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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본당사목] 좋은 본당 일구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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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4-13 ㅣ No.319

좋은 본당 일구기란?

 

 

좋은 본당이 어떤 본당인지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본당이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자.

 

어원을 보면, 본당이란 말은 원래 ‘이웃에 살다, 함께 살다’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를 음 그대로 옮긴 라틴어 ‘파로에시아(paroecia)’에서 비롯되었다. 이 말에서 본당을 뜻하는 영어 ‘parish’가 나왔고, 중국 천주교회는 라틴어 ‘파로에시아’를 ‘본당(本堂)’이라는 말로 옮겼다. 초창기 중국 천주교회는 한국 천주교회와 마찬가지로 사제가 극소수였기 때문에, 사제들이 한 곳에만 머물며 사목을 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사목하였다. 이런 탓에 원래 사제가 머물고 있는 곳을 그 밖의 교회 건물들과 구별해서 본당이라고 불렀다. 중국을 통해 천주교가 전해진 한국 천주교회는 중국 천주교가 사용하던 본당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해 오고 있다.

 

다음으로 교회법이 규정하는 본당에 대해 알아보면, 교회법 제515조 1항은 본당 사목구를 “그 사목이 교구장의 권위 아래 고유한 목자로서의 본당 사목구 주임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 내에 고정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공동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158조 1항은 본당 사목구를 “교구 내에 상설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일정한 신자들의 공동체로서 교구장의 권위 아래 본당 사목구 주임신부가 고유한 목자로서 사목하는 지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번역상 약간 표현을 달리할 뿐 본당 사목구는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교구장이 파견한 주임신부가 있어야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념과 정의는 본당 사목 현장의 살아있는 현실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본당 운영은 사제의 마인드에 달려있다

 

우리신학연구소는 지난 인천교구 시노드 과정에서 교구와 본당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교구 수준의 사목 영역별 진단과 11개 시범 본당에 대한 본당 진단을 시행한 바 있다. 객관적인 현실을 파악해서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마산교구 2개 본당(진영, 창녕), 전주교구 1개 본당(오룡동)에 대한 본당 진단도 진행하였다. 본당 진단은 말 그대로 본당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었고, 본당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안타깝게도 인천교구 11개 본당 중에서는 사정상 중간에 그만두어 본당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지 못한 본당이 여럿 있었다. 본당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했어도 이대로 시행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한두 본당에서만 계획을 그대로 시행하였으나, 이 역시 본당 주임신부가 바뀌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마산교구와 전주교구 본당들도 본당 중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본당 주임신부가 바뀌면서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본당 주임신부의 의지가 본당 진단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현재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 본당 사목이 장기적 비전과 계획 없이 표류하고 있는 데는 본당 주임신부들의 사목 마인드와 무관심이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본당 진단을 추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좋은 본당의 기준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가 진찰을 통해 병을 발견하려면 건강한 몸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정상 체온, 정상 혈압, 정상 백혈구 수치 등의 기준이 없다면 병을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본당을 진단하려면 좋은 본당의 기준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회에는 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래서 미국 볼티모어 대교구의 “좋은 본당의 기준들” 등 여러 자료를 참고했으나 한국 천주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좋은 본당이란?

 

좋은 본당이 어떤 본당인지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 좋은 본당의 기준을 제시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좋은 본당의 구체적인 기준은 앞으로 연재될 글들에서 사목 영역별로 제시하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좋은 본당의 기본 요소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한다면, 우선 좋은 본당이란 구성원인 본당 신자들이 만족하는 본당일 것이다. 본당 신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신자들이 떠나도록 만드는 본당이 좋은 본당일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본당은 구성원의 만족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 본당은 교회로서 본질적 사명을 이루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본당이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충실하면서도 본당 신자들이 만족스러워하는 본당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간단한 정리도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무엇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냐, 교회의 여러 사명 중에서 어떤 사명이 더욱 시급하고 중요하냐에 대해 본당 신자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본당 신자들을 만족시킨다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본당에는 나이, 성별, 직업, 학력, 취미 등이 다른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동시에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이른바 웰빙 바람이 불고 있다.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도 헌신보다는 자신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에 맞추어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이른바 웰빙 교회라고 하여 교회 안에 헬스클럽과 문화 공연 시설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니 100%의 만족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최선을 다해서 많은 신자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볼티모어 대교구에서 제시한 좋은 본당의 기준

