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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사목] 아시아의 가정 상황: 중국, 일본, 동남 아시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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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297

아시아의 가정 상황 -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가정 해체나 위기 현상은 현대사회 안에서 특정 나라만의 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보편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요인 등에 따라 각 가정들이 처해있는 어려움의 양상은 제각기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이에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란 주제로 열린 FABC 제8차 정기총회에 발맞추어 아시아 각국의 가정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 편집자 주.

 

 

중국 - 개혁개방과 중국 가정의 변화

 

 

대가정에서 핵가정으로

 

유교문화에 기초한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가족이 사회의 중심이었다. 세대를 이어 가족을 구성하여 살았고, 가족간의 존경과 사랑을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동아시아 가정문화의 중추였던 중국에서 서구적 근대화에 따라 가정의 성격에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 중국사회에서는 신분의 차이에 따라, 대토지 소유자와 정부 관리는 대가족을 구성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소가족을 구성하였으나, 대가족제도가 가정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국가가 들어서서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국가조직이 가족 구성원들의 강한 유대감과 집단의식을 대신하였다. 현재 중국의 가족유형은 급속한 분화가 진행 중이다. 곧 한 사람이 생활하는 독신가정, 부부와 미혼 자녀가 함께 생활하는 ‘핵심가정’, 3대가 함께 사는 주간가정(主幹家庭), 하나의 대가정에 2대 이상이 살고, 동일한 세대에도 2-3개 이상의 소가정이 함께 생활하는 연합가정(聯合家庭) 등으로 분화되었다.

 

전통적으로는 연합가정의 형태가 많았으나, 노인의 연금생활이 부분적으로 보장되고 주택난이 심해지면서 성혼한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와 따로 떨어져 생활하는 ‘핵심가정’이 중심이 되고 있다. 더구나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생활방식의 변화 때문에 가정의 규모도 점차 소형화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3.1명 수준이다. 

 

물론 여기에는 도시가정과 농촌가정의 차이를 전제로 한다. 도시와 농촌 간의 소득 차이가 커서 농촌가정의 삶의 질은 도시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02년을 기준으로 농촌가정의 순수입과 도시가정의 가처분소득을 비교하면 약 3배 이상의 차이가 나고, 농촌가정과 도시가정의 엥겔지수는 각각 46.3%, 37.7%이다. 이것은 도시가정의 생활조건이 점차 윤택해지는 반면 농촌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웅변해 준다.

 

 

가족 역할의 변화

 

가정의 변화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과거에는 가장이 가족의 대소사를 주관하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가부장적 문화가 상당히 불식되고 아내와 아이들의 주장도 강해지고 있다. 특이한 것은 가족 구성원의 상호존중을 중시하는 일본과 한국과는 달리, 중국은 배우자의 동등한 권리를 유독 중시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성립 이후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을 실현하면서 여성이 정치·경제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하늘의 반쪽(半邊天)’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중국사회에서 여성은 중혼, 축첩제도, 조혼, 과부재혼 간섭의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1950년 혼인법 제정을 통해 평등권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가정 내에서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준 것은 가사노동에 전념하던 과거와 달리 사회적 노동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와 농촌에서는 탁아소 건립이 촉진되었고, 가사노동을 부부가 공동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의식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완전고용이 사라지고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서 여성실업이 급증하는 한편, 여성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적 대우도 상대적으로 열악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의 가정 의존도가 늘어나게 되고 가사노동 부담률도 급증하였다. 심지어 남성실업의 증가는 고스란히 여성의 노동활동과 가사활동에 부과되는 현상마저 늘어나고 있다. 

 

핵가족화는 가정 내에서 전 인구의 10%를 넘어선 노인의 역할과 지위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중국에서는 성인이 된 자녀는 노인을 부양할 법적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부양하는 전통적인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들과 떨어져 생활하지만 생활비를 제공하는 간접적인 방식이다. 현재 도시 노인의 대부분은 퇴직노동자이기 때문에 기본생활비는 퇴직금으로 보장한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악화되면서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녀들에 대한 생활비 의존도 늘고 있다. 더구나 농촌에서는 퇴직제도와 사회양로보험이 더욱 취약하여 자녀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가족계획과 어린 황제의 탄생 

 

