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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6회 농민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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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80

2001년 제6회 농민주일 담화문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사도 4,32)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7월의 셋째 주일은 한국교회가 농민주일로 지내는 날입니다. 농민주일은 생명의 땅에서 땀흘리는 농민을 기억하고 그 수고에 마음을 모아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또한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가 함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신앙의 정신에 따라 살펴 보는 날입니다.

 

오늘날 농업은 농민의 생계수단이라는 차원을 넘어, 생명질서의 유지와 창조질서의 보존이라는 근본문제에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1994년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한 이래 1995년부터는 농민주일을 제정하여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유기농산물 생산과 올바른 소비자운동을 적극 권장해 왔습니다. 그 후 많은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도·농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각 교구와 본당 여러 곳에 우리 농산물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의 전반적인 현실은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지난 해에도 빚더미를 감당하지 못한 농민이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하였으며, 물밀듯이 밀려 오는 수입 농축산물에 전국의 농민이 분노하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례없이 극심한 가뭄은 피폐해진 농촌 들녘과 농민의 마음에 심한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나아가 2004년 쌀시장 개방이라는 암울한 예고는 이 땅의 농업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농민의 생계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유전자조작농산물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그 근본부터 위협하고 있습니다. 유전자조작은 농업생산의 자연스러운 순환구조를 무너뜨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생명질서에 예측하기 어려운 재앙을 불러 올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의 농업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생산하는 유전자조작농산물은 종자의 멸종이나 변형을 가져 올 뿐 아니라, 종자에서 식료품에 이르는 우리 식생활 전체의 완전한 종속을 강요하고 저개발 국가의 농업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농업은 국민의 생명과 민족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사안입니다. 그러므로 만성적인 농가부채 해결, 수입 농축산물 대책,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구조 개선 등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진지한 노력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앞날을 멀리 내다 보는 농업정책이 시급히 보완되고 추진되어야만 하겠습니다. 무해한 농산물의 생산과 올바른 유통구조를 조성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며, 농민의 수고에 상응한 대가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농촌과 농업을 살려야만 하겠습니다. 그동안 이차산업 개발정책에 따라 농민이 상대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경제적 불평등이 시정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사도 4,32-33)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부활의 새로운 생명을 증언하는 교회가 농업과 농촌 문제 해결에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해 온 것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입니다. 도·농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나누자는 생명공동체 운동입니다. 농촌의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깨닫고 생명중심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동체적으로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에 앞장서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서로가 온전한 먹거리를 보장하고 나눔으로써 생명의 "놀라운 기적"을 드러내며, 나아가 농사일이 모든 이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하느님의 축복"이 되도록 하자는 운동입니다. 다함께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된 생명을 서로 나누며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농사일은 고통스러운 노동일 수만 없습니다. 고된 농사일을 통해 마련되는 고귀한 먹거리로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하며 나아가 다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 여러분의 땀은 모든 이의 생명을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특별하게 닮아 있습니다. 농민 여러분의 남다른 수고는 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아름다운 증거입니다.

 

농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분들, 생명 · 공동체운동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오늘도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시는 농민 여러분과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1년 제6회 농민주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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