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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자] 가톨릭 학교의 교사이며 사목자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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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308

가톨릭 학교의 교사이며 사목자로서의 삶

 

 

대안학교를 통해 배운 사랑

 

대안학교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 지나고 있다. 본당신부로 지낼 때 보좌신부에게 “신부님은 언제 학교로 떠나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교직생활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수품 후에도 본당신부로 있으면서 학교에 적을 두고 강의를 하였기에 만기 보좌신부들로부터 본당 자리를 빨리 비워달라는 은근한(?) 압력을 받는 것이다. 깨가 쏟아지는 본당생활을 만끽하고 있던 나에게 학교 관리자가 되라는 요구는 솔직히 싫었다. 그 이유는 학교 전담 교목신부라면 몰라도 사제로서 학교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사제의 몫이라기보다는 수도자나 평신도의 자리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단위학교는 대학 진학의 결과를 따져 학교를 평가하므로, 이른바 S, K, Y 대학에 많은 학생들을 진학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게다가 수직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학교 조직에서 직선적 성격의 나는 교사들에게 많은 상처를 줄 거라는 점 등에서 학교 관리자의 위치가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교직 경력이 제법 되어갈 즈음에 교감 자격 연수를 하게 되었다. 40일이라는 긴 연수 기간 내내 나는 사제의 신원과 학교 관리직을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하며 그 과제를 풀어야 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의 학교 상황은 공교육에서 떨어져나온 ‘중도 탈락 학생’들과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학교는 사회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런 학교에 사회 속에서 일탈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내 의식 안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믿음 안에서 끌어낸 밑그림은 그들을 위한 학교 설립이었다. 이런 뜻을 마침내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사제단이 지원하고 나섰다. 그 결심은 교회 안에서 정리되기도 전에 성급한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져 자연스럽게 탄력을 받아 사회의 지지를 얻어내게 되었다. 초창기 대안교육의 장을 일구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지만, 대안교육의 과제인 교육 개혁에 한몫을 하고 있는 사실에 보람을 느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학교 설립을 일궈내는 동안 하느님과 교회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으며, 고통의 시간이 지날수록 사제직에 대한 고마움과 영성이 자라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점검도 없이 무모하게 뛰어들었지만, 청소년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학교를 만들어가는 동안 사제직에 대한 깊이와 힘이 커져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멈춰서 오늘을 바라보니 ‘이제 와 생각하니 사랑이어라.’라는 말을 실감하며, 하느님께 깊이 감사하고 있다.

 

 

노랑머리 학생과 함께한 시간

 

참 별난 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라는 말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 살던 복사 출신의 학생이 기억난다. 어느 날 이 학생이 노랗게 물을 들인 머리를 하고 학교에서 외박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싫어한 아버지가 강제적으로 아들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버렸다.

 

학교에 돌아오는 날, 반짝거리는 빡빡머리로 나타난 건 뻔한 일이었다. 노랑머리가 거슬렸는데 시원한 모습을 보니 속이 후련해서 “너, 맘잡고 왔구나! 노랑머리를 없애고 왔으니 말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학생은 다짜고짜 교장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엉엉 울어댔다. “신부님! 저의 아버지는 사람도 아닙니다. 제가 아버지의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면 아버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소중한 머리카락을 아무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잘라버렸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이의 넋두리를 다 들은 다음에 나는 말했다. “나도 너의 노랑머리를 보는 마음은 아버지와 같았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를 대하는 방법은 잘못된 것 같구나.” 그리고 오랫동안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난 다음에 학생은 일어서면서 “아, 속이 후련하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더니 자리를 떠났다.

 

그 뒤 나는 그 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중학교 시절의 가출, 고등학교 입학 후 중도 탈락, 아버지에게 매맞은 일 등 여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학생은 아버지가 싫어서 PC방과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방황했으며, 아버지는 자기를 애물단지로 여겨 무척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학부모 회의 때 학교를 방문한 학생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에게 신부님과 만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깊이 감사를 하며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아들은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변화를 약속하였다. 그 뒤에 학생은 놀랍게도 많이 변화되었다.

