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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변화하는 사회의 반영,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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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287

변화하는 사회의 반영,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1. 선교와 사목의 보충교재

 

다큐멘터리는 변화하는 사회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다큐멘터리는 정치, 경제, 문화 분야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현안을 반영해 주기도 하고, 또는 현실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교회가 사회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사회를 반영, 재구성해 주는 다큐멘터리를 선교나 사목의 자료로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큐멘터리는 교회와 사회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만큼 사회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장르가 어디 있겠는가? 

 

예를 들어, 강론은 신자들과의 공감대를 얼마나 형성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가정사목의 일환으로 많은 경우 강론 중에 가정의 복음화를 다루게 된다. 이러한 강론을 위해 사제는 최근에 <인간극장>(KBS 2TV)에서 방영된 휴먼 다큐멘터리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활용할 수 있다. 71년을 동고동락해 온 9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어떻게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관절이 약한 할머니가 편하게 산책하도록 손수 나무를 옮겨 심고, 길의 돌을 고르는 일은 할아버지의 즐거움이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준다고 한다. 아내 걱정에 군불도 때고 설거지를 돕는 것은 애처가 남편의 기본이며,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노래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노래 한 곡조에 절로 흥이 나서 어깨춤을 들썩인다. 사제가 강론 중에 이러한 이야기를 꺼낼 때 신자들은 쉽게 공감하며 자신의 부부생활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목자나 평신도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잘 선택하여 강론뿐만 아니라 예비신자 교리, 성서공부, 소공동체 모임, 주일학교 등 모든 교회 교육과 활동에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텔레비전 시청은 단순히 ‘시간 죽이기’나 ‘시간 낭비’가 결코 아니다. 텔레비전은 비록 비복음적인 가치관을 전달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면에 복음의 정신을 구현하는 내용을 포함하기도 한다. 교회 지도자나 평신도는 텔레비전 장르 가운데 다큐멘터리를 선교와 사목에 훌륭한 자료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분별력이나 비판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진실의 형상화 작업

 

영화의 역사가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초의 영화는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공장으로부터의 귀가>,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이다. 이 영화는 19세기 파리의 풍물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어의에 따라 ‘기록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다큐멘터리는 객관적 사실을 제시해 주는 영상물이며, 그 임무는 기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재구성해서 관객을 설득하고 진실을 증명하는 전쟁에서의 승리이다. 다큐멘터리의 본질은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정치적 부패, 문화적 변동, 각종 범죄, 환경오염, 성차별, 가정의 위기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카메라에 담아 그대로 현실묘사를 하거나 사회적 의제 설정의 기능을 한다.

 

다큐멘터리가 픽션과 다른 점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꾸며진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소재로 작가의 시각을 통해 형성되는 예술 형식이라는 것이다. 곧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사람, 장소, 그리고 시간 속에 담겨진 가치를 탐구하여 영상언어로 전달하는 진실의 형상화 작업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예술적인 허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빙성 있는 사실들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런 진실성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또한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기능적 효율성인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균형성, 객관성, 진실성, 그리고 주관성이라는 네 가지 원칙을 지니고 있다. 객관성과 진실성에 바탕을 둘 때에 비로소 균형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이 세 가지 특성을 표방하고 있다 하더라도 다큐멘터리는 역시 주관적인 장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사실 또는 사회 현실을 그대로 나열하는 작업을 하지만, 결국 제작자의 기획 의도, 카메라의 각도, 주제의식에 따른 편집방식 때문에 자연히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순수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재구성’ 또는 ‘해석’이다.

 

 

3. 한국 다큐멘터리의 현실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는 1980년대 군부 독재시절에서 시작한다. 민중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의 한 방편으로 카메라를 잡은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은 <상계동 올림픽>, <행당동 사람들> 등 노동, 빈민, 여성, 환경에 관한 작품들을 통해 현실적 운동과 저항을 보여준다. 한국의 다큐멘터리에 한 획을 그은 작품 <상계동 올림픽>은 1988년 상계동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88올림픽 개최의 허울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 작품이다. 

 

1989년 창단된 “노동자 뉴스단”은 노동자가 자신의 손으로 자기 계급의 문제를 영상으로 표현한다는 기치 아래 노동자들의 교육과 각종 노동운동 내에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들을 다큐멘터리나 여러 영상물로 노동자 의식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진실의 큰 외침으로 대변되는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인 변영주는 <낮은 목소리> 시리즈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문제를 따뜻하게 그려냈고,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를 작업한 “서울영상집단”은 진보적 사회에 대한 희망을 독립영화로 담아내고 이론화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이미지에 대한 왜곡된 상상력, 알지 못했던 현실의 또 다른 현장을 찾아나선 파수꾼들이다.