중국은 가용 경작지에 비해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전 세계 경작지의 7%에 세계인구의 20%인 13억 명의 인구가 모여 산다. 따라서 인구문제는 중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적인 과제이다. 따라서 개혁개방 이후 산아제한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정책의 핵심은 소수민족을 제외한 전 인구의 93%를 차지하는 한족들은 ‘한 가구당 한 자녀만 가지도록 한다(一對夫婦只生一個孩子)’는 것이었다. 한 자녀만 갖겠다고 맹세하는 신혼부부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실시하고 불임수술을 할 경우 추가로 현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두 자녀 이상을 낳을 경우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10년 동안 임금의 10%를 삭감하여 낙태와 인공유산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산아제한정책은 인구 억제에 기여하였으나, 많은 부정적인 사회문제를 낳았다. 

 

먼저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태어난 여아를 호적에 올리지 않거나 심지어 여아낙태현상도 빈발하고 있다. 비록 법적으로는 태아의 성별 확인과 인공낙태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예외 규정이 너무 많고 단속이 허술하여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세 번째 아이는 지정 진료소에서 분만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낙태와 강제유산이 자행되는 사례의 보고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정책의 결과, 중국의 남녀 성비는 106.7:100으로 남초(男超)현상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산아제한정책은 가족 구성원의 가치관, 도덕관과 인생관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무엇보다 어려움을 참아가면서 후대의 자손을 위해 살아가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곧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희생하면서까지 대를 잇는 일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식이 늘어났다. 또한 ‘한 자녀 정책’의 결과 ‘어린 황제(小皇帝)’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핵심가정’에서 외아들이나 외딸로 자란 새로운 세대의 어린이들은 버릇없이 행동하고 이기주의 의식이 강하며 고생하고 절약하는 정신이 부족하다. 여기에 부모의 교육열이 덧붙여지면서 미술·음악·스포츠·외국어·컴퓨터 등의 사교육 열풍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가정학대와 성문제

 

최근 중국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가정문제의 하나는 남편의 학대와 폭력이다. 베이징 관련 연구소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조사 대상 여성 가운데 1%가 남편에게 날마다 매를 맞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가 일주일에 2-3번 구타당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심지어 한 농민이 자기 부인을 전등불도 없는 방에 무려 78일 동안이나 감금한 사실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구타를 개인의 집안일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전통적인 폐습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에 실상은 이보다 더 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통적인 가부장의식과 새로운 평등의식 사이의 격차가 큰 원인이지만, 스트레스를 의탁할 수 있는 레저 시설이나 종교활동, 상담소의 부재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청소년들의 성의식의 부족과 낙태의 빈발이다. 과거 문화혁명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여성들은 성을 극도로 금기시했으며, 보통의 정상적인 성행위도 반동으로 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심지어 결혼 뒤 3개월 동안이나 남편의 접근을 거부해 이혼을 강요당한 여성의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최근에는 가정 내 성교육 부족이 가져온 위기에 대한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구이저우(貴州) 성의 17세 여학생이 양육비가 없다는 이유로 갓 출산한 아이를 버린 것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가정 내 자녀 성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환기하였다. 또한 중국 민정부 보고에 따르면, 베이징 등 대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79%가 혼전 경험이 있으며, 그 가운데 30% 이상이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중국의 가정은 전통적인 가정에서 근대적인 가정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유용한 전통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서방의 것은 모두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것처럼 중국적 특색을 지닌 가정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본다. 그 방향은 구체적인 중국의 역사적 현실에 뿌리 내리면서도, 보편적이고 행복한 가정의 가치로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이희옥(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

 

 

일본 - 전후 일본의 가족해체와 가정문제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는 혈연에 따른 가족과 가업에 따른 이에모토(家元)로 구성되었다. 전자가 가족간의 강한 정서적 유대를 근간으로 해서 구성된 혈연집단인 데 반해, 후자는 가업의 역할분담을 근간으로 해서 구성된 장인집단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제도는 현재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으며, 이에(가문)에 대한 결속도 예전 같지 않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혈연집단인 가족 내부에서 근대적인 가부장권이 무너진 것이다.

