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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텔레비전 뉴스,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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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312

텔레비전 뉴스,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

 

 

매일 저녁 9시만 되면 국민의 대부분이 텔레비전 뉴스를 지켜본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땡전 뉴스’(9시 시보가 ‘땡’ 하고 울리면 아나운서의 멘트가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의 오명이 있었음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오늘날 텔레비전 뉴스를 주요 정보원으로 여기고 있다.

 

최근 매스미디어의 세계화는 텔레비전 뉴스를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시켜 세계 어느 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도 즉각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24시간 뉴스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망으로 전 세계 100개 이상의 방송국으로 뉴스를 제공하는, 전 지구적 뉴스 네트워크인 CNN은 걸프전,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생중계해서 안방에 앉아서도 생생하게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또는 노동자, 농민들의 파업이나 심지어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사항조차도 즉각적으로 지구촌에 알려지게 되었다. 필자가 1990년대 미국 유학 당시 미국에 신속하게 보도된 건물과 다리의 붕괴사건에 대해 미국 친구들이 의문을 던졌을 때 매우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만큼 세계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 모든 분야에서 상호의존성이 커감에 따라 뉴스에 대한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텔레비전 뉴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가고 있지만 뉴스의 객관성, 공정성, 공익성과 같은 고유 특성이 왜곡되어 보도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뉴스의 오락화나 연성화는 이러한 왜곡 보도의 주범이라 할 수 있다. 뉴스가 왜곡될 때 시청자나 국민의 현실 판단, 가치관, 그리고 삶의 방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매스커뮤니케이션 윤리」, 21항).

 

 

텔레비전 뉴스는 객관적인가?

 

뉴스의 특성 중에 가장 중요한 점은 객관적인 보도일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는 사건을 현장감이 생생한 화면으로 진실에 입각해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객관성을 지닌다. 이런 면에서 텔레비전 뉴스는 ‘현실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부른다. 드라마나 코미디 등은 실제 세상을 다루지 않고 허구의 세상 또는 만들어진 세상을 다루는 데 비해 뉴스는 실제 세상, 있는 그대로의 세상, 비가공적 세상을 다룬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반영하고 보여주는 창이 더러워져 있다든지, 색깔이 들어있다든지, 또는 크기가 얼마이며 어디에 존재하는지에 따라 현실이 크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뉴스라도 방송사에 따라 다르게 보도될 수 있다. 노조파업을 다룰 때 어느 방송사 뉴스는 노동자들이 사업자나 공권력에 몽둥이를 휘두르는 장면을 보여주어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생산한다. 반면에 다른 방송사는 사업자나 공권력에 의해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재현할 수도 있다. 같은 뉴스 내용에 대해 다른 관점은 방송사의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 좌우된다. 이처럼 뉴스는 진실을 보도해야 하면서도 왜곡시키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수용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재구성에 의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 현실을 재구성하는 힘

 

텔레비전 뉴스는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물건처럼 제조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다. 뉴스 제작과정에는 5가지 필터가 내포되어 있다. 5가지 필터는 소유권, 광고, 정보원, 권력집단, 반공주의이다.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의 크기나 소유주에 따라 뉴스 내용 선택이 좌우된다. KBS TV와 MBC TV는 공영방송이며 SBS TV는 민영방송이다. KBS TV는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뉴스 보도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MBC TV는 KBS TV와 같은 공영방송이지만 최근 뉴스의 내용은 진보적 성향을 띠고 있다. SBS TV는 상업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 뉴스의 내용이 소유주나 광고주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 

 

또한 광고주에 따라 뉴스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에 관한 뉴스에서 광고주의 자동차와 같은 차종의 사고에서는 차종에 대한 정보를 삭제하거나 사건보도 자체를 축약하는 경우도 있다. 정보원에 따라 뉴스 내용이 좌우된다. 어떤 정보원을 취재하느냐에 따라, 또는 정보원에 의한 정보가 올바른 것인지 틀린 정보인지에 따라 정확한 뉴스인지 아니면 왜곡된 뉴스인지 하는 차이가 발생한다. 얼마 전에 MBC TV와 케이블방송 뉴스 전문 채널인 YTN 사이에 군납품 비리 공방이 오간 적이 있다. 두 방송사 간의 갈등은 국방부라는 정보원이 제공하는 정보의 진위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라 본다. 

 

뉴스는 사회 내 여러 이익집단의 항의나 의도적인 방송취재 방해로 보도가 위축되는 경우가 있다. 일전에 만두파동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단무지제조협회와 으뜸식품 등 회원사 6개 업체는 방송 3사(KBS, MBC, SBS)가 정상적으로 납품된 자투리 무를 마치 쓰레기인 것처럼 보도했다고 주장하며 정정 또는 반론보도를 해달라는 중재신청을 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방송 뉴스는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좌우된다고 보겠다. 우리 사회에서 레드 콤플렉스는 아직도 깊숙이 잠재되어 있어서 북한에 관련된 뉴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 강하다.

