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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격변기의 한국 가정과 천주교회: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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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286

격변기의 한국 가정과 천주교회 -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 분석

 

 

1. 머리말 

 

본고는 주교회의 한국사목연구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리서치 센터에 의뢰하여 최근 발표한 『생명과 가정에 관한 설문조사』(2004년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 보고 자료)의 결과를 사목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본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국 가정이 직면해 있는 위기의 배경과 사목적 의미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영역별로 조사결과에서 나타난 주요 특징들을 살펴보고, 이어 이 결과들에 대한 분석과 사목적 해독을,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사목방향을 제안하게 될 것이다.

 

 

2. 조사결과에 나타난 분야별 주요 특징 

 

1) 가정생활 전반 

 

천주교 신자의 가정생활 실태를 비신자(일반인)들과 비교하였을 때 확인되는 가장 큰 특징은 한마디로 급격하고 거대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신자가정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신자와 비신자를 갈라보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말이다. 가정생활에서 느끼는, 또는 경험하는 문제들이 두 집단에서 거의 같았고, 차이가 나타나리라 예견하였던 문제들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물론 일부 측면에서 신자와 비신자 간에 미미한 인식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드러나기는 하였다. 

 

먼저 가정 안에서 현재 가장 심각하게 보는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들 수 있다[질문 5항]. 신자들은 대화 부족과 무관심(신자 27%, 비신자 18.8%)을 가장 큰 문제로 본 데 반하여 비신자들은 경제적 어려움(비신자 35.9%, 신자 25.3%)을 들었다. 근소한 차이지만 신자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간층의 속성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간접적인 근거이다.

 

다음의 결과들을 이러한 판단의 준거로 삼을 수 있다. ① 여가시간 선호도[질문 7항]에서 신자들이 인터넷 검색과 책 읽는 시간을 비신자들보다 더 많이 갖는다. 이는 통상적으로 중간층의 취미와 기호로 거론되는 것들이다. ② 부부싸움의 이유[질문 6-1항]에서도 돈이나 경제적 문제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빈도가 비신자보다 낮다(비신자 30.2%, 신자 19.5%). ③ 맞벌이 여부[질문 8항]에서도 비신자가 57.6%인 데 반하여 신자는 40.6%에 불과하다. ④ 자녀에게 과외를 시키는 비율[질문 28항]도 비신자가 69.3%인 데 반하여, 신자는 79.4%로 다소 높다. ⑤ 노인층의 수입원[질문 20항]도 신자의 수입원이 안정적이다. 이 결과들은 천주교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이 교회의 중간층화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가정폭력의 행사 경험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적지만 신자가 일반인에 비하여 경험이 다소 많고, 피폭력 경험은 반대로 낮다. 폭력 행사의 빈도는 일반인의 두 배에 달한다. 자녀에 대한 폭력 행사 여부[질문 10항]에서도 비신자에 비하여 신자들이 근소하게 높다(비신자 20.1%, 신자 25.2%). 이처럼 차이가 드러나긴 해도 사실상 유의미한 결과로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서 신앙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터이다. 결국 이 두 집단의 유사성이 신자와 비신자 사이를 뚜렷하게 갈라야 하는 사회윤리, 생명윤리, 성윤리에 대한 의식에서 거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이유라고 하겠다.

 

2) 결혼과 이혼에 대한 의식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한국인의 결혼관이 확연히 달라졌다. 결혼을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이 높아지고, 결혼적령기도 많이 늦어졌다. 이 가운데 결혼적령기에 대한 의식이 변화한 것은 청년세대의 생존조건이 악화된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결혼을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연장선에서 이혼에 대한 태도도 유연해졌다. 전통적으로 결혼을 지속시키고 보장하던 조건들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일단을 살펴보자. 

 

먼저, 결혼을 선택으로 이해하는 의식이 높아진 점이다[질문 11항]. 신자의 25.6%, 비신자의 28.5%가 결혼을 선택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두 번째, 결혼 적령기[질문 12항]에 대해서는 남자의 적령기를 비신자 54%, 신자 53.7%가 30세 이상으로, 여성의 적령기는 일반인 39.5%, 신자 40.3%가 26-27세로 보았다. 혼인에서 남녀간 연령차를 고려하는 의식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만혼, 저출산의 간접적인 원인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세 번째로, 이혼에 대한 의견[질문 14항]에서 이혼하면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신자들의 54.2%가, 일반인의 44.7%가 찬성하여 이혼을 반대하는 비율이 다소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 결과를 뒤집어보면 신자의 45.5%가 이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교회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교회의 지속적이고 오랜 가르침이 있었는데도 절반 가까이가 이런 자유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에게 갖는 규정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핵가족화되면서 가정 안의 성역할 분담구조가 다소 완화되는 현상도 감지된다. [질문 18-2항]에서 맞벌이 부부의 가사와 육아분담 실태에서 신자와 비신자 모두 여성을 기본 축으로 하여 점차 분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1차 원인이기는 하지만, 부부간의 평등의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현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3) 노인문제에 대한 의식

