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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텔레비젼 드라마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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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6 ㅣ No.276

텔레비전 드라마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문화를 알아야 사목이 보인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사목」에서 올해부터 다달이 “문화 비평” 코너를 마련하였다는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사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에게 애독되고 있는 잡지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새로운 접근은 이제 문화가 사목 실천에 부수적이고 종속적이기보다는 점차 중심이 되어감을 역설하고 있다고 보겠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는 ‘전통문화'보다는 ‘현대문화’ 또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대중문화’를 조명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왔다. 삶의 실천은 대체로 공유된 가치관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수행된다. 하지만 다양한 가치관끼리의 경쟁과 투쟁이 일어나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일종의 ‘문화변동’이며, 사회구조와 생활세계의 동시적 변화이다. 이혼, 실업, 자살, 동거의 증가, 성역할의 변화, 신빈곤층의 등장,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가치관 충돌 등 모든 계층과 분야에서 끊임없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제 교회는 ‘문화’라는 키워드를 이해함으로써 이 시대를 위한 선교와 사목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 대중음악, 텔레비전 등의 대중매체는 현재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신앙생활에도 직결된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복음적 가치관에 따라 실천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은 모든 분야의 사목자의 몫이다. 

 

따라서 사목자는 이 시대에 적절한 사목방향과 방법을 구사하는 데 대중문화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한다. “문화 비평”은 이러한 대화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보겠다. 여기서는 텔레비전에 국한시켜 드라마, 오락, 다큐멘터리, 그리고 시트콤 등 장르별로 나누어 사목을 위한 자료가 될 수 있도록 비평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드라마 비평을 다룬다.

 

 

드라마는 신학적 장소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이며 예수회 신부인 앤드류 그릴리(A. Greeley)는 대중문화를 “누구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신학적인 장소”라고 강조한 바 있다. 성음악, 성미술, 교회건축 등의 고급문화만을 문화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매우 도전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느님에 대해 배우고 가르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인 텔레비전, 그중에서도 드라마는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이 드라마라는 것은 여론조사의 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한겨레신문」, 2003. 12. 24). 드라마는 분명 허구적인 세계이다. 그러나 그 세계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반영하기도 하고, 반면에 현실을 구성하기도 한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생로병사와 수많은 애환에 대한 체험이 드라마로 꾸며져 재현된다. 인간의 체험 속에서 우리를 은총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믿을 때, 인간의 다양한 체험이 용해되어 있는 드라마에서도 우리는 그분을 체험하고 그분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초월체험을 위해 드라마는 이미지, 상징, 소리, 영상, 문자, 기호, 이야기를 통해 인간 체험의 현실을 재현한다. 따라서 텔레비전 드라마는 ‘성사적’일 수 있다. 

 

드라마가 직접적으로 하느님이나 신앙을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복음적 가치관을 깨닫게 되는 은총을 체험할 수 있다. MBC 드라마 “허준”에서 명의원 허준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셨던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었다. KBS1 일일드라마 “노란 손수건”은 미혼모로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여주인공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가부장제에서 파생된 ‘호주제’에 대한 폐지를 사회적으로 공론화시키는 데 공헌한 바 있다. 교회는 이러한 드라마 내용을 교리교육과 강론에 실제적으로 활용하여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께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드라마의 매력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드라마의 주요 시청자는 여성들이다. 남성들은 뉴스, 다큐멘터리, 스포츠 등에 관심을 더 두고 있는 반면, 여성들은 드라마, 쇼, 여성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여성들이 드라마를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리만족이다. 시청자들은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드라마를 통해서 경험한다.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의 인물과 동일시 과정을 통해 성공, 외모, 그리고 부에 대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엄청난 시청률을 올렸던 MBC 일일드라마 “인어 아가씨”에서 살사춤에 요리, 살림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였던 슈퍼우먼 아리영은 모든 여성 시청자들의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는 또한 시청자들의 기대심리, 예측 등 심리적 사회적 신화적 욕구에 잘 맞아떨어지는 문법 구조와 형식을 지니고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드라마의 주제, 상황, 인물에다가 행복과 불행 그리고 갈등구조가 정형화되어 있고, 대체로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다. 

 

언론 모니터 단체인 ‘미디어 세상 열린 사람’(미디어열사)이 “백만송이 장미”, “귀여운 여인”, “흥부네 박터졌네” 등의 일일 연속극에서 성평등 의식을 분석한 결과, 이들 드라마들이 상투적인 삼각관계 설정을 통해 결혼관과 가족관을 왜곡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겨레신문」, 2004. 2. 11). 남성 중심의 삼각관계, 인척끼리의 연적 관계, ‘엄마는 일 저지르고, 아빠는 치다꺼리하고’ 등의 성차별이 유형화되어 있음을 본다.