 

초창기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민주화와 인권 등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군부독재 시절에 텔레비전에 방영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이룬 1990년대 이후 텔레비전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봇물 터지듯 나타나 최근에는 KBS, MBC, SBS, EBS 그리고 케이블 방송국들까지 합친다면 무수히 많은 다큐멘터리가 제작 방영되고 있다고 보겠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역사, 자연, 휴먼, 시사 등의 하위 장르로 나뉠 수 있다. <현대인물사>(KBS 1TV),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는 교과서에서도 소외된 현대사, 잘 알려져있지 않거나 왜곡되어 왔던 사실을 밝히는 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환경스페셜>(KBS 1TV), <자연다큐멘터리>(MBC), <물은 생명이다>(SBS) 등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는 자연과 생태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휴먼스토리 여자>(SBS), <인간극장>(KBS 2TV)는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MBC), <그것이 알고 싶다>(SBS), <추적 60분>(KBS 2TV)과 같은 시사 다큐멘터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비리를 고발하고 사건 뒤에 숨은 실체와 본질을 끝까지 추적 보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최근 뉴미디어의 발달로 다큐멘터리 제작 여건이 변화됨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만나 새로운 형식으로 나타난 “다큐드라마”, 6mm 카메라 또는 홈 캠코더의 보급으로 더욱 신속하고 적은 예산으로 가능해진 비디오 저널 (KBS 2TV), <6mm 세상탐험>(MBC) 등이 새로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비디오 저널은 시청자인 수용자가 생산자 입장으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미 창출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4. 간접체험으로서 다큐멘터리

 

사목자 또는 사목 협력자들은 더욱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다양한 체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체험은 삶의 제한된 환경에서 이루어지기에, 사목자가 모든 체험을 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간접체험의 장을 제공한다. 텔레비전의 가장 큰 장점은 텔레비전 화면이 지니는 현실성 또는 현장성에 있다. 영상 또는 이미지는 구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환경이 어떻게 오염되는지, 정치권 안에서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한지, 성형수술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 한 인간의 의미 있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사목자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올바른 사회생활, 참 삶의 모습을 복음적 가치관에 비추어 동의 또는 재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은 까치들의 과일 습격으로 과수원들의 피해가 극심하여 매년 사냥으로 수십만 마리의 까치가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서는 단순히 상황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배 생산 과수원에서 ‘조건적 미각 기피 행동 유도’를 이용하여 까치도 죽이지 않고 배나 다른 과일의 피해도 현저히 줄이는 자연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여기서 ‘조건적 미각 기피 행동’이란 야생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먹이를 먹고 난 뒤, 탈이 생기면 알레르기를 일으켜 그 먹이를 다시는 먹지 않는 습성을 말한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까지 모색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도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대안제시가 다른 다큐멘터리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초에 방영된 의 “문제는 지도층이다” 편에서 한국사회의 정계, 재계, 관계, 언론계 등 기득권층이 혼맥을 통해 강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혼맥도가 공개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러 차례의 개혁 시도가 실패한 이유가 개혁을 원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들이 혼맥을 통한 거대한 망을 형성하고 저항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셈이다. 

 

사목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되도록이면 많이 녹화해 두었다가 사목에 도움이 되는 내용을 선택하여 빔 프로젝트로 신자들에게 요약된 내용을 보여준다면 커다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은 예전에 사회복지 2차 헌금을 아프간 난민들을 위해 거두는 주일에 미리 녹화해 둔 시사 다큐멘터리 <수요기획:아프가니스탄>(KBS 1TV 2001. 9. 19.) 가운데 일부를 강론 시간에 보여준 적이 있다. 백 마디 말보다는 현장감이 넘쳐흐르는 단 5분의 영상의 힘이 확실히 컸다. 이것을 시청한 신자들은 평소의 배가 넘는 헌금을 봉헌하였다.

 

 

5. 문제점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기초로 한 영상이라는 일반적인 선입관 때문에 시청자들은 보통 아무 비판 없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이러한 것을 잘 파악한다면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자신의 의도를 고도의 영상기법을 통하여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숙이 시청자들의 머릿속으로 얼마든지 주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산골소녀 영자> 이야기는 강원도 산골 오지에서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시골소녀의 삶을 비추고자 제작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 산골소녀의 삶을 사람들에게 공개함으로써 그들 가족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 아버지가 살해되고 후원금을 갈취당하면서 그 소녀의 삶은 순식간에 암울하게 바뀌었다. 제작자의 윤리와 의무를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다. 

 

또한 다큐멘터리는 심층보도가 되지 못하고 현실만을 보여주는 차원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노인, 청소년 탈선, 장애인 등 소외 계층에 대한 접근이 지속적이지 못하고 공론의 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VJ 형식의 다큐멘터리 경우에 방송사들 간의 과열 경쟁으로 먼저 방송하려다 보니 다큐멘터리에 재구성과 재해석의 과정이 없어지고 자극적인 자막을 통한 흥미 끌기와 정보 전달에만 치중하게 된다.

 

 

6. 결론

 

사목자들에게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사고와 체험의 지평을 넓혀주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한편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교회도 다양한 영역과 관련을 맺어가고 있다. 사목자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만 가급적 다큐멘터리 시청을 통해 간접적으로 많은 분야의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폭넓은 지식을 소유할 수 있게 되고, 사목이나 선교 수행에도 많은 도움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이며 영상의 시대인 이때에 교회는 이 시대의 언어인 영상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는 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대로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목, 2004년 6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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