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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사목] 사목 인터뷰: 갇힌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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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298

[사목 인터뷰] 갇힌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세상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가 부쩍 많은 요즈음이다. 영 시원찮은 나라 살림도 나아질 기미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데다 희대의 연쇄 살인범 사건 등으로 경악과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우리 사회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날이 갈수록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급속히 확산되어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인정이 더욱 메말라가고 있다. 도무지 잡힐 것 같지 않은 희망의 파랑새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메마른 우리 사회에 인정을 불어넣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그래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는 무엇보다도 이웃 사랑의 확산이 지름길일 것이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앞당기려면 “원수까지도 사랑하여라.” 하고 외치는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우리 교회는 다시 순교자 성월을 맞이한다. 그 옛날 “천주학쟁이”로 몰려 투옥되고 순교하신 이 땅의 순교자들의 고귀한 얼을 기리는 시기이다. 이 순교자 성월을 앞두고 만난 분은 재소자들의 교정사목에 헌신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토마스 신부이다.

 

- 최근 연쇄 살인범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경악하고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신부님의 심정은 어떻습니까?

 

저 역시 같은 분노와 아픔을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왜 이리도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는지 서글퍼지기까지 해요.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처벌을 받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도, 이 사회도 어느 정도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합니다. 이번 연쇄 살인범을 비롯하여 우리 주위에는 아픔과 한을 품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요.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지요. 한마디로 악순환의 고리라고 생각합니다.

 

- 신부님이 몸담고 있는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 대한 이해가 일반적으로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잘 아시다시피, 교정사목을 하는 우리 교회의 한 기구이지요. 이 교정사목의 첫 번째 대상자는 당연히 교도소의 수용자들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출소자들, 피해자들, 그리고 수용자들의 가족들을 복음정신에 따라 사목적으로 배려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교회가 전개하고 있는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 이러한 교정사목을 전담하고 있는 사목자는 현재 서울대교구에 신부님과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신부님이 전부인 것으로 압니다. 힘에 부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교도소 31개, 구치소 11개, 보호감호소 2개가 있는데, 전담 사목자는 전국적으로 서울대교구 신부 둘을 포함하여 모두 다섯 명밖에 없어 다른 종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대부분의 교구에서는 교정시설 인근 본당이나 교구 사회복지 차원에서 교정사목을 겸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서울대교구는 구치소 3개, 교도소 2개, 소년원과 분류심사원 각 1개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데, 저는 서울구치소와 성동구치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수용자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한계로 미사 전례 중심의 교정사목이 이루어지고 있어 늘 아쉽습니다. 사실 미사 한 대 봉헌해도 오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등으로 거의 하루가 소요됩니다.

 

사형수들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58명의 사형수가 있어요. 서울구치소에만 28명이고, 이 가운데 12명이 신자여서 이들을 한 달에 한두 번 찾아갑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전담 사제의 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큰 병원에 원목 사제가 파견되어 있듯이 교정사목에 전념할 수 있는 사목자가 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교도소도 큰 병원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수용자들과의 인격적인 만남, 다시 말해 상담 중심의 사목을 펼치려면 전담 사목자가 많아야 합니다.

 

이 전담 사제들을 위해 돈암동에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교정사목 센터를 지어 이 달에 문을 엽니다. 작년부터 건립을 시작한 교정사목 센터는 지하 1층에 지상 5층의 연건평 630평인데, 전담 사제들의 숙소는 물론이요 공동사목, 체계적인 봉사자 교육, 인성교육을 위한 교정 프로그램 개발, 출소자의 집 운영 방안 등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 신부님께서는 꽤 오랫동안 교정사목을 해오고 계신데, 일반 본당사목과는 달리 매우 특수하다고 할 수 이 분야의 사목은 교구장 주교님만이 아니라 본인의 뜻도 상당 부분 반영되는 것으로 압니다. 교정사목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1991년에 사제품을 받고 본당의 보좌신부 생활을 거쳐 1997년부터 여기에 종사해 오고 있으니 벌써 8년째네요. 신학생 시절에는 노동자나 도시빈민 사목자가 제 미래의 사제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교님께서 이 교정사목을 제의하셨을 때 무척 당황스러워 며칠간 고민도 했습니다. 주교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여 시작하기는 했으나 처음 얼마 동안은 두려운 나머지 수용자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지요. 한 4-5년 지나니까 교정사목에 대한 새로운 안목이 생기더군요.

