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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이미 그리고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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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1 ㅣ No.894

[생명의 문화]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2) 이미 그리고 아직

삶의 모든 순간이 생명의 축복


인간생명과 관련된 윤리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이미 그리고 아직’이다. ‘이미’란, 사전적 의미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지난 일을 말한다. ‘아직’은 ‘때가 덜된, 이미 있던 일이 달라지지 않은 - 지금도 이전과 같은 상태대로 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시간적 의미와 사건적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

‘이미 그리고 아직’은 사실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생명과 관련해 사용될 때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마치 우리들이 강론시간에 흔히 듣는 신학적 용어 ‘지금, 여기’처럼 말이다. 지금 여기란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말로 하느님 업적이 시간과 관련된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서 그 사건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인간생명은 하느님 사랑과 부부사랑의 상호봉헌을 통한 수태부터 시작해 수정아, 배아, 태아시기를 거쳐 출산에 이르며 이후 유아, 청소년, 청년시기를 거쳐 장년이 되고 노인이 돼 이제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 전 과정을 인간 삶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생명윤리적 용어로는 ‘인간생명의 연속성’이라고 한다. 이 과정 안에서 어느 한 순간도 인간이 아닌 적이 없으며 잠시 인간이 아닌 다른 종으로 있다가 다시 인간이 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부부 사랑 안에서 사람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수태된 첫 순간부터 이 살아있는 존재가 무엇이 될 것인지에 관한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다. 그는 이미 인격체인 것이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이미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자비롭고 아버지다운 섭리의 인격적인 대상이다. 따라서 수정이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을 지닌 존재의 모험은 시작되며, 하나의 사람이 될 수정아, 배아, 태아는 이미 그 사람인 것이다.’(“생명의 복음” 60-61항).

현대의학으로는 치료불가능한 질병에 걸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체험하는 말기환자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존할 수밖에 없는 지속적 식물상태의 사람처럼 삶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인격적 존재이며 아직 살아있는 존엄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인간 존재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건강한 우리처럼 ‘아직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향한 삶이 열려있다’(“생명의 복음” 64항).

한 사람의 건강이 돌이킬 수 없거나 치명적 상황이 될 정도로 악화되었을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없는 마지막 상태에 들어간다. 그에겐 삶이 불안정해지고 고통스러우며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죽음이 내포하는 상실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영적인 극한의 고통에 빠지게 된다.

이때 우리는 이들에 대한 의료적 지원과 사목적 배려를 통해 그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살아 있으며 존엄한 인간존재이며 죽음이 가까울수록, 그리고 죽는 그 순간이 가장 생명이 축복받고 찬양받을 때임을 체험하도록 돌봐줘야 한다.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 아니며 아직 살아있는 존엄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우리의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수태되는 순간부터 인간생명은 한 인간으로서 삶이 ‘이미’ 시작됐으며 죽음을 통해 인간생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직’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대접받아야만 한다.

생명의 동일성이라는 말이 있다. 생명 동일성이란 쉽게 말하면 수태된 그 순간부터 이미 ‘나’라는 존재가 시작됐으며 배아, 태아는 물론 성장해 어른이 되고 이제 죽음 앞에 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전 과정이 바로 나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즉 생명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동일한 한 사람 바로 나였으며 나의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생명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인간 모두의 이야기이고 곧 하느님 사랑 이야기이다.

[평화신문, 2011년 12월 11일, 지영현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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