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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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본당사목] 좋은 본당 일구기: 이제는 통합 사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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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2-23 ㅣ No.314

좋은 본당 일구기 (1) 이제는, 통합 사목이다

 

 

본당은 가톨릭 교회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최소 단위이며, 천주교 신자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라 할 수 있다. 모든 신자들은 주로 본당 안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본당 안에서 입교해서 예비신자 교리교육과 세례를 받고, 미사와 고해성사 등 성사 생활을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신자라면 사도직 단체에 들어가거나 소공동체 모임에 나가서 서로 친교를 나누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한마디로 본당을 떠난 천주교 신앙생활은 있을 수 없고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처럼 중요한 본당이 지금 신자들에게는 어떠한 곳인가? 신자들은 지금의 본당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가? 지금의 본당은 신자들에게 가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인가? 신자들은 지금의 본당 생활을 통해 넘치는 기쁨과 보람을 얻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본당에 관한 이러한 질문에 아직까지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렵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한 위기’를 이야기할 정도로 본당마다 날이 갈수록 냉담 신자가 늘어나고 미사 참석자는 줄어들고 있다. 주일학교에 나오는 어린이·청소년들도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 역시 본당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심지어 본당 안에서 가장 활동적인 40-50대 여성 신자들마저 맞벌이, 여가 생활 등을 이유로 본당으로부터 멀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목위원, 단체장, 구역장, 반장 등을 맡길 신자를 찾기 어렵다는 게 요즘 본당사제들의 공통된 푸념이다. 만일 본당이 신자들에게 크나큰 매력을 주고 있다면 이 같은 일은 일어날 리 없다.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의 본당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지금의 본당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와 교구 시노드들이 지적한 본당의 문제점들

 

20년 전에 열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에서는 본당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교회 운영> 49항 참조).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두 번이나 지났는데도 그때의 지적이 오늘의 본당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게 안타깝다.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부 성직자가 아직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피라미드식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평신도는 이를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기 때문이다.

 

둘째, 본당 지역과 한국 사회 현실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사목 계획을 수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특정인(물론 본당 주임사제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중심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때문에 계획의 객관성과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넷째, 사후 평가를 하고 이를 다음 계획에 반영하지 않고 결과를 무조건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깊이 들여다보면 위 네 가지 모두 본당사제의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리더십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사제가 독단적으로 또는 사목회의 형식적인 동의를 거쳐 자신의 관심과 취향에 따라 본당 지역의 현실과 특성에 상관없이 본당 사목 계획을 세우고 집행하니까 감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또 잘 되든 못 되든 본당신부님이 하신 일이니 평가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 사제들은 ‘요즘이 어느 때인데 사제들이 아직도 권위주의를 내세울 수 있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을지 모른다. 물론 전반적인 상황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고 있다지만, 오늘날 본당의 현실 특히 평신도들이 느끼는 본당 현실은 사제들의 항변과 다른 듯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이어 개최되었던 대구대교구, 인천교구, 서울대교구 시노드 때 나온 신자들의 건의안을 보면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때 지적된 것과 맥락이 같은 문제가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대구대교구 시노드에서는 본당 사목 활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본당 중·장기 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특별히 사제 인사이동으로 말미암아 이 계획이 쓸모 없게 되지 않도록 교구 당국의 확인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인천교구 시노드에서는 본당 사목 계획을 3개년 계획으로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역시 본당 신자들의 참여 속에 본당 사목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사제가 임의로 본당 사목 계획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서울대교구 시노드에서는 본당이 모든 신자들에게서 균형 있는 의견을 수렴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는 구조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같은 제안들이 각 교구 시노드에서 이어지는 걸 보면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에서 지적된 본당 사목 현실이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부터 최근 교구 시노드까지 특별히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본당 사목 계획의 시간적 연속성과 일관성이다. 이는 많은 우려의 목소리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본당 주임사제가 바뀌면 본당 사목의 상당 부분이 바뀌는 게 본당 현실이고 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본당 사목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사제 인사이동과 관계없이 착실하게 추진함으로써 본당 사목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만일 그 사목 계획이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못 된다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면, 무조건 일관성만을 강조하고 유지하는 것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일관성에 앞서 갖추어져야 할 것은 교회의 본질과 사목 현실에 적합한 사목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본당 사목의 통합성(integrality)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본당 현실