 

- 교정사목의 활성화를 위해 특히 사목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수용자들과의 벽이 교도소의 높은 담벼락만큼이나 너무 높아요. 신부님들뿐 아니라 모든 신자가 그들에 대한 마음의 벽을 낮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들도 결국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신부님들이 이 교정사목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본당신부님들은 본당 관할 지역 안에, 수용자 가족과 출소자들이 있는지 파악하여 그들에 대한 특별한 사목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 우리 가톨릭 교회는 지난 1999년부터 “사형제도, 그것은 또 하나의 살인행위”라고 외치며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는데 최근 연쇄 살인범 사건 등으로 이 운동을 거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만만찮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연쇄 살인범 사건과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맞아 죽은 사건은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었지요. 많은 국민이 “생명은 소중하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에게조차 그 생명을 지켜줘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큰 분노를 느끼기는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법은 이성의 표현이지 감정의 발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형제도가 강력 범죄의 예방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 연구되었고, 따라서 세계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추세입니다.

 

우리 교회가 천명하고 있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서는 굳이 여기서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인간의 생명은 한 사람에게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므로, 인간은 인간의 생명을 단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사형제도 폐지 운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꾸기 위한 것이지요.

 

우리는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 폐지 소위원회는 물론이요 뜻을 함께하는 다른 종교들과도 더욱 긴밀히 연대하여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그날까지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 교정사목을 하시는 데 어려움도 많으시겠지만 특히 교도소의 수용자들과 함께하시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물론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신앙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지요. 사회적으로는 흉악범이라고 하지만 그 범죄 사실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이 자주 듭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수형생활을 더욱 밝고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보거나 출소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한 형제는 그 안에서 3개월 보름 동안 일해서 받은 돈 20여만 원을 몽땅 교정사목 센터 짓는 데 보태라고 우편환으로 보내왔어요. 그 형제는 세례를 받고서 예비신자 교리반 봉사자로도 활동했지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참 많아요. 이 편지 한번 읽어보십시오. 사형수인 시몬 형제가 두어 달 전에 제게 보낸 것인데, 저만이 아니라 많은 사목자들이 “내가 받은 편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부님이 보여주신 편지는 편지지 다섯 장을 가득 채운 내용이었으나 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요즘도 많이 바쁘시겠죠? 보고 싶습니다. 아주 많이 보고 싶어요. 날짜를 꼽아보니 다음 달은 되어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쉽지만 기다려야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좀 더 성숙된, 좀 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시몬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이곳에 들어와 형이 확정되고 난 뒤,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고 처음으로 성체를 모셨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하느님께 고백할 많은 죄들을 미리 편지지에 적어서 한 줄 한 줄 읽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열 장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저의 죄가 열 장밖에 안 되었나, 이십 장, 백 장, 천 장에 채워도 부족할 텐데 싶어서 어처구니가 없네요. 고백을 다 마쳤을 때, 신부님께서 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실 때의 느낌은 따듯함과 포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눈물까지 흘리시며 사죄경을 읊어주시는 모습에 저는 마음이 떨리고 두려웠고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저의 죄를 저보다도 더 아파하시는 신부님에게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음으로 미사에 참례했는데 시작 성가를 부르는 사이에 그만 감정의 끈을 놓치고 말았죠. 모든 근심과 걱정, 두려움들을 꼭꼭 감추었는데 갑자기 목이 메면서 가슴이 저려오고 눈까지 뜨거워졌어요. 그때 휴지를 건네주시던 신부님의 따듯한 손길. 어두움과 적막, 두려움과 공포 속에 웅크리고 있던 저에게 빛이었고 안식처였습니다.

 

신부님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실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 중 하나가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느 심리학 교수가 질문을 던졌어요. “여러분이 만일 지금 죽는다고 가정하라.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모두들 누구에게 용서를 빌고 누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교수는 다시 말했어요. “그러면 지금 모두 그렇게 하시오.”

 

이 글을 읽고 난 뒤 저의 편지 쓰기가 시작되었어요.

 

정호승 시인의 “국화빵을 굽는 사내”라는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신부님 생각이 많이 떠올랐어요. 신부님께 딱 어울리는,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말해주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눈물을 구울 줄 아는군

눈물로 따끈따끈한 빵을 만들 줄 아는군 

구운 눈물을 뒤집을 줄도 아는군”

 

국화빵을 굽는 사내의 자상함과 너그러움, 가난함이 떠오릅니다. 저는 신부님을 “국화빵 굽는 아저씨”라고 부르고 싶네요. 그렇게 자꾸 불러도 되지요? 부르고 불러도 질리지 않아요. 신부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국화빵 굽는 아저씨.

 

2004년 6월 3일, 시몬 올림

 

[사목, 2004년 9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정리 사진 김진복(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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