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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생명의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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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11-20 ㅣ No.880

[경향 돋보기 -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생명의 기습


생명의 기습1)

피터 브뤼겔(1525-1569년)의 작품을 볼 때면 민중미술의 선구자라는 거창한 표제보다 그의 남다른 통찰력이 부러울 뿐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이카루스의 추락’(아래 그림)은 단연 손에 꼽을 만하다.

신화 속 인물의 이야기치고는 화면에 펼쳐진 이미지들은 전혀 신화적이지 않다. 여느 유럽의 목가적 아침을 그린 평범한 그림에 드라마틱한 제목이 생경스럽다. 금방이라도 저만치 수평선 너머로 미끄러져 나갈 것같이 바람을 한가득 머금은 돛을 단 고풍스러운 범선과 이제 막 떠올라 바닷물 위로 화려한 잔영을 뿌리는 아침 해를 멀리 두고 농부가 부지런히 밭을 간다.

작가의 익살인지 풍자인지, 화면 한구석 자맥질을 하듯 바닷가 언저리에 솟아있는 두 다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제목과 그림이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 태양을 향해 날갯짓하던 뻐근한 어깨와 터질 것 같은 심장의 신화 속 격정의 이야기는 온데간데없다. 그저 고요하게, 짐짓 평화롭기까지 한 저 바닷가 마을의 풍경은 그렇게 시대를 비웃는다. 채근하고 끙끙대며 진절머리 나도록 질기게 꼬물거리는 이 세상 모든 범인들에게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 ‘무심(無心)의 운동’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짓궂게 농을 던진다. 불쾌하다.

작품이 탄생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범인들의 ‘하찮은’ 고난을 생각하자면 작가가 통찰한 세상의 이 ‘무심의 운동’은 맞는 말인가 싶다. 늘 고난은 작은 이들의 차지고 패자들의 훈장이었다.


세상은 돌아간다

이 글을 쓰는 오늘로부터 꼭 4년 전 남북한 정상은 10·4선언에 서명하고 공동번영을 약속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오던 평화의 봄날 같은 그날의 소식은 해외 토픽으로 다뤄졌고 같이 살던 외국 친구들은 모두 내게 축하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았다.

그로부터 꼭 4년, 나의 조국은 다시 살얼음판이다. 총부리를 겨누던 반세기 전의 적의는 여전히 휴전선 위에 선명하게 남아있고 애틋하게 가꾸던 섬마을 사람들의 터전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 서울도 아닌 인천에서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10·4선언 기념식에 그나마 정부대표로 내려온 통일부차관은 자리가 불편했는지 식순에도 또박또박 적혀있는 자신의 축사를 남겨두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도통 알 길 없던 그 전장에 뛰어들었던 젊은이들은 백발노인이 되어 다시 군복을 차려입고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경향 각지로 동분서주 중이다.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뿐인가. 지난해부터 여기저기 뜯겨나가고 난도질당한 강바닥은 허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튀어나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짐승처럼 누워있다가 그의 장례식치고는 너무 ‘이쁘고’ ‘정직한’ 4대강 ‘살리기’라는 허위의 이름을 달고 이내 우리들 곁을 떠날 듯싶다. 덕분에 정직한 결실을 기다리며 강변에 깃들어 살던 농심은 온데 간데없고 산적한 골재더미에 숨이 막힌 밭은 명민한 투기꾼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 짐승이 너무 가여워, 그 어머니에게 너무 미안해 밥도 굶고 길바닥을 구르며 온몸으로 악을 쓰던 작은 이들의 소리는 윙윙거리는 무위의 소리로 ‘승자’들의 귓가를 뜻 없이 맴돌 뿐이다.

저 남녘 평화롭던 섬 제주도도 같은 처지다. 사람도 쪽빛바다도 너른 바위도, 갯바위 사이를 맴돌던 평화들도 기계들의 무심한 굉음 아래 사라져갈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돈다. 소리를 질러도 자지러지도록 울어보아도 그 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중립, 어떤 중립?

지난해 겨울부터 올해 2월까지 나는 인천 부평의 GM대우자동차 공장 앞을 서성였다. 새벽 어스름을 틈타 8미터 아치 위에 몸을 실은 두 노동자가 한겨울을 그곳에서 났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조합을 설립한 덕에 해고당하고 근 3년을 남루한 천막에 기대어 회사 정문 앞을 떠나지 못하던 이들의 극단적 결정이었다.