 

통합 사목(integral pastoral)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의 본당 현실을 훑어보자. 거의 대부분의 본당이 예외 없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당 사목에 열심이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사제들도 다음과 같은 본당 현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우선 과거에 비해 입교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별다른 선교 노력을 하지 않아도 비신자들이 천주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입교자가 줄을 이었다.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과거에 비해 비신자에게 주는 천주교의 호감과 매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급해진 마음에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선교하자!”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개신교처럼 어깨띠를 두르고 천주교 홍보물을 나누어주며 가두 선교를 하고 집집마다 방문 선교를 하기도 하지만 반짝 성과는 있어도 신자 증가율이 줄고 있는 대세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어렵사리 입교를 시키고 예비신자 교리교육 끝에 세례를 주어도 머지 않아 냉담하는 새 신자들이 적지 않다. 기존 신자들 중에서도 미사 참례자는 점점 줄어들고 냉담 신자는 늘어만 간다. 잃은 양 찾기, 쉬는 교우 모셔오기 등 별 수단을 다 써도 냉담 신자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주소 확인 냉담자는 노력 여하에 따라 다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할 수 있으니, 최소한 주소 불명 냉담 신자만이라도 막아보자는 절박한 심정에서 교적에 친인척 연락처를 적도록 하는 방안도 나왔다. 하지만 연락이 닿는다고 이미 떠난 마음을 다시 붙잡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냉담자만이 아니라 현재 나름대로 열심히 본당에 나오는 신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열심히 나온다는 신자들의 대부분도 겨우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는 정도이다. 미사에 나오더라도 대도시 본당의 경우 너무 신자수가 많다보니 서로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미사가 끝나면 잠시도 머물 틈 없이 뿔뿔이 흩어진다. 본당이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라는 말은 그저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미사여구일 뿐이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10년 전 서울대교구를 시작으로 각 교구에서 소공동체 사목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소공동체 사목이 새로운 교회상을 지향하는 통합 사목 체계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단지 구역 반모임 활성화 프로그램 정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년사목의 일환인 주일학교를 보더라도 아직 부모의 말을 잘 듣는 편이고 입시 교육 부담이 적은 초등부 때는 그런대로 유지되지만, 중등부 고등부로 갈수록 출석 학생이 줄어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교리교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 교사들을 구하기 어려워 부모 교사를 활용하기도 했으나, 이제 부모 교사들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교리교사를 맡더라도 1-2년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해마다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절반의 교사들이 교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랫동안 교리교사를 하도록 하고자 해외 성지순례까지 내거는 교구도 등장할 정도로 장기 근속 교사들에게 푸짐한 보상을 하지만 별 실효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별다른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자원 봉사 교사인 데다가 경력마저 짧으니 당연히 교리교사의 자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리교사의 자질 저하는 교리교육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청소년들이 흥미를 잃고 주일학교에 나오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제 곧 주5일 근무제와 주5일 수업제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러한 사회 변화가 현행 주일학교 체제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모두들 예상하지만 별다른 대응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일학교의 침체는 청년 활동의 침체로 이어져, 청소년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성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은 젊은이들의 자원 봉사에 힘입어 교리교사를 확충했던 주일학교에 다시 어려움을 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토막 난 현행 본당 사목과 통합 사목의 필요성

 

그 동안 우리신학연구소는 인천교구 시노드를 시작으로 본당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인천교구, 마산교구, 전주교구 본당들에서 본당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본당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본당 사목이 토막 나있다는 점이었다. 곧 본당 안에서 넘칠 정도로 많은 사목 프로그램, 행사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것들은 거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뚜렷한 사목 목표나 방향을 정하고 이를 이루어내려고 사목 프로그램이나 각종 행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했던 행사나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비판 의식이나 문제 의식 없이 되풀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 본당에서 해마다 발행하고 있는 사목 계획서 몇 년 치를 비교해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본당 사목 방침과 목표는 교구의 사목 방침과 목표에 준해서 해마다 약간씩 바뀌지만 실제 진행되는 사목 프로그램이나 행사에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눈에 띄는 변화는 오로지 본당 주임사제가 바뀔 때만 일어난다.

