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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와 신앙: 마더 데레사 - 청빈과 순명 그리고 큰 사랑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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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6-15 ㅣ No.321

[영화와 신앙] 청빈과 순명 그리고 큰 사랑의 이름 - 마더 데레사(Mother Teresa)

 

 

(이 글은 영화평론가로서가 아니라 이제 갓 신앙을 갖게 된 신자의 눈과 마음으로 쓴 것임을 미리 고백한다.)

 

영화만큼 인간의 오감(五感)을 자극하고 활용하는 매체도 드물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여기에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것을 느끼는 여섯째 감각, 곧 식스 센스(sixth sense)까지 영화 속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엄밀히 말해서 영화는 시각과 청각에 기대어 있고 다른 감각들은 상상한 것에 불과하지만, 영화 기술의 발달과 ‘핍진성’(逼眞性)을 강화시키는 내러티브 구조에 따라 영화는 강한 현실감을 부여받는다.

 

사실 종교가 선교나 신자 재교육 등에 영화 매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 자칫 성서의 여러 기록들을 고답적이고 믿기 어려운 신화나 설화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알리고 성인들의 삶과 신앙을 부담 없이 접해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영화만큼 강력한 매체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영화는 시점을 ‘지금’으로 현재화시키며, 주체와 대상을 동일시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데레사 수녀의 삶과 신앙을 다룬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봉사로 헌신한 그분의 삶 그리고 지극했던 신앙을 각인시키고 전파하게 될 것이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

 

1910년 알바니아 태생인 데레사 수녀는 1928년 인도 선교활동단체인 로레토 성모수녀회에 들어가 인도 캘커타에서 교사로서 생활한다. <마더 데레사>(파브리지오 코스타 감독)는 그가 캘커타에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게 되는 과정과 그 뒤의 활동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당시의 캘커타는 종교적 분쟁과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거리 아무 데나 쓰러져 기아와 갈증과 병으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충격과 깊은 슬픔을 느낀 데레사 수녀는 1948년 단돈 45루피(우리 돈으로 약 1080원)로 가난한 이들의 안식처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한다. 영화는 선교회를 설립하기까지 데레사 수녀가 겪게 되는 반대와 편견과 오해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로레토 수녀회 내부의 반대, 대주교를 비롯한 교구의 회의적 시선, 힌두교도들과의 종교적 갈등과 오해, 캘커타 행정 당국의 비협조와 방해 그리고 교황청의 부정적 견해까지 선교회를 설립하고자 거쳐야 할 난관은 도처에 있음을 보여준다. 

 

<마더 데레사>는 영화로서의 극적 재미만 보자면 또 비평적 잣대로만 보자면 높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스펙타클이 주는 장쾌한 맛이나 드라마틱한 상황이 주는 긴장감을 찾기 어려우며, 섬세하고 정교한 심리적 접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미덕은 바로 마더 데레사 그 자체이며 그것은 화려하게 포장된 그 어떤 매력보다도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헐벗고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데레사 수녀의 큰 사랑은 신자, 비신자를 불문하고 보편적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울림을 가져다줄 것이다.

 

 

“오직 주님 손 안의 몽당연필일 뿐”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데레사 수녀의 선택과 태도였다. 너무 일천하고 얄팍한 신앙이라 더욱 성인들의 신앙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갔던 탓이다. 데레사 수녀는 매번 자신을 주님께 맡겼다. 

 

“전 헐벗고 고통받는 이들에게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일이 아니라 그분의 일입니다. 그분은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전 나약한 인간입니다. 전 오직 주님 손 안의 몽당연필일 뿐이고 쓰시는 분은 주님이시죠.”

 

“그분이 없으면 길을 잃어버리거든요.”

 

데레사 수녀는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낙망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자신을 도구로 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온전히 따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주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사실상 그것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자신의 선택이라는 오만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데레사 수녀가 보여준 주님의 뜻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신앙인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그러나 가장 어려운) 신앙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데레사 수녀는 ‘주님의 뜻’을 가장 소박하게 읽어냈다. 치장되지 않고 부풀려지지 않은 믿음. 그 소박한 믿음이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선교회의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걸맞은 조직체계의 필요성을 주변에서 거론할 때, “주님은 작은 것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특히 사랑으로 행하는 작은 일들을 말이에요.” 하고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러나 선교회 일이 몇 사람의 손으로 지탱하기에는 벅차게 되자 그는 선교회를 관장할 조직체를 허락하게 된다. 무릇 조직이란 좋은 목적과 선의에도 관성화되고 관료화되는 속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법 아닌가. 호텔에서 열리는 회의석상에 3달러짜리 생수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데레사 수녀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조직의 해체를 언명한다. 물 한 병 값인 3달러면 아이 하나를 1년간 학교에 보낼 수 있는데, 그 돈을 회의하면서 마시는 물 값으로 지불한다는 것이 본디 선교회의 출발 의지와 ‘주님의 뜻’과는 멀어졌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시작한 그 뿌리로 돌아가야 해요.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말입니다.”

 

평생을 어렵고 힘들고 헐벗은 이들을 위하여 사랑을 전하고 실천한 마더 데레사의 삶은 종교를 초월하여 세상 사람들을 움직였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고,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주고,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 사랑을 주는 삶을 스스로 보여준 마더 데레사. 그는 1997년 주님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그의 굳건한 신앙과 사랑의 삶을 기리며 2003년 10월 19일에는 데레사 수녀의 시복식이 거행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 마더 데레사의 시 “당신의 등잔을 계속 타오르게 하십시오”(Keep your Lamp burning) 중에서.

 

[사목, 2005년 2월호, 조혜정(영화평론가 ·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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