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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2000년 제19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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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3 ㅣ No.76

2000년 제19회 인권주일(12월 10일) 담화문


인간을 존중하는 공동체 질서를 마련합시다

 

 

1. 새 천년의 첫 인권주일을 맞는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다시 한 번 마음속 깊이 새기면서 이를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인지 헤아려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음을 믿습니다(창세 1, 26).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 19, 19)는 주님의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2.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화해와 은총의 2000년 대희년을 지내면서, 교회가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해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하셨습니다. 한국교회도 '2000년 대희년 주교회의 담화문'을 통해 그 동안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실현을 위해, 특히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의 인권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한 바 있습니다. 이에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스스로 '가난한 교회'의 모습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백주년」11항)에 힘쓸 때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할 것을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많습니다. 요즘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빈곤층, 실업자, 행려자, 노숙자, 결손가정 아동들의 문제는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존엄의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 사회, 교회의 모든 공동체가 힘을 합쳐 이러한 소외된 이웃의 인권에 한층 더 관심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모든 구성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공동체는 참된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인간 존엄성의 핵심은 인간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인위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범죄예방이라는 명분 하에 아직도 시행되고 있는 사형제도는 하루 빨리 폐지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단지 추상적인 가정에 불과하고, 그 실제적인 영향은 전혀 미지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가족계획이라는 명분 하에 자행되고 있는 낙태 또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을 마비시키는 중대한 행위입니다. 낙태를 사실상 허용하고 있는 '모자보건법'의 폐지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SOFA, 곧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한미행정협정'도, 불평등한 국제적 조약이라는 문제점을 떠나, 국가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권보장의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합니다. 특히 군사시설과 군사행동 때문에 생활의 터전을 잃는 등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소외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5. 우리는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의 모든 것을 과학기술이 지배하고, 심지어 인체의 유전자 지도가 일부 완성되어 인간복제의 가능성마저 주장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인간 생명과 인간성은 어떤 것으로도 완전히 지배될 수 없는 마지막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핵심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도 최근 '평신도들의 대희년' 행사에서 유전학의 발전과 경제향상으로 제기되는 사회문제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그리하여 인체의 과학적, 생물학적 내용이 밝혀질수록 오히려 인간 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은 더욱 커져가고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은 곧 인간의 신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것을 과학기술로써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복제 등 인체실험은 창조질서와 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유린하는 것으로 절대적으로 막아내야 할 행위입니다.

 

6.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인격과 존엄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중요한 틀은 정의로운 사회질서입니다(「자유의 자각」32항).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보장은 인간 생명과 인간성의 신비로움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국가, 사회, 교회가 함께 인간 중심의 공동체 질서를 마련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새 천년을 살면서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힘과 지혜를 한데 모으는 이때 우리 모두는 가장 먼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 공동체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 12월 10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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