 

 

왜곡되고 있는 텔레비전 뉴스

 

무엇보다도, 텔레비전 뉴스는 먼저 사회적 현실을 선택하여 보도하는 과정에서 특정 사안을 묵살, 은폐하거나 과장, 축소하여 보도한다. 외국의 사례를 본다면, 미국을 옹호하는 전 세계 뉴스 네트워크인 CNN은 이스라엘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의 자살 테러로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 그것을 완벽하게 보도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점령지에서 25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살되었을 때는 단 2분간만 방송하거나, 아예 화면 아래에 짧은 헤드라인으로만 처리한다. 곧 온통 이스라엘 사람들만 당하는 장면만 내보내는 것이다. 

 

둘째, 사안에 따라서는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가령 노동운동이나 진보집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색깔론’ 등을 동원하여 악의적으로 왜곡하기도 한다. 

 

셋째, 정부기관이나 공안관련 단체와 같은 정보원의 자료 등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확인절차도 없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럴 경우 텔레비전 뉴스는 정부기관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넷째, 텔레비전 뉴스는 심층보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텔레비전 뉴스는 사실성과 현장성을 위해 생생하고 즉각적인 영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상만 쫓아다닐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로 인해 사회과정의 총체적 측면과 역사적 맥락은 제거된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이며 사회 비평가인 닐 포스트맨은 텔레비전 뉴스의 ‘자, 다음은’이라는 말로 서로 완전히 별개의 뉴스 아이템들을 엮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뉴스 아이템들이 가질 수도 있는 역사나 세계를 없애주고 일관성 없는 별개의 것으로 만들어주어 ‘무상황의 상황(the context of no context)’이 초래된다. 

 

다섯째, 보도 태도에 이중적인 경우도 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상황변화나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여 보도하기도 한다. 이는 방송사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나 정치적 취약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80년대 같은 시기에 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두 나라에 대한 미국 언론의 선거보도는 매우 이중적이었다. 미국에 우호적인 살바도르의 선거를 민주적으로, 미국에 적대적인 니카라과의 선거를 비민주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반공주의의 기준에서 나온 결과이다.

 

마지막으로, 맥락에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나 구절만을 인용하여 보도하거나 편파적으로 장면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보면, 뉴스의 생산, 유통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서구(미국)의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세계적 동질화 전략을 통해 미국(서구)적 가치를 전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정당화시키고, 전 세계가 테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면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이해와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뉴스 보도 역시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락화되는 텔레비전 뉴스

 

최근 들어 방송뉴스의 오락화 경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각 방송사가 주력하는 메인뉴스의 아이템들이 ‘정보’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청률을 의식해 ‘재미’에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뉴스의 가치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뉴스의 상품화와 연성화는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현장을 객관성과 사실보도로 가장된 채 진실을 왜곡하여 보도하게 한다. 텔레비전 뉴스가 선정적, 폭력적, 그리고 자극적인 화면들을 내보내는 뉴스들로 드라마화되거나, 스캔들 중심으로 구성된다거나, 흑백논리로 단순화되는 뉴스들로 넘쳐난다. 

 

텔레비전 뉴스의 오락화는 공공담론과 오락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허물어진 결과이다. 뉴스에 음악이 삽입되어 드라마틱하게 제작되고 경성뉴스보다는 연성뉴스의 양을 늘리면서 오락화되는 가운데 시청자의 정신은 오락에 오염되어 간다. 닐 포스트맨은 이것을 ‘비정보(disinformation)’라고 일컫고 있다. 비정보는 잘못된 정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보다는 잘못 인도하고 있는 정보, 그래서 뭔가 알고 있는 듯 착각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게 하는 정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유용한 정보보다는 다만 오락을 제공받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멋진 신세계의 허구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내는 텔레비전 뉴스에 매몰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헉슬리가 말한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스스로 뉴스의 가치를 자신의 삶의 방식을 통해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는 사건 그대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지향을 가지고 구성된다. 곧 그 지향과 그에 따른 현실재현은 권력과 자본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좌우된다. 다시 말해서 텔레비전 뉴스는 문화정치가 활발하게 수행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과 야당, 노동자와 자본가, 국가권력과 시민단체 등이 현실세계에서 서로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지만 텔레비전 뉴스에서 어떻게 재현되느냐에 따라 현실의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텔레비전 뉴스의 문화정치가 올바로 실천되도록 복음적 가치관을 가지고 관여해야 한다. 잘못된 문화정치의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왜곡된 정보나 비정보를 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텔레비전 뉴스를 비판하고 정화하는 실천도 복음화의 한 가지 방법이다. 이러한 복음화에 기여하려면 뉴스에 대한 식별력을 길러야 한다. 

 

사목자들 대부분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강론이나 교리, 재교육에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그러나 사목자는 그 정보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그 정보에 대한 역사와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뉴스를 통해 얻은 정보는 단편적이고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교회와 사목자, 그리고 모든 신자는 뉴스 정보의 활용, 비판, 정화를 자체 복음화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사목, 2004년 12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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