 

핵가족화로 말미암아 노인세대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노부모 봉양에 대한 의식[질문 19항]에서 확연한 변화가 감지된다. 노인 봉양에 대한 의식은 여전하지만 절반 이상이 여러 이유로 불가함을 인정하는 양면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일차적으로는 경제적인 문제가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노부모 봉양(여전히 시부모가 대다수)을 기피하고 있고, 실제 부부간 갈등의 계기가 되는 빈도가 높아지는 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동안 높아져 온 여성의 지위, 의식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다. 전 사회적으로도 노인세대가 자의 반, 타의 반 분리되고 있고 봉양의 주체에 대한(과거는 장남) 이해도 달라져 분리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본 조사 결과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변화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청소년과 교육에 대한 의식

 

자녀교육과 관련하여 부모들이 평소에 하는 일[질문 24항]을 살펴보면 역시 신자와 비신자 간에 차이가 없다. 자녀교육에 신앙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신자들이 신앙을 중심으로 사회생활을 지도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주류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청소년기를 바라보고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신앙이 자녀교육이나 양육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5) 생명에 대한 의식 

 

생명에 대한 의식이 아마도 본 조사에서 교회에 가장 큰 경각심을 갖게 만든 문제라 할 것이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제인데도 비신자들과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드러나긴 했어도 근소한 차이였다는 점에서 역시 문제현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문제가 된 현상들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본다. 

 

먼저 생명의 출발 시점에 대한 의식[질문 30항]이다.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라는 생각이 신자는 69.7%이고 비신자는 60.0%로 신자들의 의식이 비신자보다 다소 높기는 하지만 30% 정도가 그동안 교회의 가르침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교회의 생명윤리의 주요 영역에 대한 의식[질문 31항]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상대적 윤리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상이다. 

 

대체로 세 가지 경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피임, 낙태에 대하여는 유연한 태도를, 안락사의 경우에는 다소 긍정하며, 사형 · 자살 등에 대하여는 반생명적으로 보는 태도가 지배적이다. 사회에서 다수가 현실적으로 인지하고 행동하는 문제나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하여는 반생명적이라고 보지 않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현상에 대하여는 반생명적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로, 피임은 비신자의 50.6%, 신자의 55%가 하고 있다. 피임 방법으로 영구 단종을 선택한 비율도 신자의 경우 44.8%로 비신자의 34.5%보다 높다. 낙태에 대한 태도와 행위에 대하여도 같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질문 45항]에서 장애아 임신 때 낙태를 희망하는 비율이 신자의 78.6%, 비신자의 87.8%로 사실상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낙태 허용여부[질문 47항]에 대하여도 신자의 87.6%가 허용에 찬성하고 있다. 비신자의 40.1%보다는 낮지만 신자의 34.2%가 낙태를 경험하였다. 

 

자살[질문 50항]에 대하여 신자의 20% 가까이가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안락사[질문 52항] 허용에 대하여도 비신자의 86.9%, 신자의 77%가 동의하고 있다. 사형제도[질문 53항]에 대하여도 신자의 36%, 비신자의 59.6%가 존속을 지지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의 빈도와 강도에 비하여 신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매우 미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보다는 개인의 판단을 더 중시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까닭이다. 

 

6) 성에 대한 의식 및 태도 

 

성과 생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성윤리가 약화되면 생명윤리도 약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동안 성의 쾌락적 측면이 부각되고, 성생활에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강해지면서 생명이 위협을 받는 빈도가 커져왔다. 이러한 사실에서 추론해 보면, 성윤리에 대한 의식과 실제 성생활 태도의 변화는 생명윤리의 약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례를 살펴보자. 

 

먼저 혼전 성관계에 대한 수용 가능성[질문 33항]에 대하여 비신자의 32.3%, 신자의 50.6%가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연령별로 비교하면 젊은층으로 갈수록 유연해지고, 실제 생활에서는 혼전 성관계 금지를 강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혼전관계는 보편화되어 있다. 성에 대한 의식이 변화 정도를 넘어 금기 해체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로 외도[질문 34항]에 대하여도 긍정적 인식이 14.5%에 달한다. 직접적인 성관계와 정신적인 외도를 포함할 경우 신자의 37.7%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비신자의 38.9%와 비교할 때 거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수치이다. 결혼의 충실성에 대한 가르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처럼 성에 대한 의식과 실제 행동에서 신자와 비신자 간의 차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본 조사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문제이다. 