 

복사 출신이었기 때문인지 그 학생은 학교에서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았으며 늦은 시간에는 공부방에서 지냈다. 3학년 때는 기숙사의 홈(home) 장이 되어 후배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모범적인 생활로 사제단 상을 받으며 졸업을 했고,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에 진학하여 지금은 군생활을 하고 있다. 첫 휴가를 얻었을 때는 이등병 월급을 꼬박 모아 통닭을 한 아름 안고 후배들을 찾아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데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대학을 졸업하면 꼭 사제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환하게 웃는 졸업생이 그렇게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제의 영성과 학교 관리자

 

학교를 설립하고 나서 내 자신의 변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을 사랑과 열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막상 학교를 설립하고, 상처받은 청소년들과 부딪히면서 겪은 여러 사건과 사고들은 나와 동료 교사들의 열정을 시험에 들게 했다. 학생들은 입을 열지 않았고, 내가 어떻게 하나 지켜볼 뿐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일반 학교의 교사와 부모님들이 했던 것과 다름없는 어른의 눈높이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고통은 듣지 않고 그들의 행동에 내 자신이 더 고통스럽고 답답해하며 일방적으로 지시, 명령, 비난, 질타를 했다. 사제답지 않은 폭언과 물리적인 힘도 가끔 보여줄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그때는 내 자신의 한계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학생들을 문제 삼기 이전에 내 자신의 마음 안에 주님의 일과 사랑이 충실히 접목되지 못한 채 버려져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시간들이었다.

 

“늘 사랑하라, 사랑하라, 거듭 사랑하라.” 언제나 강론 내용의 주를 이루는 말이었지만 정작 고통을 겪는 상대를 향한 연민의 정이나 사랑을 느끼지 않았다. 측은한 마음이 들 때면 몇 번 혀를 차다가 내 일이 아니라고 찬바람 불 듯 모른 척 지나가버렸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도 설정되어 있지 않고, 사제로서 오늘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확고한 마음의 준비도 부족했다.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 영성이란 어떤 것인가? 솔직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것은 사제로, 신자로, 부부로, 자기 고유의 신원대로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끝까지 살아가는 힘이다. 그럴진대 나는 변함없이 사제의 영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사제가 지닌 영성은 학교 관리자가 되는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것은 변함없는 기도생활을 통해 예수님에게서 받는, 내 안에서 커져나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영성은 ‘주님의 뜻대로’, 예수님께 인간 사랑을 배워, 주도적으로 이웃을 향하여 열어가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될 때, 그 안에 강하게 발휘되는 힘이라 하겠다. 각기 다른 현장에서 자기 몫을 다하며 사는, 특히 학생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일하는 사제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힘이다. 그 힘이 내 안에서 넘쳐날 때 내가 겪는 고통보다는 이웃의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살피게 되고, 그에 따라 신원의 폭이 더 넓고 커져서 내가 맡은 역할과 책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나의 검은 머리는 흰머리로 바뀌었고 학생들의 머리는 노랑머리에서 검정머리로 바뀌어갔다. 이것이 바로 학교 사제직의 보람이다.

 

학생들의 훌륭한 변화는 아버지로서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며 깨달아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다. 아버지로서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신원이 바로 영성인 것이다. 사제의 신원과 학교 관리자의 충실한 접목으로 청소년들의 해방과 구원을 맡아야겠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면서 훌륭한 사제의 마음을 간직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 자신이 스스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생명의 깊숙한 내면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을 통해 깊어지는 성숙한 영성으로서 청소년들을 향하고 싶다.

 

미래의 대안학교는 학교에 적응하기 힘든 학생들뿐만 아니라 견고한 보수집단인 공교육 현장을 개혁하는 데에로 나아갈 것이다. 더 큰 대안학교로 발전하는 것도 우리의 영성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나와 우리 동업자들의 영성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건강하게 자라나도록 기도와 지지를 부탁하고 싶다.

 

[사목, 2004년 11월호, 윤병훈(청주 양업고등학교 교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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