 

 

계속되는 전후 일본의 가족해체

 

전후 일본에서 가족제도의 변화에 필적할 만큼의 큰 변화는 없었다. 구미사회에서 200년에서 최소한 100년 이상에 걸쳐 경험한 가족제도의 변화를 일본인들은 단 50년 만에 모두 경험한 것이다. 현재 60세 이상의 세대는 대가족에서 핵가족, 그리고 가족의 개인화와 고령자 단독세대라는 가족해체를 순차적으로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전후의 가족해체는 여러 가지 문제를 양산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이다. 현재 부부 중심의 핵가족으로 철저하게 분화되어 있는 일본에서, 배우자와 사별해서 혼자가 된 노인이 단독세대를 구성해 혼자 사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에 비해 일본은 국민연금이나 노인복지가 잘 되어있다고는 하지만, 단독 노인세대의 문제는 병이 났을 때 노인을 돌보고 간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노부모의 부양과 간병은 아들 내외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라서, 며느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반해, 일본사회는 배우자가 죽어 노인 혼자 남아도 자식들과 합치기보다는 홀로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병이 났을 때는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드나들면서 간호하거나 전문 간병인을 두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홀로 살기를 택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노후에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기를 원하는 일본인들은 노후 부양과 간병문제 때문에, 아들딸 가운데 하나만 낳는 경우 아들보다는 딸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며느리보다는 딸한테 노후의 시중이나 간병을 받는 것이 심적으로도 편하고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다음은 결혼기피와 출산율 저하 문제이다. 현재 일본의 인구구성을 보면 20대와 30대의 경우 남성 숫자가 여성보다 많으며, ‘경제적으로 자립만 할 수 있으면 아예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한국의 결혼정보회사는 남성회원보다 여성회원의 숫자가 많아서 남성회원을 확보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는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남성회원이 아니라 반대로 여성회원을 모집하는 데 고생하고 있다. 일본의 농촌 남성의 결혼난은 한국보다 더 심각하며, 국제문제화되고 있다.

 

일본의 가족성원의 변화를 보면, 전후 50년 동안 5.18명에서 현재 3.0명으로 급격히 떨어지고, 출생률도 1.5% 이하로 떨어진 상태이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출생률이 낮아지고 있어서, 아이를 낳으면 출산비 명목으로 국가 의료보험에서 30만 엔(약 300만 원)을 지급하고, 쌍둥이를 낳으면 60만 엔을 지급해 주고 있다. 정부는 출산뿐만 아니라 육아정책에도 신경을 쓰고 있는데, 역마다 탁아소를 설치하고 탁아 시간을 여성의 퇴근 사정에 맞추어 연장하는 등 정책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동에 한해서 모든 의료비가 무료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치과처럼 보험이 되지 않는 치료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받는다. 그럼에도 일본의 출산율은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출산율 저하가 일본 국력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일본 정부는 작년에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에 출산율 저하를 막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는 출산장려금, 육아보조금 등을 지급해도 육아를 여성만이 책임지는 사회에서는 출산율 저하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가사와 육아는 변함없이 여성의 몫이며, 아내 혼자서 하든가 아내가 주로 하는 경우가 80%를 넘는다. 부부가 공동으로 하는 경우는 10%도 채 되지 않는다. 기혼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일단 혼자서 떠맡고, 여력이 있으면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일본이 도달한 결론은, 남성을 포함해 일본사회가 공동으로 육아 부담을 떠안지 않는 한 출산율 저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최근 노동과 관련된 분야에서 좀 더 실효성 있는 조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른바 ‘가족적 책임’이란 것인데, 이는 아이와 노인 등 부양가족이 있는 남녀가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가꾸어가면서 평등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첫째는 가족적 책임이 있는 남녀의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고자, 육아와 관련된 휴업도 남성과 여성이 반반씩 균등하게 하도록 하며, 둘째는 가족적 책임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 때문에 직장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지만, 그 반대로 가족적 책임이 없는 사람이 과도한 업무로 불이익을 받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도덕보다는 ‘법’이, 전체보다는 ‘개인’이 우선하는 일본사회 

 