 

7) 출산 및 자녀관에 대한 의식

 

자녀 출산[질문 39]에 대하여는 긍정적이나, 입양 의향은 높지 않고, 남아 선호도 여전하다. 이상적인 자녀 수는 두 명 이상이지만, 실제는 두 명 이하가 될 가능성이 높아 결혼비율 하락, 희망 출산자녀 감소로 인구 감소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녀 수를 낮추는 이유를 경제적인 데서 찾기 때문에 생존조건, 자녀의 양육조건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러한 태도는 교회가 아무리 강조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8) 신자의 교회생활과 가르침에 대한 의식 

 

교회의 미래를 가늠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후속세대의 규모이다. 부모의 종교를 전수받는 비율이 높을수록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고, 만족도도 높을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측정지표 가운데 하나가 자녀의 유아세례에 대한 의지인데, 조사결과는 59.3%만 시키고, 나머지 40.3%는 어떤 형태로든 시키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두 번째는 혼종혼(混宗婚)에 대한 태도인데 71.6%가 자녀에게 맡기겠다고 답하고, 7%가 개의치 않는다고 함으로써 전체의 78.6%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성사혼의 비율도 31.2%에 머물렀다. 이 모두가 한국의 종교문화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현상임에 틀림없으나 신자들의 소속감이 약화된 표지로 읽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해서 반가운 결과가 아니다.

 

교회의 가정에 대한 가르침에 대하여는 무지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신자가정의 의무항목 가운데 자녀 출산(39%), 성소교육(37.3%), 자녀 혼인교육(36.5%)이 낮게 나타나는 점, 혼인 강좌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55%가 존재 자체를 몰랐던 점, 성사혼의 당위에 대하여 29.1%가 무지하였던 점 등 교회의 노력에 비하여 만족스럽지 않게 나타난 결과들이 이러한 예에 속한다.

 

 

3. 분석과 사목적 의미

 

가정과 생명에 대한 신자들의 의식이 일반인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흔히들 신자들의 무책임한 태도, 교회의 사목 대응의 실패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가 원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부분적 진실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교회도 지난 40년 사이에 어찌할 수 없는 객관적 환경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격변의 과정과 이유를 객관적 환경의 변화에서 찾은 다음, 교회 내부의 대응방법의 문제점을 찾고자 한다. 

 

1) 가정과 생명 의식 변화의 객관적 배경 

 

한국사회는 지난 40년 사이 급격한 사회변동을 경험하였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서구가 200년에 걸쳐 서서히 겪은 변화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농촌의 해체로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였고, 일부 도시들은 주변에 방대한 위성도시를 거느린 메트로폴리스로 변모하였다. 이 과정이 산업화에 수반되어 나타났고, 산업화는 가족구조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왔다. 지난 시기 삼대가 함께 살던 확대가족은 핵가족으로, 최근 다시 핵가족은 미혼이나 이혼한 독신자들 그리고 자녀들과 분리된 노인들이 형성하는 단독가구 증가로 이어져왔다. 확대가족이 핵가족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이혼율 증가, 출산율 감소, 노인 세대의 소외와 분리, 성의 금기 해체, 집단 중심의 가치관과 질서의 개인주의화를 경험하고 있다. 본 조사결과는 이러한 격변기의 한국 가정과 인간의 문제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① 도시화, 핵가족화 

 

본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한 인구 가운데 88.6%가 도시에 살고 있고, 가구 인원 수도 4인 이하가 80.7%를 차지한다. 2명 이하인 경우도 14.2%로 급격하게 늘었다. 이 때문에 전체 가구원 평균은 4명 이하인 3.8명이다. 한국사회가 핵가족 사회를 넘어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단독가구의 증가현상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세대의 분리도 두드러진다. 부모를 봉양하는 가구가 현저하게 줄고 노인세대의 봉양에 대한 태도도 희박해졌다. 이처럼 한국의 가족은 짧은 시간 안에 핵가족화되었고, 이 핵가족 중심 구조는 다시 다양한 형태의 가족으로 세분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노인문제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② 가족성원 간 관계구조의 변화 

 

전통사회의 대가족 제도에서는 필수조건이 아니었던 부부간의 친밀성이 핵가족에서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가족성원이 줄어들면서 부부간의 커뮤니케이션 빈도와 질이 매우 높아지는 까닭이다. 부부간의 친밀성이 높아 감정적 유대에 문제가 없을 때에는 이러한 조건이 부부와 가정의 행복을 가져오지만, 친밀성의 붕괴가 나타나면 갈등이 증폭되어 이혼, 가정폭력으로 이어진다. 부부의 대면접촉 시간이 늘어날수록 내재된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가족 제도에서는 부부간 갈등의 정도가 다른 가족 성원들로 말미암아 약해지고, 과도하게 높아진 커뮤니케이션 부담도 분산이 가능하였다. 핵가족화는 이러한 객관적 환경의 도움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핵가족에서는 부부간, 자녀와의 관계만이 부각된다. 특히 부부간의 관계가 더 중요해진다. 부부관계도 점차 수평화, 우정의 관계로 변모하여, 이 상황에서는 부부에게 정서적 유대, 이른바 감정적 친밀감이 필수조건이다. 부부간의 성생활도 이 연장선에서 중요해진다. 이러한 변화가 있었지만 의식과 행동에 지체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결혼이 선택적이 되고, 이혼율도 높아지는 것이다. 본 조사의 결과들은 한국이 핵가족 사회로 변모하면서 이러한 문제 상황에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③ 풍요와 개인의 자유 

