1년 서울대교구장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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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42

2001년 부활 대축일 메시지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 118,24)"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에 우리는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오늘 온 인류의 구세주로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습니다. 제삼천년기의 첫해이며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의 뜻 깊은 해에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교형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축복이 충만하여 하나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이 꽃필 수 있기를 간청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구원의 완성입니다. 부활 대축일은 교회의 모든 축일 가운데서 가장 큰 축일이며 가장 오래된 축일입니다. 부활시기는 오늘부터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 계속되며, 이 시기에 우리는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로써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온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로 죄에서 비롯된 인간의 모든 고통과 죽음의 세력이 꺾이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들도 장차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선하신 하느님, 용서하고 축복하시는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며, 하느님께로 시선을 돌려 그분의 선하심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사람들에게 말씀과 행적으로 알려주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사도 2,23-24).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모든 것이 끝났다면 그분을 믿고 따르는 신앙 공동체인 교회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써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분’(히브 13,8)이 되셨습니다.

 

 

2. 죽음보다 강한 주님의 사랑

 

성서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과, 부활의 증인인 사도들의 활약상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예수는 집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 4,11-12). 예수께서는 더이상 죽음의 세력에 붙잡혀 있지 않고, 오늘 부활하심으로써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으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되셨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그 크신 사랑으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에페 2,4-5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말씀과 행적이 참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보증해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진실은 거짓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아름다운 나라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음 속에 부활신앙을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사회에는 죄악과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풍조가 널리 퍼진 가운데 사람들은 정신적 · 도덕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으나 아직도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전으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고 있으며, 고통과 반목이 삶의 현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연해서 개인적 차원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불의가 집단적, 국가적,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자행되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이후 더욱 심화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하여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협력의 화해 분위기도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큰 시련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겨레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특히 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이 솔선 수범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언행이 일치된 모습으로 먼저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국민들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서로를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통일의 길로 들어서려면 지속적인 만남과 사랑의 나눔을 더욱 확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힘을 합쳐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과 생명이 충만한 나라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4.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심을 고백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심이 인류 안에 새로운 빛으로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사도 4,32-36 참조). 예수께서 세상의 온갖 죄악과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살 때 비로소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시기를 맞아 내적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골로 3,1-2).

 

다시 한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사랑, 평화와 기쁨이 교형 자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신 주님의 손길이 두루 미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북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하나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기를 간청합니다.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 우리나라의 103위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드립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시편 118,24).

 

2001년 4월 15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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