뜨끈한 아랫목에 누울 때면 너무 미안했고 아침녘에는 간밤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눈이 와도 슬펐고 바람이 불어도 불안했다. 그러던 중 태어나서 처음 생방송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직접 당사자들에게 듣는 편이 나을 거라고 극구 사양하는 나에게 기자는 나름 방송이 지향하는 ‘중립성’ 때문에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듣는 건 힘들단다.

“전 중립 아닙니다. 노동자들 편이에요.”라고 응수하는 나에게 그는 묘한 대답을 해왔다. “신부라는 존재 자체가 중립적이잖아요.”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리자는 기특한 생각과 함께 엉겁결에 수락은 했지만 기자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부는 중립인가? 중립이라면 어떤 중립인가? 종교의 중립에 대한 신학적 당위나 사회적 요구 따위는 모르겠다. 다만 내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이 거친 현실에 철저한 ‘진공’ 같은 중립이 가능할까 싶었다.

계절이 바뀌자 내 시선은 8미터 아치에서 35미터 크레인으로 높아져 있었다. 내 눈높이만큼 노동자들의 현실도 아득해졌다는 이야기다. 저 남쪽 부산 영도에서 ‘김주익’, ‘곽재규’라는 동료의 죽은 이름을 품기 버거워 결국 하늘에 닿을 듯 아찔한 크레인에 쪽방을 차리고 일 년 남짓한 시간을 보낸 ‘김진숙’이라는 여인의 시간을 더듬어본다.

축축하고 지루한 여름 내내 수많은 이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을 만나러 내려갔다. 얼굴을 마주하는 건 고사하고 그가 있는 크레인 근처에도 이르지 못했다. 서울에서 시커멓게 내려온 경찰들이 물대포를 쏘아댔고 난생처음 최루액에 맞아 온몸이 화끈거리는 밤을 보내야 했다.

그날 밤의 사건을 두고 말과 글들이 차고 넘쳤다. 희망버스는 정리해고 철회와 같은 비현실적 요구가 아닌 좀 더 설득 가능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일부에서는 노동계에만 머물렀던 노동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정작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수많은 이들을 크레인 아래로 모이게 한 연유였다. 무엇 때문에 앞뒤로 치받히고 한뎃잠을 자야 하고 보이는 거라고는 육중한 철골 구조물과 시커먼 제복의 경찰밖에 없는 곳을 다시 또 찾는 것일까?


예수의 중립, 하느님의 중립

내가 본 것은 비약이었다. 비약, 그것도 고난의 비약이었다. 한 사람의 고난이 이름도 낯선 영도라는 땅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모든 이들의 고난이 되었다. ‘현실적 대안’이나 ‘정리해고 철회’처럼 육중한 당위가 아니라 어쩌면 그저 한 사람의 고난을 눈뜨고 지켜볼 수 없다는 지극히 사적이고 인간적인 이유가 그들을 그 자리에 모이게 했을 게다.

하늘 높은 곳에서 부슬비처럼 어떤 이의 고난이 떨어졌고 그 고난을 지켜보던 수많은 눈동자들이 손수 눈물이 되어 품어주고 싶었던 거다. 하나의 고난이 수천 개, 수만 개로 분여되고 한 사람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좁디좁은 한 평 남짓한 시공이 수많은 이들의 시공으로 비약했다.

그때, 겨울날 기자가 내게 건넨 말이 다시 생각났다. “신부라는 존재 자체가 중립적이잖아요.” 내 신분의 중립을 묻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중립이 있었다. 그것은 시공을 손수 짊어졌던 예수의 중립이다. 종교의 중립성, 교회의 사회적 보편성 같은 고상한 언어와 의미를 들이대기에는 파멸할 육신까지도 오롯이 인간으로 살았던 복음속, 시공 속 예수의 모습은 너무 ‘날것’이다.

에둘러가고 어려운 말로 머리를 복잡하게 하지 않는다. 그의 중립이 이해되는 자리는 오롯이 꼬물거리는 인간들 사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겨울날 아치 아래서, 그리고 아득한 크레인 아래서, 비옥한 땅 한가운데 역설적으로 혼자만 황폐하게 남아있던 유성기업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보았던 마음들은 ‘예수의 중립’과 닮아있다. 그게 그의 중립이고 하느님의 중립이다. 그의 눈물이 중립이고 그의 연민이 공평이다. 그러니 사제의 중립은 진공이 아닌 스승과 닮은 시공의 중립인 것이다. 그래서 질척거린다.