 

한국사회가 경험하는 물질적 풍요도 결혼제도를 위협하고 있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설사 선택한다 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독신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난다. 자녀 양육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은 계획하지 않은 자녀들의 낙태로 이어지고, 몸을 강조하는 경향은 과거 정신이 누렸던 지위만큼이나 몸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면서 육체적 건강과 성생활을 일치시켜 보려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쾌락원리에 충실한 문화적 풍조는 태 안의 생명을 경시하는 태도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높은 낙태율로 귀결된다. 이렇게 한국의 가정과 가족은 급격한 해체와 재구성의 와중에 있다. 

 

2) 내부환경의 원인

 

모든 문제를 객관적 환경변화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노력이 미흡하였던 점들도 적지 않았기에 말이다. 발전적 대응을 위해서라도 교회 안에서 미흡하였던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① 교세의 급속 팽창 

 

지난 반세기는 교회의 양적 팽창기였다. 이 과정에서 구교우, 이들에게서 태어난 태중교우가 전체 신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졌고, 신자구성의 전면적인 교체도 이루어졌다. 특히 지난 25년 사이에 가장 폭넓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는데, 교세 성장률은 이전 시기보다 낮았지만 신자 숫자는 현 교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함으로써 교회의 질적인 변화가 촉진되었다. 교회는 이 시기에 건물과 같은 외형적 하드웨어 확충에 치중하였다. 그럴수록 교회의 내적 성숙, 신자들의 신앙 성숙은 더뎌졌다. 이 때문에 그동안 나름대로 형성되어 있던 신자 가정의 문화와 천주교 고유의 신앙생활의 형태가 급속하게 약화 또는 해체되었다. 교회가 객관적 환경의 변화와 연동되어 경험하게 된 현상이다.

 

② 사목 대응 시도의 미비

 

양적 성장에 상응하는 사목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사실상 한계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한국사회의 변동과정과 교회를 연결시켜 이해하는 안목이 좁았던 것은 내부문제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본 조사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이러한 격변기에 본당에서 가정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신자의 74.6%가 없었다고 답하였다. 이러한 결과에서 비롯되는 것이겠으나, 앞으로 가정문제가 생겨도 54.4%가 가정에서 해결하고, 20.6%만이 수도자 사목자와 의논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사목적 대응 노력이 미흡했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③ 신자들의 소속감 저하와 개인화 

 

신자들의 절반 이상이 정신적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신앙을 선택하였다. 신앙의 사회적 책임보다는 내적인 만족과 평화가 우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교회의 사회적 역할, 신자 개인의 사회윤리적 의식과 책임감이 약할 수밖에 없다. 믿어야 할 교리의 인식과 성사에 대한 준수도 낮아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사회의식과 윤리에 대한 태도보다는 다소 나아 보인다. 이처럼 신자들이 가톨릭 사회교리와 사회윤리에 둔감하고, 무지한 점이 이러한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그 한 예가 교회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에 53.1%가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나머지 대부분이 지키기 어렵다고 보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4. 결론 및 제안 

 

올 8월 16일부터 대전에서 열리는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정기총회의 주제도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으로 정해졌다. 아마도 이러한 주제가 선택된 것은 가정과 생명에 대한 의식과 태도의 변화가 한국적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상황임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사실 동북아 지역과 산업화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대부분 한국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그만큼 가정과 생명의 문제가 지구적 차원을 가지고 있으며, 변화의 원인이 교회 안팎에 걸쳐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사목적 대응이 교회 안에만 국한될 수 없는 이유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방향을 잡으려면 구조적인 접근과 교회 안의 내재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구조적인 접근은 ‘생명31운동’과 생명과 관련된 법제가 개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재적인 접근은 사회교리와 사회윤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믿어야 할 교리와 성사 중심의 교리교육과 성사사목의 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의식이 낮은 신자들의 신앙태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변화를 볼 때 가정사목은 시대의 대세이다. 사목의 일부가 아니라 사목의 중심으로 삼는 방식으로 사목구조를 조정하는 것이 제한적이지만, 무너지는 한국의 가정과 생명의식의 약화를 늦출 수 있다.

 

[사목, 2004년 6월호, 박문수(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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