가족해체를 조장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아버지 부재의 현상이다. 일본의 샐러리맨 가정에서는 잔업이나 업무상의 교제로 남편이 집에 돌아가는 것은 새벽 무렵이고, 가사는 모두 아내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회사인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샐러리맨들은 일주일에 3일은 잔업을 하고, 노동시간과 출퇴근 시간이 길어서 실제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남편이 직장을 옮기거나 지사로 발령을 받으면, 남편 혼자 임지로 부임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이는 자식이 대학 진학을 한다든가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게 되어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분가해 나갈지언정, 남편 때문에 전 가족이, 아니면 자식 때문에 부모가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근거지를 쉽게 떠나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가족의 개인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공동체나 울타리가 점점 적어지는 현대 일본사회에서, 가족해체는 바로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한국만큼 개개인이 가족에 고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립심도 강하고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이는 전후 군국주의에 대한 반발로,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국가나 가족 내부의 전통적인 권위를 모두 해체시켰기 때문이다. 다종교 국가로 종교적인 결속력이 약하고 종교적인 도덕률이라는 것이 미미한 사회에서, 전통적인 권위의 해체는 바로 윤리관의 해체로 직결된다. 바로 이것이 일본사회의 아킬레스건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사회는 현재 급증하는 이혼과 불륜, 청소년 가출과 미혼모 문제, 풍속산업(섹스 산업)의 발달에 따른 매매춘과 청소년의 원조교제, 교내폭력과 등교거부와 같은 문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윤리나 도덕적 윤리가 공중 분해된 일본사회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허용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이다. 법률에 저촉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허용된다는 데, 바로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모든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돌리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종교도 마찬가지이다. 종교윤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한국의 종교계는 개인에게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지만, 일본에서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성찰과 자각을 요구하는 개인의 내면문제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 해결책은 이처럼 서로 다르다. <김후련(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일본연구소 교수)>

 

 

동남아시아 - 무엇이 동남아 국가의 가정문제인가

 

 

가정은 지구상의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본적인 제도이자 가장 중요한 사회집단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출발하여 산업사회를 거쳐 현재의 정보통신사회로의 단계적 이행은 지구촌의 사회 분화를 가속화시켰다. 사회 분화의 촉진과 이를 통한 가정의 급격한 변화는 수많은 가정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의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일반적 현상은 이혼율 증가에 따른 가족해체, 핵가족화와 고령화에 따른 노인문제, 가정의 불안정성과 가족해체에 따른 청소년 비행문제, 전통적인 성 가치관의 붕괴에 따른 미혼모 문제, 정신적 일탈 행위에 따른 마약중독 문제,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해외이주노동 문제 등이다.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에는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도 있지만, 지역이나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역사적 배경의 차이로 특정한 가정문제의 심각성이 부각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나타나는 문제의 실상을 다루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일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분리 독립한 동티모르를 비롯해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11개국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 규모가 5억이 넘는 광활한 지역이다.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문화적 특징을 보면, 중국 대륙과 인접한 미얀마, 태국, 라오스, 베트남 그리고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앙코르 와트 사원이 있는 캄보디아를 보통 대륙부 동남아시아라 부른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는 불교문화가 가정과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그리고 필리핀을 해양부 동남아시아라고 하고, 보통 이슬람 문화권(필리핀 남부지역 포함)이라고도 칭한다. 

 

또한 인종적 경제적 특징으로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중국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소수민족과 종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 이하의 세계 최극빈 국가에서 2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 국가에 이르기까지 나라별로 상당한 소득 수준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 문화, 경제적 차이 때문에 동남아시아에서는 국가별로 특정한 가정문제가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는 매매춘에 따른 에이즈 확산 문제, 인도네시아에서는 거리의 부랑자 문제, 말레이시아에서는 이혼율 증가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해외이주노동의 문제가 심각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매매춘 문제는 오늘날 동남아시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미성년의 매춘행위는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춘 대상은 대다수가 외국인이지만 내국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은 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농촌 출신의 나이 어린 여성이다. 이는 농촌사회의 가정파괴는 물론이고 가족의 유대감 또한 상실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된다. 매춘행위는 동남아 국가에서 장려하고 있는 관광산업의 육성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동남아 국가에서는 국내총생산(GDP)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에 이르고 있거나, 정부가 계획적으로 이를 목표 수치로 삼고 있다. 관광과 매춘행위가 약한 상관관계를 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점에서 매춘행위자의 개인적 동기 이외에도 정부가 오히려 매춘행위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 또한 피할 수 없다. 