 

몇 가지 비유를 들어 통합 사목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보자. 몸이 아프면 우리는 병원을 찾는다. 증상은 병이 아니다. 증상은 단지 우리 몸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 뿐이다. 몸에 열이 나는 이유는 매우 많다. 해열제를 먹는 것은 단지 열을 다스리는 것일 뿐,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가서 그 증상의 원인인 병이 어떤 것인지를 진단한다. 간단한 질병일 경우는 그 병에 대한 약을 조제해 먹으면 된다. 하지만 여러 병이 겹친 중병일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가장 심각하고 근본이 되는 병을 찾아서 그 병을 치료하면서 다른 병도 순서대로 치료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만일 이처럼 종합 진단과 처방을 받지 않고 진료과마다 제각기 진단하고 처방함으로써 다른 병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강도가 센 약을 처방하거나 한다면 더욱 병을 키울 수도 있다. 

 

지금의 본당 사목 현실을 보면 종합 진단 없이 진료과마다 나름대로 진단과 처방을 가지고 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과 같다. 현재 본당이 안고 있는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진지하고 종합적인 분석 없이 그때그때 나타나는 문제들을 단기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러한 대응 방식이 지금까지 본당의 문제들을 키워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비유를 들어보자. 지금 본당들이 좋은 본당으로 가는 길목에 무언가 커다란 장애물이 놓여져 있다. 이것을 치워버려야 좋은 본당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이 장애물은 너무 크기 때문에 몇몇 사람의 생각과 힘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니 이 장애물을 옮기려면 거의 대부분의 본당 신자들이 자신들의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없애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한꺼번에 달라붙어 힘을 써야 한다. 하지만 지금 본당 안에서는 이 장애물의 존재와 정체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이를 어떻게 옮겨서 제거할 것인지를 함께 의논하는 법이 없다. 몇몇이 달라붙어서 힘을 쓰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붙어서 힘을 쓰다가 지쳐 나가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결국 사람만 계속해서 바뀔 뿐 장애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다. 현재 대부분의 본당은 작은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해묵은 꽤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를 분석하고 따로 따로 힘을 쓸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힘을 써야 한다.

 

함께 힘을 쓰더라도 방향이 중요하다. 〈그림 1〉의 장애물은 아무리 함께 힘을 쓴다고 하더라도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림 2〉의 장애물은 화살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목 프로그램을 본당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렬하는 것이 통합 사목적 접근(integral pastoral approach)이다.

 

 

통합 사목적 접근의 예

 

최근 가정사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별 다른 사목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가정의 날을 제정해서 가정 미사를 봉헌하거나 성 가정상을 제정해서 시상하는 정도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대부분의 본당에서는 기존의 본당 사목 프로그램은 가족 구성원을 해체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곧 노인 따로, 성인 남성 따로, 성인 여성 따로, 청년 따로, 청소년 따로 사목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가족의 해체를 예방하고 치유하자는 가정사목을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가족의 해체를 전제한 채 사목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다. 본당에서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사목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대로 쉽게 가족 단위로 참여하는 사목 프로그램이 가능한 성지순례, 여름 캠프, 체육대회 등 친교 행사 등도 대부분의 본당에서 참여 계층을 나누어 따로따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는 아무리 가정과 가정사목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결국 가족 간의 대화가 더욱 활발해지고 그 사랑을 깊어질 수 없다.

 

가정사목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인보성체수녀회가 운영하고 있는 첫영성체 가정 교리가 주목을 받으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대구대교구의 경우는 모든 본당이 2004년 한 해 동안 의무적으로 실시할 것을 교구 방침으로 정하기도 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통합 사목적 접근의 한 예이기 때문이다. 첫영성체 어린이를 위한 교리교육에 부모와 가족이 참여하는 첫영성체 가정 교리는 자녀의 신앙 교육을 주일학교에 위임해 놓고 간식이나 준비해 주는 기존 주일학교와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다(자세한 내용은 가정교리연구소 홈페이지 www.inbocf.or.kr와 『사목』 302호 참조).

 

다음 호부터는 ‘좋은 본당 일구기’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통합 사목의 관점에서 어떻게 각 사목 영역에 적용시킬 것인지를 다루고자 한다.

 

[사목, 2005년 1월호, (사) 우리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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