 

 

현대의 신화를 창조하는 드라마

 

최근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 인생의 궁극적 의문에 적절한 답을 제공하고,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가 낳고, 부메랑처럼 그 사회와 삶을 지배하는 ‘현대의 신화’에 대한 강력한 힘을 간과할 우려가 있다. 성공 신화, 아름다움의 신화, 학력 신화, 발전 신화 등 수많은 현대의 신화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포함한 대중문화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드라마에 나타난 각종 신화들은 무의식중에 ‘부드러운 파시즘’으로 작동하여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성공 신화’를 은연중에 확산시키고 있다. MBC 일일연속극 “귀여운 여인”의 여주인공은 남자 하나 잘 만나 팔자 고치는 것이 지상 목표이다. SBS 일일연속극 “해뜨는 집”의 여주인공 역시 남자에게 의존해 편히 성공하는 길을 택했다가 곤두박질친다. 대부분이 콩쥐팥쥐, 신데렐라의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조선일보」, 2004. 1. 7). 

 

또 다른 현대 신화의 예로, ‘아름다움의 신화’를 들 수 있다. 드라마 남녀 주인공들의 인물과 몸매는 예술에 가깝다. 얼마 전에 종영된 SBS 드라마 스페셜 ‘천국의 계단’은 권상우, 최지우, 신현준과 같은 잘생기고 몸값 비싼 스타 시스템에 의존한 결과 4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드라마에서 스타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경우가 많아, 사람의 가치는 외모로 결정된다는 신화를 시청자들에게 은연중에 주입시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밖에도 텔레비전 드라마는 다양한 현대의 신화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이끄는 드라마

 

드라마의 막강한 영향력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MBC 드라마 “애인”은 ‘애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여주인공의 헤어스타일, 머리핀, 귀고리까지 모방한 사람들로 거리가 넘친 적이 있었다. 일시적인 유행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륜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들이 우후죽순 떠오르면서 결혼한 뒤에도 남자친구를 두는 것이 일종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람난 남편에 대해서도 한숨과 눈물 속에 인내하던 아내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헤어지기를 요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이혼의 급증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거라는 금기사항에 도전한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방영된 이후 다수의 대학생들이 혼전동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은 미디어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조선일보」, 2003. 12. 28). 동거를 받아들이겠다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랑하기 때문’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결혼의 예비단계’, ‘외로움과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해’, ‘경제적 능력 분담을 위해’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동거를 한다고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란 인식이 남녀간 별다른 차이 없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문화의 변화에 대해 교회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MBC 아침 드라마 “성녀와 마녀”는 두 가지의 여성상을 제시한다. 전통적인 관습에서 볼 때 ‘성녀’란 남자로 비롯된 자기 운명에 한없이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여자이지만, 반대로 ‘마녀’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휘두르는 여자라는 이미지로 인식된다. 지금도 다수의 남성들은 여성이 성녀가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상황에서 성녀는 답답하고 바보스러운 여자인 반면, 마녀는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당당한 여성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정보사회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참여가 확대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경제적 이유로 부부 맞벌이, DINK(Double Income No Kids,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족, 독신, 동거,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여성들은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적응해 가도록 요구된다. 과거의 마녀가 오늘날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도 아래 “성녀와 마녀”는 지나치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차원에 따라 순종적인 성녀 문하란과 자기중심적인 마녀 오형숙을 설정하는 무리수를 두는 듯하다. 이 시대에 바람직한 여성의 정체성은 두 사람의 기질을 조화롭게 발휘하는 데 있지 않을까?

 

 

무서워진 시청자

 

과거의 시청자는 매우 수동적이었다. 단순한 소비자로서의 시청자에 대해 소수의 매스미디어 소유주들은 시간과 컨텐츠의 지배와 조작을 일방적이며 획일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올드 미디어조차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시청자들 역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자로 변화되었다. 이제 텔레비전 드라마는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개하지 못한다. 네티즌들이 드라마에 참여하여 문화적 주체자이며 생산자로서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MBC 무협활극 “다모”의 사이버상의 팬을 일컫는 ‘다모폐인’은 안팎의 화제를 낳으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다모폐인’은 이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식음을 전폐하며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를 보라고 추천하는 마니아들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은 단순히 드라마를 보고 시청소감을 남기는 형태로 피드백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한성좌포청 신보’ ‘다모일보’, ‘다모폐인일보’ 등 ‘다모’를 소재로 한 가상 인터넷 신문들이 만들어졌고, ‘다모’의 내용을 토대로 한 ‘다모도감’도 선보였다.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애초에 17회 정도로 숨질 운명이었던 한상궁은 시청자들의 ‘한상궁 살리기’ 운동 때문에 26회가 지날 때까지도 살아있었다. MBC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의 자유게시판에 작가에 대한 시청자들의 사이버 시위가 격렬하였다. 이에 대해 작가는 해명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사이버 시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제 더 이상 시청자를 ‘바보상자’ 앞에 앉아있는 ‘바보시청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시청자는 과거처럼 드라마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위와 항의라는 시청자 참여를 통해 드라마의 내용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의 사회적 개인적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같은 드라마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죽음의 문화를 양산하는 내용이 있다면 사랑과 생명의 문화로 바꾸도록 비판, 고발, 정화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좋은 내용의 드라마에 대해서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목, 2004년 3월호, 김민수(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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