연일 계속되는 제주 강정에서의 사제와 수도자의 연행소식에 다들 개탄을 금치 못한다. 너른 바위가 잡석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우악스럽게 끌려가는 소식을 그저 속수무책 듣기만 하는 것은 몸서리쳐지도록 괴로운 일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나을 것 같다. 남녘 섬의 소식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쓸려 들어가 방송과 신문의 가십난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는 강정마을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가보다.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려 하면 이내 강정의 눈물이나 한진의 울음 같은 ‘소소한’ 것들은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다들 입을 모아 이러한 모든 상황이 민주주의의 후퇴와 현 정권의 폭정이라고 개탄하지만 이 역시 너무 큰 그림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니 ‘무심의 운동’을 지속하는 세상을 그저 바라보듯 무기력하기만하다.


시공의 평화

2년 전, 용산참사 재판에서 검찰의 구형이 확정되자 흉물스럽게 녹아내린 망루 아래지만 한 번도 씩씩함을 잃지 않았던 이들의 어깨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말을 건네거나 웃는 것조차 죄스러울 만큼 무거운 며칠이 지났다. 천막을 지키던 사제들 역시 그랬다.

모두 다 잠든 시간, 분향소를 지키는 노파의 웅크린 어깨 사이로 입김이 올라온다. 으레 들르는 분향소지만 지치고 무거운 마음에 더욱 음울하게 보였다. 한참을 앉아있는데 늘 보던 5명의 영정사진이 달리 보였다. 그러고 보면 길거리를 지나가다 만나도 스쳐지나갈 평범한 외모의 그들을 난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의 눈동자에서 내가 본 것은 그럴듯한 보상이나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 비인간적인 재개발 정책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소하고 평범했던 그들의 일상이었다. 낭패감이 밀려왔다. 큰 그림을 그리다 보면 화면 속 작은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망루 아래를 지키는 진짜 힘은 당위나 도덕적 부채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힘은 그들의 삶이 자랐던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것, 사사롭고도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당위’가 아닌 ‘사건’을 함께 품는 것이 진짜 힘인 것이다.

실제로 용산은 그런 곳이었다. 슬픔과 기쁨, 탄생과 소멸, 소외와 나눔이 공존했던 곳이다. 사람이 불타 죽은 망루 아래에서 산 사람들은 기어코 살겠다고 무쇠 솥에 밥을 짓는 역설의 공간이었다. 결국 그 자리도 모순투성이 ‘사람’이었다.

시인 나희덕의 말처럼 잘 말린 석류를 바라보며 ‘불멸’을 떠올리다가도 이내 단단한 껍질을 뚫고 기어 나오는 벌레들처럼 생명은 질기고 기습적이다. 물기가 다 빠져 온기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도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나물을 무치는 모순의 존재가 바로 사람이며 생명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희망이라 부른다.

제주 강정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깃발은 평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곳의 삶은 전혀 평화롭지 못하다. 사이렌 소리에 밭을 갈던 쟁기도 팽개치고 입으로 떠올리던 밥숟갈도 내려놓고 뛰어나가야 하는 전쟁터다.

어쩌면 위엄이라는 겉옷을 내려놓고 그 역설의 자리에서 노심초사하는 주교와 그곳을 지키는 이들은 우리보다 앞서 평화는 삶의 터전과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란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때만이 그 속살을 드러내는 평화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무색무취의 헛것처럼 떠다니는 평화를 땅으로 끌어내려 기어코 뿌리내리게 하는 것, 그것은 고난이라는 구체적 땅의 사건을 품는 것이다.

진공의 평화는 없다. 진공의 희망도 없다. 바람에 흩날리고 시간에 말라가는 시공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무심의 운동을 이어가는 세상에 먹히지 않는 길은 우리의 스승이 그러했듯 고난을 마주하는 것이고 인간, 그 모순투성이에 대한 신뢰다. 폐허 속에서 인간됨을 지키는 길은 기어코 찾아오는, 아니 이미 폐허 속에 오글거리는 ‘생명의 기습’을 믿는 것이다.

1) 나희덕의 시집 「사라진 손바닥」에서 빌려온 모티브이다.

* 장동훈 빈첸시오 - 인천교구 신부.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교구 환경 · 노동사목 전담신부이다.

[경향잡지, 2011년 11월호, 장동훈 빈첸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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