 

더구나 매춘행위 때문에 생긴 가정과 사회의 만성 고질병은 에이즈이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언론매체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 여성은 통상 매춘여성의 30%를 상회하는 수준이고,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매춘행위에 따른 에이즈 확산은 결혼한 부부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가정이나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안겨준다. 

 

에이즈 확산문제에 이어서 동남아 국가에서 나타나는 가정문제는 실직에 따른 거리의 부랑자 문제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공식적인 실업자 비율은 15% 수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40%가 넘는다. 특히 도시 주변의 젊은 층은 골목이나 대로의 갈림길을 무단으로 점령하여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면서 차량 운전자에게 일정 금액의 통행료를 징수한다. 농촌사회 역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변 도로에서 한 차선을 장애물로 막고 서행을 하도록 하면서 일정 금액의 통행료를 구걸한다. 문제는 거리에 떠도는 부랑자들의 의식행태이다. 말레이시아와 더불어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 교리에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이 통례이고, 없는 자는 있는 자에게 물질적으로 혜택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부랑자들 스스로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수치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인 구걸현상은 1997년 이후에 나타난 인도네시아 경제위기의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거리로 뛰쳐나온 청년들은 가정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듯 거리의 한 모퉁이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갖는 자신감 결여와 가족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식 약화와 역할 미비로 가정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맥락에서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가정문제는 이혼의 증가이다. 이는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이다. 이혼을 법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가정의 물리적 해체를 방지하려는 시도이지 가정의 심리적 결속과 유대 강화에는 별 의미가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말레이시아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국가이고 이슬람 교리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있으며, 샤리아라고 하는 이슬람법에서조차 간소한 이혼 절차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일부 소수의 경제적 부를 축적한 남성들만이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단혼이 지배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이혼 증가 현상을 이해하려면 종교적 측면 이외에도 제도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말레이인의 가족제도는 양성평등을 기초로 한 부부의 양계(bilateral) 가족제도를 따르고 있다. 이는 결혼한 부부의 양쪽 집안을 서로 동등하게 취급한다는 취지이다. 이러한 양성평등의 결혼관은 말레이인들의 이혼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레이인들의 결혼생활은 일반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 결혼한 쌍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이혼을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1980년대 말까지 말레이 반도의 동부 해안지방인 클란탄(Kelantan)과 트렝가누(Terengganu)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을 보였다. 그런데 말레이인들의 높은 이혼 경향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말레이인들의 독특한 문화적 유산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대부분의 이혼은 결혼한 뒤 1-2년 이내에 이루어지고 재혼 또한 빈번히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경제가 고도성장을 경험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배우자를 직접 선택하고 교육수준이 상승하면서 이혼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고무적이나 여전히 동남아 국가에서는 이혼율이 높은 편이다. 

 

동남아 국가의 국내 실업자와 절대 빈곤층의 증가는 해외이주노동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남아 국가 가운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같이 비교적 경제상황이 좋은 국가를 제외하고,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절대 빈곤층에서 벗어나고자 한국을 비롯한 중동 국가와 인근 말레이시아로의 노동 이주를 장려하고 있다. 필리핀은 국민의 10% 정도인 800만 명 정도가 해외노동자이다. 필리핀의 경우 해외근로자들이 벌어들인 외화수입이 주요한 외화가득원이다. 이 때문에 필리핀 정부는 되도록이면 해외로 인력을 송출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통계적으로 확인이 되지는 않지만 500만 명 정도의 인력을 인근 말레이시아나 한국 그리고 중동 국가 등으로 파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불법이주노동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동남아 국가의 해외이주노동은 건설과 제조업 등 흔히 3D업종이라 불리는 힘들고 어려운 업종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위험한 작업상황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근무조건 또한 열악하다. 말레이시아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주당 7일간 노동하고 있으며, 규정보다 낮은 임금을 받거나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 경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로의 이주노동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불법 취업한 인도네시아 근로자들이 인권유린과 과잉처벌 그리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정부 간의 외교적 마찰이 종종 빚어지기도 한다. 

 

동남아 국가의 해외이주노동 가정은 일시적이지만 강제적인 가족 이별의 고통을 경험해야 하고, 해외 근로자들에게 처해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잠재적인 가정붕괴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인식의 전환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원순구(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동남아연구소 대우교수)>

 

[사목, 200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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