 

앞서 지적한 대로 한국 천주교회에 맞는 좋은 본당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미국 볼티모어 대교구의 기준은 한국 천주교회 기준 마련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미국 볼티모어 대교구가 제시한 14개 항목의 좋은 본당 기준을 바탕으로 자기 점검표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본당이 되는 데 필요한 14가지 요소는 모두 골고루 갖추어야 할 것들이다. 만일 13가지 요소는 모두 충분한데, 한 가지 요소가 부족하다면 그 한 가지 요소 때문에 좋은 본당이 되지 못할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좋은 본당은 14개의 막대로 만들어진 물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중 1개의 막대가 짧으면, 우리는 그 막대의 높이만큼만 물을 담을 수 있다. 그러니 좋은 본당이 되려면 14가지 요소를 모두 골고루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은 본당 일구기 : 약탈 농법 사목에서 유기 농법 사목으로

 

이번 연재의 전체 제목을 “좋은 본당 만들기”라고 하지 않고 “좋은 본당 일구기”라고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사목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이 아니라 땅에서 작물을 길러내는 농업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똑같은 본당이란 있을 수 없다. 걸어온 역사도 다르고, 현재도 다르다. 모여있는 사람들도 다르고, 자리 잡고 있는 지역사회의 모습도 다르다. 그러니 똑같은 재료, 똑같은 공정을 거쳐 똑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의 마인드를 가지고 좋은 본당을 일굴 수는 없다. 제조업과는 달리 농사는 억지로 되지 않는다. 농작물을 빨리 자라게 하고 싶으면 그에 맞는 조건을 만들어주어야지, 농작물을 잡아당긴다고 해서 농작물이 빨리 자라지는 않는다.

 

사목이 농사에 비유된다고 할 때, 농사를 짓는 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농사법을 크게 관행 농법과 유기 농법으로 구분한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관행 농법은 약탈 농법이다.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한 종류의 농작물을 대규모로 심는다. 시장에 내다 팔려면 그게 좋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작물을 여러 해 동안 계속해서 심다 보니 땅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땅을 놀리고 퇴비를 많이 넣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관행 농법에서는 화학 비료를 주어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땅 힘이 점점 약해지고 거기서 자라는 농작물의 생명력이 점점 약해진다.

 

결국 생명력이 약해진 농작물은 병충해에 약하기 마련이고, 병충해를 막고 치료하려면 농약에 의존한다. 편하게 농사를 지으려고 제초제도 마구 뿌려댄다. 이 같은 관행 농법은 당장은 많은 소출과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지만 해가 갈수록 땅은 점점 황폐해지고 더 많은 비료와 농약이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크고 겉모양은 좋을지언정 농약으로 범벅이 된 농작물을 길러내고 판다. 반면 유기 농법은 관행 농법과 달리 자연의 순리에 그대로 따른다. 그럼으로써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거기서 생명력 있는 농작물을 생산해 낸다. 농작물을 억지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환경을 맞추어줌으로써 농작물이 잘 자라나도록 한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의 본당 사목은 관행 농법, 약탈 농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부분의 본당 주임신부들은 밭을 돌보는 일, 곧 본당의 사목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일보다 소출 곧 사목 성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목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일, 그러니까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고 본당 사목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일 등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이 관심 있는 특정 사목 영역에서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한다. 조건과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어지도록 하기보다는 성과를 거두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러다 보니 본당 주임신부가 바뀌면 본당 사목 전반이 변화를 겪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이처럼 본당 주임신부들이 성과 위주의 사목에 매달리는 데는 최대 5년 정도라는 길지 않은 재임 기간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5년이라는 시간은 사목 조건과 환경을 개선한 뒤 무언가를 시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사제마다 관심 영역이 다르니, 해당 사목을 활성화시키고 그 사제가 인사 이동된 뒤에도 잘 유지하면 본당의 모든 사목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본당 사목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전혀 현실성 없음을 잘 알 것이다. 좋은 본당을 이루려면 관행 농법이 아니라 유기농 방식으로 사목 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나오듯이 소출은 씨앗이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상태가 좌우한다.

 

[사목, 2005년 2월호, 박영대(우리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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